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남 산천군 시천면의 지리산 중에 있는 카페 '새'
경남 산천군 시천면의 지리산 중에 있는 카페 '새' ⓒ 이안수

#1

사퇴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땅콩회항사건이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고 해외동포단체의 대한항공 불매운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의 도가 지나친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승무원과 사무장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에서 회사라는 조직 속의 일원으로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비애가 보입니다.  

다른 승객들이 주목하는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매뉴얼로 맞아야 했던 피고용인이 느꼈을 모욕은 참으로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조 전 부사장 횡포의 힘은 조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기업오너의 딸이라는 배경의 거역은 곧 밥줄의 박탈로 연결될 것임을 확신하는 입장에서 그 조직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그 조직을 떠나서도 생계가 가능한 자유를 꿈꾸게 됩니다.  

#2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의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자선유치원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의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자선유치원 ⓒ 이안수

아프리카를 여행 중에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에서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한 부부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날 밤, 그 부부가 어떻게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의 신임을 받는 그룹비서실 임원이었습니다. 남편의 승승장구는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그 아들에게 실권이 승계되면서 그룹의 쇄신을 위해 아버지의 사람들이 물러났습니다. 남편은 남미를 책임지는 남미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한 대륙의 수천 명을 호령하는 자리였습니다. 직원뿐만 아니라 국가 공무원조차도 남편이 만나자고 해서 거절한 경우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한 그 상황에서도 그룹의 중심에서 멀어진 좌천이라는 인식과 자신감으로 스스로 퇴직을 하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남편의 요구에 한 번도 미루거나 거역한 적이 없었던 공무원들도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전화를 걸면 번번이 선약이 잡혀있다는 답변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룹을 이탈해서 스스로 설립한 회사는 오래지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또다시 두 번째 회사를 설립했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업의 실패가 앗아간 것은 재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사회성까지 잃고 즐겨가던 동창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친한 친구조차 만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부인이 단안을 내렸습니다. 한국 회사를 접고 남편이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짐바브웨로 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부인은 다시 작은 여행사를 시작했고 남편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유치원을 세워서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에는 에이즈 환자가 있는 빈민가정을 찾아서 의약품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남편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룹에 몸담고 있을 당시 제 말대로 모든 것이 돌아갔습니다. 제가 퇴직을 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순종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속한 거대한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빈손으로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노동을 바치는 지금이 행복한 것은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은 조직이 아니라 나의 선한 생각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3

지난 12월 2일 어둠이 완전히 내린 뒤에 지리산으로 들었습니다. 차를 만들고 계신 전문희 선생님은 바로 지은 더운밥으로 저희 부부의 배를 불린 다음, 지리산의 어두운 밤길에 차를 몰아 한 카페로 안내했습니다.

 19년전에 지리산으로 들어 지리산의 기운을 품은 산야초로 차를 만들며 '새'의 삶을 이룬 전문희선생님
19년전에 지리산으로 들어 지리산의 기운을 품은 산야초로 차를 만들며 '새'의 삶을 이룬 전문희선생님 ⓒ 이안수

산중 그 적막한 골짜기에 불이 밝혀진 집으로 들어가자 카페의 중앙 큰 난로에 나무가 타고 있었습니다.  

주인 부부는 10여 년 가까이 이 깊은 산중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주인은 30여 년 이상 연주해온 기타 솜씨가 탁월하다는 전문희 선생의 귀띔이었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저의 맞은편에 앉은 주인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명함으로 내민 종이에는 손글씨로 '새'라는 카페이름과 전화번호만 간략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카페 ‘새’의 명함
카페 ‘새’의 명함 ⓒ 이안수

"이 '새'가 그 새입니까?" 

한글로 쓰인 그 '새'의 의미를 확인차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새로 압니다만 실은 '변방 새(塞)'입니다."

추위와 어둠이 감싼 지리산 오지의 계곡 한 귀퉁이에 불을 밝힌 이 카페의 이름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에 그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물었습니다.

"오래전에 한 학자가 연재 중인 칼럼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새(塞)'자에 대한 풀이가 있었습니다. '새'는 한 나라에 속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용되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가 마음에 들어서 제 공간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그분이 대처를 떠나 이 지리산 '변방'에 자리를 잡은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했습니다. 

완전한 독립국을 세우는 것은 세우기도 어렵지만 완전한 주권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힘센 나라에 속해 국방의 어려움을 줄이면서 자치권을 보장받는 실리를 누리는 것이 '새'라는 타협일 만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조직으로부터 독립을 꿈꾸지만 그 순간 먹고 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습니다.  

대한항공 사무장이 기내 서비스 책임자로서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오히려 욕설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인간적인 치욕과 모욕감에도 "오너의 따님인 그분의 말을 어길 수 없었다"는 고백은 조직원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설움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새'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망이 수그러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지리산 #카페 새#독립#전문희#산야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