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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톨로지>책표지.
<에디톨로지>책표지. ⓒ 21세기 북스
우리는 주말마다 늘 <무한도전>, <1박 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인데, 과연 그런 프로그램이 만드는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예능인이 보여주는 우스운 개그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편집한 프로듀서 팀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이 완성되는 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합쳐졌을 때 사람들이 누구나 재미를 공감하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나영석 PD의 <삼시세끼>이라는 프로그램은 일부러 웃기려는 요소는 없지만, 출연진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편집해서 만들었기에 소위 '잘 나가는 예능'이자 '나영석의 마법'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지금 눈에 띄는 파워 유튜버도 편집을 통해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자신만의 색깔로 가공해서 팔리는 영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누구나 흔히 알고 있는 지식을 편집해서 동영상을 만들고, 누구나 흔히 하는 게임을 편집해서 인기 있는 동영상 실시간 순위에 오르게 하고…. 그게 바로 '편집'이 가지고 있는 힘이자 창조력이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에디톨로지>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새롭게 내놓은 이 신작 도서는 인문학을 다루는 책인데, '인문학'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하고 싶었던 이유는 제목에 함께 붙은 '창조는 편집이다'이라는 문구에 이끌렸다.

편집을 잘한다는 건 단순히 필요한 부분과 필요하지 부분을 골라내서 자르는 일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처럼 내용을 압축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프로듀서의 의도를 전할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건 동영상만이 아니라 글도 마찬가지다. 늘 글을 쓰면서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었기에 나는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프롤로그부터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역시 김정운의 책은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첫 장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떤 이미지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순간 페이지를 펼쳐서 여기저기 눈이 가면서도 '도대체 이 이미지가 왜 있는 거지?'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 페이지에서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었다.

딱 그 설명을 읽는 것으로도 나는 '아, 역시 이 책을 구매하기를 잘했다. 분명히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 이미지는 <에디톨로지>의 내용에 대해 짧게 설명하는 데 필요하기도 해서 과감히 아래에 옮겨보았다.

 세상 모든 남자는 그곳을 본다.
세상 모든 남자는 그곳을 본다. ⓒ 노지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느 부분부터 보았는가? 저자는 세상 모든 남자는 본능에 따라 한 곳을 쳐다본다고 한다. 여인의 배꼽 아래에 있는 그것, 아이팟이다. 그는 이것을 수년 전에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걷다가 우연히 본 광고라고 하는데,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는 1장 제목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바로 이 사진을 보았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었다. 이 사진을 가지고 저자는 '선택적 지각'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극의 내용이 지극히 편파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자극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창조적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가 벌어지는데, 창조적 인간은 지나치는 자극을 확 잡아챈다. 위대한 창조는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알리바바에서는 물구나무서기가 필수라고 한다.)

혹시 위 사진에서 세상 모든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쳐다보는 그곳을 보았다고 실망하지 말자. 정상인 거다. 대신 다른 곳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저자는 "창조적 인간은 대부분 변태다. 발정기라고 남들과 똑같은 것을 보아서는 절대 창조적이 될 수 없다. '성기 중심주의'를 벗어나야만 창조적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창조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강하게 독자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이야기는 지식의 독점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누구나 방대한 양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누구나 그 정보를 편집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 설명 과정은 딱딱한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사건을 예로 들었는데, 그중 하나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마 모두가 잘 아는 닉네임이 등장할 것이다.

대학 지식권력의 독점 붕괴에 대한 징후는 또 있었다. '미네르바 사건'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한국에도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의 글이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했다. 교수를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은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미네르바의 예언을 더 믿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기고한 100여 편의 글들은 한국의 환율변동, 주가지수의 변화에 관해 기막힌 예언을 내놓았다. 희한하게도 그의 글들은 실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될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다들 미네르바의 정체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학교수나 유명 경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추측했다. 남의 칭찬에 참으로 인색한 대학교수들조차 미네르바야말로 최고의 경제 전문가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네르바의 주장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심상치 않자,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서 반론을 제기했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지식권력의 공식 체계를 계속 모욕하던 미네르바를 국가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다. 결국 '허위사실 유포'라는 아주 황당한 죄명으로 미네르바를 잡아들였다. 그런데 그 범인(?)을 잡고 보니 상황은 더 황당해졌다. 미네르바의 정체는 대단한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다. 교수도 아니었다.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다.

충격의 핵심은 그가 어떻게 그토록 정확하게 경제 변동을 예측할 수 있었는가가 아니었다. 그가 전문대 졸업자라는 사실이었다. '고작' 전문대 출신이 그 '훌륭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정작 미네르바 자신은 인터넷의 잡다한 지식을 짜깁기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짜깁기가 아니었다. 실제 경제 현실에 적용하여 검증된, 아주 정당한 '지식 편집'이었다. 그 어떤 경제 전문가보다 훌륭한 지식 편집이었다. 대학에서 인정하는 논문과 학위 시스템에서만 가능했던 지식 편집이 이제는 인터넷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에 기존의 지식권력자들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p50)

미네르바 사건 이후 점점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자유성이 점점 제한되고, 종편을 비롯한 정부에 아부하는 매체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는 너무 정치적 이야기가 되어버리니 여기서 접어두도록 하자. 하지만 윗글을 통해 우리는 '지식이 더는 일부 소수에게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잘 편집한다면 아니, 잘 편집해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창조를 만든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후에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다른 기업에서 가치가 없다고 평가해 버린 것을 이용해 만든 것을 보여주면서 창조는 바로 편집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에디톨로지> 책 전체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당장 우리 손에 쥐고 있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만 이용하더라도 동영상을 편집해서 하나의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 웹에 올릴 수 있다. 편집에 뛰어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지식을 끌어모아서 좀 더 간단하게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그들은 곧 파워 유튜버가 된다.

세상의 문턱은 낮아졌다. 앞으로 우리가 체험하게 될 여러 제품과 혁신은 '전혀 없던 새로운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얼마나 기발하게 편집하였는가'가 될 것이다. 편집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편집을 통해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다큐가 만들어지고, 편집을 통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만들어진다. 창조는 편집인 것이다.

<에디톨로지>는 이렇게 읽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은 초반과 달리 중반 이후로 넘어가게 되면, 좀 더 깊게 심리학을 파고들면서 종종 지겨워지기도 한다. 특히 졸리는 시간대인 오후 2시~3시 사이에 그 부분을 읽게 되면, 아마 이 책은 바로 잠에 빠질 수 있는 달콤한 아로마 향을 풍길지도 모른다. 나는 실제로 책을 읽다 너무 졸려서 잠시 책을 덮고 말았다.

저자도 "3부는 심리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약간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간만에 '몰입하는 독서'의 기쁨을 느껴보기를 바란다"이라고 프롤로그에 적어 놓았다. 내가 지적 호기심이 없었던 탓인지, 졸음을 참지 못하던 나는…. 라이트 노벨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아하하.

어떤 책을 읽더라도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부분과 신선하다고 느끼는 부분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 말하고 싶은 부분과 글을 쓸 때 만들어지는 글은 다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편집하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감상 후기가 나오는 거다. 남과 다르다고 창피해 하지 말자. 그게 바로 창조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니까.

한국 사회는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도 '창조 경제' 같은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런 말이 나오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건 언제나 수동적인 인재다. 언제나 틀에 맞춰서 생활하고, 언제나 갑의 위치를 넘보지 않고, 언제나 갑에 순종하는…. 그런 노예 같은 인재다. 그래서 한국은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걸더라도 결코 창조적 지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뭐, 땅콩 회항이나 백색 테러 사건을 무시하는 모습은 창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지식이 공유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 지식을 편집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에 대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잘 이용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지식을 편집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조를 이루어내고 있으며, 곳곳에서 이런 일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창조는 편집이다'이라는 말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2014)


#에디톨로지#책#김정운#문화심리학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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