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은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聖誕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메시지가 온 누리에 전해진 이날은 크리스마스(Christmas)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하여 '메리 크리스마스'. 이때쯤이면 거리의 캐럴과 함께 선물 보따리를 짊어진 하얀 수염의 산타클로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나운 날씨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요즈음. 군산 공설시장(구시장) 김정순(68) 아짐은 어제도 오늘도 분주하다.
"핫따, 참 오랜만에 오셨네. 오늘은 뭣을 드리까유?"
"꽃게무침하고 간장게장 만 원어치씩 담아주세요. 저기 굴 무침도 조금 싸주고요. 서울에 올라가서 사 먹어도 되는데, 고향음식 맛보고 싶어서 왔으니까 많이 줘야 해요. 나는 구시장에서 이 가게(아주머니)밖에 모르니까요···."
따뜻하게 느껴지는 손님의 아부성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김정순 아짐 손길이 바빠진다. 아짐은 "하이고, 고마워서 어쩐댜!" 소리를 연거푸 내뱉으며 온몸에 붉은 양념을 뒤집어쓴 꽃게 양념무침을 봉지가 넘치도록 퍼준다. 얇은 비닐봉지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꽉 찬다. 조금 전 버무린 것이니 맛이나 보시라며 배추겉절이도 한 봉지 덤으로 싸준다. '덤'은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정'이요 '나눔' 아니던가.
군산 공설시장에 자리한 '세광김치'. 간판에서 느껴지듯 김정순 아짐이 36년째 운영하는 반찬가게다.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밥을 해먹기 시작한 2001년 초가을 처음 발걸음을 했다가 꽃게무침에서 추억의 맛을 떠오르게 하는 매콤하고 개운한 맛에 매료되어 단골이 됐다. 한 달에 2~3회 이용하는데, 아짐의 구수한 입담과 퍼주기 인심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반찬들...
'세광김치'에 들어서면 밥도둑계의 전설로 소문난 꽃게무침, 전통 밥상의 반찬대장 배추김치, 향긋한 바다향이 그대로 전해지는 새콤달콤한 파래무침, 비타민C 함량이 사과의 10배에 달한다는 총각김치(알타리무 김치), 독특한 향이 입맛을 돋워주는 깻잎양념절임, 어른 아이 누구나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 보양식 밑반찬으로 꼽히는 멸치조림과 오징어무침, 탈모와 치매 예방에 좋다는 콩자반, 깊고 알싸한 맛이 일품인 파김치 등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펼쳐진다.
김정순 아짐은 요즘은 손님들 입맛이 까다로워 숙성이 필요한 젓갈, 김치 외에 모든 반찬을 그날그날 만들어 내놓는다고 말한다. 일일이 손으로 꼼짝거림서 만들어야지 공장에서 받아오면 손님들이 맛보고 금방 알아차린다는 것. 특히 신선도가 생명인 겉절이는 하루에 두세 번 버무리는 날도 있단다. 김 아짐은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디도 돈은 당체 모아지지 않는다"며 탄식과 푸념을 늘어놓는다.
매일 열리는 새벽시장에서 가져오는 재료를 사용해서 그런지 보기에도 신선함이 느껴진다. 싱싱한 총각김치에서 눈길이 멎는 순간, 금방 끓여낸 구수한 누룽지가 떠오르면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김 아짐은 다양한 메뉴 중 20~30대 주부는 오징어조림과 메추리알 장조림을, 40~50대 주부들은 멸치볶음과 파래무침을 즐겨 찾는다고 덧붙인다.
파김치, 양념을 화장하듯 묻히면서 담가야 제 맛 살아나
'세광김치'에서 취급하는 반찬은 얼추 40가지가 넘는다. 그중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매콤한 양념과 멸치젓국의 조화가 일품인 파김치. 1년 내내 식탁에 오른다. 파김치 황금 레시피 기본은 다진 마늘, 생강, 통깨, 설탕, 양파, 찹쌀풀 등으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파김치와 밥을 먹으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 특히 라면을 끓일 때 수프는 절반만 넣고 푹 익은 파김치 국물을 두세 수저 넣으면 라면 국물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가 같은 양념을 사용해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반찬가게 36년 경력의 김정순 아짐이 담근 파김치는 매콤한 고춧가루와 구수한 멸치젓국의 환상적인 조화, 눈물이 나올 정도로 톡 쏘면서도 입안에 감도는 느낌이 쌈빡해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을 떠오르게 한다.
김정순 아짐은 파김치는 재료와 양념, 방법 등이 비슷비슷해서 특별히 맛있게 담그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게 있다면 잘 다듬어서 물에 씻어낸 쪽파 숨죽이기부터 간 맞추기까지 멸치젓국만 사용한다는 것. 어려서부터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음식솜씨를 전수받았다는 김 아짐의 파김치 담그기 노하우를 들어본다.
"사실 파김치를 입안에 착착 감기에 담그는 방법은 따로 없어유. 파의 향내랑 특유의 맛을 살려놔야 푹 익어도 연허고 깊은 맛이 우러나지 죽어버리믄 파가 질기고 맛이 없쥬. 그러믄 어떻게 허야냐.
처음부터 숨을 소금으로 죽이지 말고 멸치젓국으로 죽여야 헌다 이말이쥬. 아무리 천일염이라도 소금은 소금잉게.... 말허자믄 멸치젓국을 미리 쪽파에 골고루 뿌려주고 한참(1~2시간) 재워뒀다가 만들어둔 양념장을 얼굴에 화장허디끼 살살 묻혀감서 담가야 간이 지대로 맞으면서 지(파) 맛이 살어난다 이거쥬···."
김정순 아짐은 겨울에 먹는 파김치는 만병통치, 즉 보약이나 다름없으니 되도록 많이 드시라고 권한다. 김 아짐 말마따나 가을과 겨울이 제철인 쪽파는 한국 음식에서 '약방의 감초'다. 독특한 맛과 향으로 멀리 도망간 입맛을 잡아주고, 해독, 살균 작용이 강하며, 잡냄새 제거에도 효과적이어서 모든 양념과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서다.
파김치 재료 쪽파(조선파)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부부의 '백년해로'에 비유되는 채소이기도 하다. 풍부한 섬유질과 각종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 겨울철 감기 예방과 고혈압, 당뇨, 노화 지연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위 기능을 돕고, 눈을 맑게 해주며 변비, 탈모, 피부미용,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김치보다 영양가도 높고 담가 먹기도 간편한 파김치. 성탄과 연말연시에 맛깔스러운 파김치로 건강도 지키고 '백년해로' 서약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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