지난 10일 전북 익산에서 진행한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토크콘서트에서 인화물질이 투척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
관련기사 : 신은미 강연에 고3 폭발물 투척 목격자들 "배후에 성인남성 있다") 신은미씨는 <오마이뉴스>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기사 시리즈를 연재해 지난 10월 17일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관하는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한의 실상을 재미교포의 시각으로 실감나게 전달한 신은미씨는, 통일언론상 수상 이후 관련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종북'이라는 딱지가 그녀에게 붙기 시작했고, 이후 줄곧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0여 명이 대피한 소동을 빚은 이번 인화물질 투척 사건이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종북 논란에 의한 폭력이 온라인상의 폭언뿐 아니라 물리적 공격으로도 번진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은미씨 노린 고교생의 사제 폭발물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토크콘서트가 시작한 지 1시간 즈음 지났을 무렵 익산의 한 고교 3학년 A군(19)이 황 등 인화물질을 양은 냄비에 담아 불을 붙여 연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A군은 참가자들에 의해 제지당했고, 이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냄비가 폭발하면서 200여 명의 토크콘서트 관람객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A군의 인화물질 투척으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봉 교수와 행사 스태프 등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일부 언론들은 용의자인 A군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사용자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 A군이 글을 올린 곳은 '네오아니메'라는 이름의 인터넷 커뮤니티로 보인다. 인화물질을 투척하기 하루 전인 지난 9일, A군이 '네오아니메' 게시판에 '네망아니메준회원'이라는 아이디로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글은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 콘서트 여는데 신은미 폭사 당했다고 들리면 난 줄 알아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현재는 운영자에 의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토크콘서트 인화물질 투척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기존의 '종북 딱지' 논란은 주로 온라인상에서의 인신공격이 대부분이었는데, 현장을 직접 찾아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테러 행위'로 볼 수 있다. 거기다 피의자가 열아홉 살의 학생이라는 점과, 직접 사제 폭발물을 제작해 준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도 충격적이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이대로 괜찮은가신은미씨를 향한 보수 진영의 분노가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 제기와 '종북 딱지' 붙이기를 넘어서 실제적인 폭력 행사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번 인화물질 투척 사건의 핵심이다. 북한을 둘러본 여행기를 작성하고, 경험담을 토크콘서트를 통해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북한'을 언급하는 것은 반드시 보수 진영이어야만 하고,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 이외의 방식은 안 된다는 극우의 논리가 이번 사건을 낳은 셈이다. 누군가가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면 "북한 인권에는 왜 침묵하느냐"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오고, 그러면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거나 부정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발언하면 '종북 세력'으로 낙인 찍힌다.
사실 핵무기 개발 의혹과 자국민 인권 유린 등 북한의 행보는 많은 부분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통일 대박',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 박근혜 대통령의 기조 정책을 넘어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보수 세력을 자칭하는 집단에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신들의 정당화를 위해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 사람을 모두 '종북'으로 간주한다. '논란'을 일으키는 세력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의'로 포장될 수는 없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워하는 모든 방식, 주변 이웃을 대상으로 한 테러까지 한국을 위한 행위로 미화돼서는 안 될 것이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향해 자행되는 폭력이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한국 사회가 스스로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큰 폭발로 이어지지 않은 고교생의 사제 폭발물이, 다음번에는 더욱 큰 화력으로 되돌아 오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더불어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며 범죄행위를 공유, 독려하고 테러를 시도한 사람을 '열사'로 표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북한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인생의 목표'라 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이런 과정으로 작동되는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일까? '북한에 대한 공포'가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것은 아닌지,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