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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당일보다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초가 유난히 싱숭생숭하다. 눈이 내리는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솔로든 커플이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설레는 건 마찬가지다.

마치 시험 당일보다는 시험 기간이 더 긴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시험 보기 일주일 전의 스트레스는 시험 기간보다 몇 배나 심하다. 차라리 빨리 시험을 봤으면 좋겠다고 투덜댄 기억이 다들 하나쯤 있을 것이다.

막상 크리스마스는 별 거 없다. 설날처럼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는 것도 아니고, 추석처럼 송편을 빚으며 친척들과 보내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커플을 위한 날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솔로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따뜻한 방구석에서 귤 까먹으며 보내는 날'일 뿐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사실 커플을 위한 날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에 우리들 마음 한 구석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건, 사실 '산타 할아버지'와의 어렸을 적 추억 때문은 아닐까.

산타를 믿었던 그 때... 1999년 크리스마스의 추억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산타에 대한 믿음... 굳이 그 환상을 깰 필요가 있을까?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산타에 대한 믿음... 굳이 그 환상을 깰 필요가 있을까? ⓒ 픽사베이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이 구절을 들려주면 우는 아이는 눈물을 뚝하고 그친다. 코가 빨간 루돌프가 끄는 썰매, 그 썰매를 타고 다니는 뚱뚱한 할아버지.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좋은 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우는 아이는 착한 아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아이들은 머리가 커지면서 산타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선물을 줬던 건 부모님이란 걸 깨닫는다. 사실 유치원에서 선물을 나눠주던 그 산타 할아버지는 자세히 보면 운전기사 아저씨와 제법 닮았다. 수염도 어딘가 어설펐던 가짜 산타에 대해 눈치를 채게 되면 환상은 깨진다. 그리고 산타에 대한 환상이 깨지게 되는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다.

1999년,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역시 일가 친척 모두 큰집에서 모였다. 8살 무렵의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 작은 방에 고모부께서 슬쩍 들어오셨다. 고모부는 아이들에게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물었다.

언니는 분홍색 다이어리에 속지는 '핑클'이나 'SES'가 프린팅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사촌오빠는 당시 유행하던 미니카 세트를 콕 집어 말했다. 선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던 그 당시 둘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면, 언니랑 사촌오빠는 고모부가 산타 할아버지 노릇을 하리란 걸 눈치 채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저 인형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 밝았고 선물을 뜯으며 기뻐하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거실로 뛰어나가 크리스마스 트리 밑 내 이름이 적힌 선물상자를 찾아냈다. 포장을 풀자 헝겊 인형이 나왔다. 어린 나는 그 인형이 너무나도 못생겨 보였다.

'바비 인형'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해서 그냥 인형이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인형을 던지고 엉엉 울어 버렸다. "산타 할아버지가 밉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모부께서는 그 인형을 들고 나가셨다. 아빠 품에 안겨서 끅끅거리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데, 어느새 고모부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고모부의 손에는 바비인형이 들려 있었다. 그 인형을 나에게 건네며 산타 할아버지가 내 선물을 다른 아이의 선물과 착각해서 원래 주려 했던 선물과 바꿔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고모부, 아니 산타의 이마에는 한겨울임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날 나의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고모부 덕에 지켜질 수 있었다. 어린 철부지의 환상을 지켜주려 애썼던 고모부의 땀방울이 아직도 생생하다. 덕분에 산타에 대한 믿음은 2년 정도 더 유지될 수 있었다.

산타가 없는 세상이지만... 그 믿음을 우리가 지켜주자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는다는 게 유치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고 나니, 크리스마스는 단지 빨간 날로 다가올 뿐이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오랜만에 지인들과 모일 수도,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혼자 있기 외롭거나 뭔가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면 올해에는 우리 주변의 꼬맹이들을 위한 산타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산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코가 빨간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올 것이다.

밤하늘을 날아올 푸근한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 그 아이의 머리맡에 선물을 두며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치는 산타는 왠지 모르게 어렸을 적 우리의 산타와 많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산타를 기대하고, 산타를 알게 되고, 산타가 되며 매년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하나쯤 가지고 있을 산타에 대한 추억, 그 추억이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만든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괜찮다.

그러니, 우리가 억지로 그 환상을 깨줄 필요는 없다.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릴 필요도, 철부지의 몽상으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 산타를 믿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산타가 되어주면 된다.

그 환상을 지켜주자. 그 아이들이 언젠가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그 예전 산타에 대한 추억이 어른이 된 아이들의 가슴을 덥혀줄 테니 말이다. 나의 남자친구 유무와는 관계없이, 이번 크리스마스도 훈훈한 것처럼.

고모부의 땀방울, 2년 더 지속된 믿음, 그날 '바비 인형'을 집어들었을 때의 기쁨 그 모든 것이 뒤섞인다. 1999년과 2014년의 크리스마스가 겹치면서 묘하게... 따뜻하다.


#크리스마스#산타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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