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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판결문을 읽고 있다.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판결문을 읽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347쪽에 달하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문에는 '이석기'란 단어가 230회, '내란'이 117회 등장한다.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 8명(박한철·이정미·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서기석·조용호)들은 그 중에서 '이석기'를 108회, '내란'을 67회 사용했다. 또 이들은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을 명백하게 드러낸 활동"으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사건을 거론했다.

"이석기 등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들이 내란을 선동하고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함이 명백하다."

헌재는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위헌이란 결론을 내리며 크게 ▲ 당의 진정한 목적과 ▲ 주도세력이란 개념을 내세웠다. 이들은 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종 목표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고 판단했다.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 등을 이끈 '주도세력'의 성향이 북한 추종이라는 생각이 깔린 결론이었다. 재판관들은 특히 경기동부연합이 주도세력의 핵심인데, 이석기 의원이 바로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이라고 인정했다.

문제는 이석기 의원을 주축으로 한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지녔느냐다. 헌재 다수의견은 '그렇다'였다. 하지만 증거는 단순했다. 이 의원과 다른 당원들의 발언이었다.

재판관 8인이 이석기 의원을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으로 본 이유는 경기동부연합 주요인사들이 여러 모임에서 "동지여 너는 나다, 내가 바로 이석기 동지다"란 구호 등을 제창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석기 의원이 합정동 모임에서 해산과 소집을 이야기한 것도 근거로 들었다. 또 "이석기는 내란 관련 회합에서도 참석자들에게 20~30년간 가져온 신념과 가치관을 실현할 시기가 왔다고 발언한 점 등에 비춰" 그가 오랫동안 체제 전복을 추구해왔다고 판단했다.

그 외에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구체적 위험성을 배가시킨 것"으로 꼽히는 이석기 의원 등의 행동은 다수 의견에서 찾기 힘들다. 비례대표 부정경선사건 등이 언급되긴 하지만 곁가지나 다름없다.

너무 쉽게 내려진 결론, '이석기·통합진보당은 위험하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밝힌 김이수 재판관은 결정문에서 이 점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전체 347쪽 가운데 180쪽에 달하는 분량에 걸쳐 그는 끊임없이 한 가지를 강조한다. '증명하라, 구체적으로.'

김 재판관은 "이석기 등이 모임에서 쏟아낸 발언들은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법정의견(다수의견)은 내란 관련에서 드러난 이석기의 발언 등에서 찾아낸 북한식 사회주의를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목적, 나아가 피청구인의 '숨은 목적, 진정한 목적'으로 단정했다"며 다수 의견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주도세력'이란 개념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민혁당의 조직원, 민혁당이 지도하는 조직이었던 사람들이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등'이 설득력 있고 확실한 증거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봤다.

또 이들을 특정하는 기준 역시 없다고 말했다. 김 재판관은 정부가 '주도세력'과 다른 당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념적 지향점을 공유하기에 주도세력=당으로 볼 수 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다수 의견이 "10여년도 더 지난 국가보안법 위반 형사판결이나 오랜 시간 피청구인 구성원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던 사람들 증언에 기초해 피청구인 구성원들의 과거와 현재의 사상, 신념을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란음모사건 항소심도... "말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처벌 근거가 오직 '말'이어선 안 된다는 점은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 또한 판결문에서 수차례 강조했던 대목이다.

지난 8월 11일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이석기 의원 등 7명의 내란음모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실체 인정을 바탕으로 이석기 의원 등이 합정동 모임에서 내란음모에 합의했다고 보기에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당시 모임은 반전평화 목적이었다'는 이 의원 쪽 주장을 두고 "피고인들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 이석기의 발언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증거들을 종합하면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긴 하나, 그것만으로는 피고인들이 내란음모에 합의했고 음모의 윤곽이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피고인들의 발언 자체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현존하는 실질적 위험이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인들의 '말'을 근거로 그 '이념성향'을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것이라고 추단했고, 이를 근거로 내란선동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는 피고인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반면 8인의 헌법재판관은 '이석기 의원 등이 얼마나 위험한가'란 질문에 끝까지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단지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이 보충의견에서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는 고사를 인용했을 뿐이다. 말만 보고 구체적인 위험성을 알아챘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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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정당해산#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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