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단장 안애순)이 <2014 춤이 말하다>를 12월 19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춤이 말하다>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의 하나로, 무용 여러 장르의 대표주자들이 이야기를 하며 춤을 풀어내는 공연이다. 춤추며 겪은 에피소드, 힘든 과정, 소망, 습관들과 함께 무엇보다도 각 무용수의 대표 레퍼토리 주요대목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2014 춤이 말하다>는 발레, 스트리트 댄스, 전통춤, 현대무용의 대표 무용수들 6명의 춤과 진솔한 이야기를 두 시간 동안 함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각 장르 춤의 서로 다름과 같음, 그들 무용수들의 개성과 고충 그리고 공통점이 춤과 '몸'을 쓰는 사람으로서 관통하는 하나의 과학과 종교처럼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는 가방, 옷, 소품들이 널브러져 있다. 6명 무용수가 들어와 자기 물건을 가방에 챙겨 담아 무대 양 끝에 앉아 무대를 지켜보는 가운데 첫 주자 발레리나 김지영가 나왔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작은 얼굴과 긴 팔다리로 화려한 몸짓을 보여줬는데, 과연 발레에 적합한 몸이란 저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그녀는 일단 발레 한 대목을 펼쳐내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만큼 춤에 대한 강한 인상을 준다. 어떤 설명을 할까. 이내 그녀의 소탈하고 당당하게 발레리나로서의 고충과 에피소드를 늘어놨다. 그녀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시작해 현대발레까지 다양한 춤을 보여줬다. 준비한 튀튀와 나풀거리는 얇은 소재 쉬폰 드레스로 금세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며 자신을 표현했다.
다음으로 스트리트 댄서 디퍼가 등장했다. 김지영의 발레와 대비되는 경쾌하고 역동적인 리듬의 음악이 나와 일단 시원했다. 여러 장르 중 머리와 팔꿈치, 무릎의 스핀동작으로 위험함이 많이 따르는 춤을 추는 그. 지금 그의 관절 상태가 춤을 추기 위험할 지경이라는 김인아 교수(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의 진단 영상이 나온다. 영국 유케이 비보이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우승하는 등 그의 경력 모두 그 혹사당한 몸에서 나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직업을, 예술을 위해 유일한 도구가 되는 것이 평생을 두고 건강하게 가꿔야 하는 "자신의 몸"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겪는 고충이 대단할 것이다. 젊은 시절은 조금 다쳐도 병원가지 않고 대수롭게 넘겼다던 디퍼는 이제는 자신의 몸을 소중히 생각해 한쪽팔꿈치에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나머지 팔과 다리로만 절충형태의 춤을 선보인다. 온전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러한 상황까지 끌어안은, 독창적인 춤의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오철주가 살풀이와 승무를 선보였다. 이날 공연자 중 가장 연배가 높고 유일한 우리 전통춤이었기에 돋보였다. 마치 무용 수업 두 강좌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분이 빨강색 한복치마를 정말 예쁘게 받쳐 입고, 춤동작을 손마디부터 어깨, 얼굴, 시선, 발끝까지 하나하나 입장단을 하며 찬찬히 가르쳐주는 방식이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의 설명대로 과연 제자들이 "선생님, 고와요~!!"라고 할 만 하다.
춤 강좌 사이사이 능수능란하게 아들이 군대에 가서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도 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춤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옆집 아저씨가 보여주는 그런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쉽게 가르쳐주면서도 기술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전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승무를 출 때는 살풀이의 여성스러움을 벗어나 어느새 높은 기백의 남성스러움이 느껴진다.
무용수 한명 한명이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이 멋져. 제일 멋져!!"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매 순서 모두 동등하고 특색 있는 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현대무용가 차진엽은 "내 몸과 내 상상력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2000년대 초부터 차세대 안무가로 국내와 영국 네덜란드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한 그녀의 춤은 더욱 남성적이고 파워풀한 동작을 쟁취하려고 애써왔다는 그녀의 설명대로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우위"임이 춤과 신비로운 분위기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춤을 추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와인을 마시며 자신이 직접 만든 아로마 초의 향을 맡으며정신적 피로를 푼다는 그.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팔부터 시작해 머리, 가슴, 다리 온몸으로 원을 그리며 다시 춤으로 이어진단다. 춤에 파워가 있고 상상력이 있다. 영혼을 움직이는 것 같은 춤이다.
다음으로 발레리노 김용걸이다. 한 마리의 흑마와도 같았다던 젊은 시절 못지않은 현재의 아름다움과 박력에 이날 그 어느 무용수보다도 가장 박수를 많이 받았다. 검정색 타이즈에서 흘러나오는 남성 신체의 아름다움과 힘, 기량과 기교, 예술적 아름다움은 과연 국가 무용수 맞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끔 해주었다.
그가 뜬금없이 "발레는 참 재수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해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서양인 같은 특정 몸에게 맞는 발레를 한국인으로서 해내야 하는 고충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는 무용수의 나이 한계가 예전에는 30대만 되면 은퇴였는데, 요새는 인식이 많이 좋아져서 자신이 몸담았던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경우 40세가 넘어야 정년퇴직을 할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지금도 하루일과를 오전에 시작해 스스로의 테스트를 <돈키호테> 중 바질 솔로로 하려고 노력한다는 모습에서 멋진 한 무용수구나,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좀 작죠~"라며 김설진이 뒷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가 몸담았던 독일무용단 시절의 이야기가 참 재밌었다. 단장이 수면제를 먹이고 가수면 상태의 춤을 다시 재연하라고 해서 춤을 추던 시절의 이야기, 그 과정에서 실제로 몸 안의 소장에 작은 구멍이 나 있던 것을 모르고 춤을 추다 응급실에 가게 되었던 상황 등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는 현재도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일반인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춤은 삶의 고통과 슬픔 등 어두운 면을 절절히 그리고 얼굴 가득 드러낸다. 뭉크의 그림 <비명>을 연상시키게 갖가지 괴로움의 표정은 정말 그가 요즘 춤에서 추구하는 '질감', 인생의 질곡과 공간의 여러 가능성을 몸의 형태와 속도로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는 표정이 얼굴에서 팔로, 배로, 점차 온 몸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함께 울고 싶게 만드는 공감력을 가진다.
마지막에는 출연진이 순서대로 한명씩 등장해 에필로그처럼 한 마디씩 했다. 소망, 핸디캡, 일상이야기 등을 짧게 말하면, 바로 다음 타자가 등장해 자신의 말을 이어가는 식으로... 이내 무대에 여섯 명 출연진의 말소리로 가득하다. 각 장르 춤추는 여섯 명의 공통점은 춤을 정말 좋아하고 그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각 분야의 탑 레벨 선수들이었기에 말도 그만큼 잘하더라는 것이다. 춤을 말하다, 그냥 춤을 볼 때보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더욱 흥미로워지고 더욱 멋진 장르임을, 나도 춤추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에 김인아 교수와 여섯 명 무용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담한 후, 모두들 의사에게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상담을 마무리하는 장면에서는 안정감과 고마움이 함께 느껴진다. 춤과 자신을 말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알게 되고, 늘 내 자신이면서도 내가 나의 실현을 위해, 직업을 위해, 청중을 위해, 혹사해야만 하는 '나의 몸'. 그들, 무용수의 몸은 우리 모두의 예술 자산이므로, 소중히 관리하는 그들에게 우리 모두 감사하며 또한 앞으로도 꼭 잘 관리하시길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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