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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헌(고1) 학생 과학수업을 마치고 내 컴퓨터로 내 글을 읽고 있다. 기사에 사용할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자리에 앉아 후다닥 책을 펴고 펜을 들고 공부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정성헌(고1) 학생과학수업을 마치고 내 컴퓨터로 내 글을 읽고 있다. 기사에 사용할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자리에 앉아 후다닥 책을 펴고 펜을 들고 공부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 송태원

12월 첫째 주 목요일 아침에 성헌이가 나에게 왔다. 수능 날 새벽부터 시험이 종료된 후에도 수고했던 방송반 1학년 학생이다. 나와는 매주 과학수업시간에 만나는 학생이다.

성헌이는 '월천 청소년문예대상'에 응모할 글이라며 "선생님 바쁘세요, 괜찮으시면 제 글 좀 봐 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서 A4용지 세 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지금 시간이 없는데, 다음 시간 수업이 있어서, 무슨 글인데?"라고 물었다.

"월천 청소년문예에 응모했는데,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되요."

월천(月泉)청소년문예대상
고 월천 백제갑 회장(동성그룹 창업자)은 생전 부산경찰청 청소년선도위원, 불우이웃 돕기와 함께 부산지역 개발을 기업 차원에서 적극 선도하였다고 한다. 나눔과 상생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고 국문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986년부터는 '월천 청소년문예대상'을 제정하여, 청소년문예에 지원하고 있다.
'청소년문예대상'이라는 말에 부담스러웠다.

"어~ 나는 국어 선생님도 아닌데 다른 국어 선생님에게 부탁하는 게 어떨까?"
"선생님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시간 나실 때 한 번만 읽어봐 주세요. 이렇게 적으면 되는지?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살짝 난감하였다. 국어 선생님도 많은데 나에게 정성껏 적었을 글의 퇴고를 부탁하다니!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 중에 읽어보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수업이 없는 2교시에 곧바로 읽어보았다.

<방향>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대략 내용은 이러하였다.

첫 단락에서는 청소년문예대상에 응모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생활에서 학교가 제시하는 진로와 꿈에 대한 내용과 경쟁 속에서 친구들이 꿈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마지막 부분은 자신이 방송국 PD의 꿈을 가지게 된 내용이었다.

점심시간 방송실로 들어가는 성헌이를 불렀다.

"성헌아, 내용이 괜찮은 것 같다. 글의 흐름도 맘에 든다. 오타나 띄어쓰기는 나도 잘 못해서 그건 안 봤다."

성헌이는 나의 말에 집중하였다.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선생님 고칠 게, 지적할 게 있으면 말해 주세요. 부담 없이 말해 주세요."
"자, 그러면 잘 봐! 이건 꼭 말해주고 싶었거든, 문예대상에 응모하게 된 계기를 적은 부분이야. 한 문장으로 끝내고 있는데 5줄이나 되거든, 이렇게 긴 문장은 사람들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겠니?"
"네, 진짜 기네요!"
"그래서 여기서 나누고…. '그리고, 그런데, 그러나' 접속사가 너무 많이 있거든 빼고 읽어본다."

나는 한 줄 한 줄 연필로 줄을 치며 전반적으로 길었던 문장들을 나누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방송국 PD라는 꿈을 갖게 되는 니 이야긴데, 좀 더 구체적이었면 해. 친구나 가족에게 필리핀 갔었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풀어나가면 더 좋을 것 같아. 나도 궁금하거든, 이 글을 심사하는 분들은 니가 누군지 전혀 모르거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점심시간이 다 지나갔다.

그날 저녁 다시 내 자리에는 <방향>이란 제목의 글이 다시 놓였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고했다. 아마 좋은 결과 있을 거야"라고 격려해 주었다. 성헌이는 다른 선생님께도 자신의 글을 보여주며 자신의 글을 다듬어 나갔다.

지난 11일 출근해 교무실에 들어섰다. 시끌시끌하였다. 선생님들이 "성헌이가 월천 청소년문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다음은 대상을 수상한 <방향>의 일부분이다.

제목 <방향> - 글쓴이 정성헌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에 가서 11시까지 공부도 아닌 공부를 하고 항상 "나만 힘들어, 혹은 나만 이렇게 외롭고 일상에 지치는 건가?" 라는 나만의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내다보니 부모님과의 갈등도 깊어지고, 부모님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하늘에 있는 별들보다 더 많은 거짓말들을 하였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2학년을 보내고 나서 저는 원래 내 자신인 "정 성 헌"을 찾기 위해서 부모님을 설득, 동의하에 1년간 혼자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저에게 인생의 반환점을 준 것은 인물, 책, 위인도 아닌 제 경험입니다. 필리핀에서 혼자 살아가며 홈스테이를 하던 집에서 사기도 당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 학교를 다니는 등의 여러 가지 어려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어떠한 일이든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그게 뭐니? 그걸 누가 모르니? 라고 저에게 핀잔을 주겠지만, 저에게는 이 한마디가 나의 인생을 즐겁게 해주었고, 나의 꿈이 확실한 지금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나만의 공부 방법을 찾아 실천하였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는 남들처럼 "**대학교 가기, 내신 *등급으로 만들기"가 아니라 방송PD가 되어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보고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방송국PD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알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2014년의 언론 자유지수 (2014, World Press Freedom Index)에서 전년대비 7위나 떨어진 57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46위인 가나,  54위인 나미비아 보다 떨어지는 순위입니다. 저는 이 순위가 상위 5등 안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와, 여러 가지 다채로운 프로그램 생산 및 보급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상당히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23회 월천(月泉)청소년문예대상>의 시상식은 2014. 12. 16.(화) 15:00 부산지방검찰청 13층 중회의실에서 열린다.

우연히 글쓰기 지도를 하게 되었다. 시민기자를 하면서 편집부 기자들과 전화통화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기사 작성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생각난다. 성헌이는 자신의 글이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큰 상을 받았다며 나에게 고맙다고 하였다. 나에게 글쓰기 지도를 난생 처음하게 해준 성헌아 나도 고맙다.



#방향#제23회 월천 청소년문예대상#정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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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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