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보인 판이한 반응 하루아침에 십수 년 이어져 온 정당이 해산되었다. 한참 잘 나갔을 때에는 총선 때 13% 넘는 지지를 얻어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수많은 스타 정치인들이 나와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그들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호시절도 있었는데, 참 허망하게 됐다.
'깨알 같은' 분석이 언론을 타고 종일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87년 민주항쟁의 성과물인 헌법재판소가 되레 정치적 소수이자 약자를 축출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며, '헌법재판'이 아닌 '정치재판'으로 규정한다. 그런가 하면, 정파 갈등과 경선 부정으로 사분오열되어 여론의 외면을 당한 마당에 진보세력을 재구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성찰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한쪽의 분위기는 물론 판이하다. 어버이연합 등 보수 단체는 해산 결정 소식에 정당의 깃발을 찢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자축한다. 현 정부도 '헌법의 적'으로부터 우리 헌법을 보호하는 결정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일부 학계에서는 '종북'이라는 낡은 이념에 매몰된 조직의 당연한 최후라며 사필귀정이란다.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전제해둘 게 있다. 나는 해산 결정된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의 당원도 아닐뿐더러 그 당의 강령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어, 헌재가 심각하게 우려한 것처럼 그것이 대한민국의 존립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잘 모른다. 지난 2012년 총선 때 한 번 지지한 것이 전부이며,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접한 이후에는 그 황당함에 '연민'을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내 이웃 진보당원 이야기진보당과의 또 다른 '인연'이라면, 당원 세 분과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정도다. 그들이 꼬박꼬박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인지, 아니면 명부에 이름만 올린 '나이롱' 당원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들 모두 당원임을 굳이 숨기지 않아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대화할 때 그들이 당원이라는 사실 때문에 낯설거나 어색했던 적은 없다. 그들 앞에서 '진보당이 싫다'는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건넨 적이 있을 정도다.
한 분은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고, 나머지 둘은 지난 세월호 참사 이후 이곳 광주에 '시민상주모임'이 꾸려지고 참여하면서 처음 만난 분들이다. 하나같이 정이 많아 궂은일 도맡아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밴 사람들이다. 함께 하다보면 덩달아서 착한 일을 하게 되는, 선한 이웃이자 모범적인 시민이다. 이는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들 중 한 분만 잠깐 소개한다. 8개월도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월호 참사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리시는 분으로, 매일 아침 집 앞 간선도로에 나와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진상규명을 외치며 서 계신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이면 길에 나서는데, 오래 이어지다보니 이젠 출근길 시민들과의 '약속'처럼 돼버렸다고 말한다.
그 정성 때문인지, 이젠 뜻을 같이하는 이웃들이 함께해 요일별로 돌아가며 자발적으로 '당번'을 서고 있다. 물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각자 손에 든 큼지막한 피켓조차도 자비를 들여 손수 제작한 것이다. 광주의 '시민상주모임'도 그런 이웃들의 마음이 하나둘 모여 꾸려진 것이고, 결코 잊지 않겠다며 마을 곳곳을 함께 걷는 '천일 순례'도 그 바탕에서 기획된 것이다.
12월 20일이 그가 도로 위에서 피켓을 든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못해 순수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있다. 며칠 전 매일 그 길을 지나 출근하던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매일 아침 피켓 들고 서있는 저 분들 미안해서라도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고.
그러다보니 모임을 함께하면서 단 한 번도 그가 진보당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모임에 직업과 경제력, 성별,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하물며 정치적 성향이 끼어들 자리가 있겠는가. 만약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속한 정당을 지지해달라는 말을 꺼냈다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누를 끼치는 짓이라며 모두 그를 백안시했을 게 틀림없다.
당원인 그와 이웃인 나를 바보 취급한 헌법재판소 결정
이번 정당 해산 결정은 그가, 이웃이기 전에, 진보당원이었음을 새삼 일깨워준 사건이다. 그는 졸지에 반국가적 정당의 당원이자, 북한 추종 세력으로 낙인찍힌 셈이 됐다. 현행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보면 수사 대상이며, 그 '혐의'를 벗자고 보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 당의 '주도 세력'에 조종당한 채 민주적 기본질서를 무시한 '어리석은 국민'일 뿐이라며 고백해야 하는 처지다.
분향소에서 함께 아이들의 영정을 보며 그가 쏟았던 건 '악어의 눈물'이며,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물려주자는 말은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일까. 나아가 눈물 많고 순수한 그가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에 동조해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통신을 교란하는 데 앞장서게 될까. 지금껏 나는 '빨갱이'였던 그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헌재의 판단대로라면, '주도 세력'이 장악한 진보당의 당원인 그는 '이석기'에 물든 셈이고, 정당을 해산시킴으로써 그를 통해 내가 물드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전술을 간파할 능력 없이 진보당의 주장을 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말로, 당원인 그와 이웃으로 지내는 나를 순간 '바보' 취급해버렸다. 그것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일이라 강조하면서.
과연 헌재가 이번 결정문에서 수없이 되뇐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게 뭘까. 그 포괄적인 의미를 대체 누가 규정하는가. 헌재의 이번 결정이 온당하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법'과 '상식'이 아예 동떨어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다보니, 순간 영화 <실미도>에서 중앙정보부장이 명령을 거부하는 북파부대장에게 총으로 위협하며 던진 대사가 떠올랐다.
"권력을 가진 자가 의지를 갖고, 결정을 하고, 명령을 내리면, 그것이 곧 국가의 명령이야!"
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체는 국민의 표로 심판받는 것
헌법 해석은 물론, 민주주의의 개념도, 보편적인 상식조차도 9명의 헌법재판관이 규정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일각에서 '호불호에 따른 결정'이라며, '인상 판결'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까닭이다.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결사체인 정당은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유권자인 국민들의 표로 심판 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야말로 헌재가 그토록 강조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체다.
듣자니까, 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와 활빈단 등 보수 단체들이 진보당원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헌재에 의해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 단체로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졌으니, 논리적으로 보면 당원들 모두 이적행위를 한 '범죄자'가 되는 셈이다. 당원이 총 10여 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검찰 입장에서 보면 때 아닌 '대목'을 맞게 됐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보당 해산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며 크게 의미를 부여한 마당이니, 검찰의 '칼춤'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장담조차 하기 어렵다. 헌재가 이를 예상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야흐로 6. 25 전쟁 전후에 이어 '빨갱이 사냥 시즌2'가 이어질 모양새다. 수십 년을 거슬러, '귀 막고 입 다물어야' 했던 끔찍한 시대로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칼바람 몰아친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피켓을 들고 길을 나선 그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될까.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가 처벌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든 그의 '무죄'를 증언해야 하나, 아니면 그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아줘야 하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2014년 대한민국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