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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일부 언론에는 울산의 주력기업인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이 연말을 맞아 지역 결식학생 급식비 지원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는 기사가 일제히 보도됐다. 

현대차 울산공장 66개 동호회와 반우회(반장모임)가 주축이 돼 가정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이달 17일부터 31일까지 현대차 울산공장 21개 식당 출입구에서 모금운동을 펼친다는 소식이다.

윤갑한 현대차 사장은 23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식당 모금현장을 찾아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우리의 정성이 결식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 2003년부터 매년 결식학생 급식비 모금을 해 왔고 지금까지 5억2천여만 원을 급식비로 모금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역 대기업 임직원들이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의 급식비지원을 위해 나섰다는 것은 기분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같은 모금운동은 부자도시로 불리는 울산에서 여전히 급식을 못하는 학생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여기다 최근 울산에서 벌어진 무상급식 예산 축소와, 최하위 무상급식 도시 울산의 정책을 전국적인 모범사례로 치켜세우고 있는 정치권의 현실을 감안하면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현대차의 결식학생 급식비 모금이 씁쓸해지는 이유 

무상급식 예산안을 올해 8억6700만 원에서 4억1700만 원으로 4억5000만 원 축소 편성한 권명호 울산 동구청장이 16일 오후 2시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무상급식 축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무상급식 예산안을 올해 8억6700만 원에서 4억1700만 원으로 4억5000만 원 축소 편성한 권명호 울산 동구청장이 16일 오후 2시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무상급식 축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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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무상급식 꼴찌'가 이슈가 된 것은 지난 9월 중순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공개하면서다. 이에 따르면 울산지역 무상급식 실시율은 36.5%로, 전국 평균 무상급식률(69.1%)의 절반 수준으로 현저히 낮다.

당초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나 경북이 꼴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다. 대구(45.5%), 경북(49.5%), 경남(51.1%), 부산(55.4%), 인천(55.7%)은 차라미 울산(36.5%)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무상급식 비율이 높았다.

'울산 무상급식 꼴찌'가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울산이 재정자립도가 높고 수출액이 연간 1000억 달러를 오르내리며 인구가 10배에 달하는 경기도와 1~2위를 다툴 정도로 부자도시라는 데 있었다.

결국 울산을 포함한 일부 도시의 낮은 무상급식율은 제주(86.9%)와 전남(84.5%), 전북(83.7%), 강원(82.1%), 경기(79.4%), 충남(78.6%), 충북(78.1%), 세종(77.7%), 광주(75.1%), 서울(71.6%)등 도시의 평균 무상급식율을 갉아 먹었다. 역으로 보면 나머지 도시는 무상급식이 거의 이뤄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울산의 낮은 무상급식율에도 불구하고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지자체장들은 예산 축소를 예고하더니 급기야 울산 동구가 전임 구청장이 어렵게 진행하던 초등 5~6학년 무상급식 5학년분을 폐지됐다.

울산 동구의회는 야당 의원 3명의 강한 반발에도 지난 15일 여당의원 5명 만으로 구청장이 편성한 동구 무상급식 예산안을 8억6700만 원에서 4억1700만 원으로 4억5000만 원 축소 가결한 것.

무상급식 축소 예산을 편성한 새누리당 권명호 구청장은 그동안 이에 항의하는 시민사회에 "자기 자녀의 밥은 자기가 먹여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특히 그는 예산이 통과된 다음날인 16일 울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상급식은 겉으로는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그 누군가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급식비가 없어 애를 태우는 학생과 부모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여기다 더해 그는 "학교급식의 잔반처리 비용이 전국적으로 연간 140억 원이나 된다. 무상급식하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짜에 익숙해진다. 과연 교육적인지도 생각할 문제"라는 주장도 했다.

그러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 대해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저소득층 지원예산을 통해 무상급식이 제공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청장의 이같은 주장들은 현대차 임직원들이 급식비 모금을 하고, 윤갑한 사장이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새누리당이 1일 오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주재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맹우 의원이 울산시장 시절 무상급식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1일 오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주재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맹우 의원이 울산시장 시절 무상급식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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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무상급식 꼴찌로 만든 당사자인 박맹우 전 울산시장은 올해 국회의원에 당선 된 뒤 무상급식 비율이 낮은 점을 오히려 전국의 모범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다 더해 그는 타 도시의 무상급식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지난 1일 새누리당 최고회의에서 울산의 무상급식 사례롤 소개하면서 "전국을 울산 수준으로 급식 한다고 가정하면 1조 2400억 원 정도가 절감된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의원은 또 "(다른 도시가) 3~4년 동안 무상급식을 하고나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었다. 이렇게 계속 취약계층 교육지원 예산이 줄어들고 급식의 질도 저하되는데 상당수 다 안 먹고 버리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며 "15~20% 정도가 안 먹는다는 보도가 있고, 확인된 것은 아닌데 질이 자꾸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면적인 복지예산이 늘어난다고 보면 계속 이렇게 무상급식예산이 편성돼서는 안 된다"고까지 했다.

이 역시 현대차 윤갑한 사장이 말한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의 정성이 결식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급식비 모금을 격려한 것과는 배치된다.

급식비를 축소한 울산 동구청장은 "저소득층 지원예산을 통해 한 사람에게도 빠짐 없이 무상급식이 제공된다"고 했고, 무상급식율 꼴찌를 오히려 자랑하는 전 울산시장은 "계속 이렇게 무상급식예산이 편성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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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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