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끝날 즈음인 12월 26일,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아래 원전) 3호기 보조건물 밸브 룸에서 일어난 질소가스 누출로 3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더 커졌다.
이번 신고리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인 12월 19일에는 KBS TV에서 <사용후 핵연료 특별기획 제1편-10만 년 후>가 방영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원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때맞춰 2014년 11월 말에 출간한 <탈바꿈>이라는 책이 눈길을 끈다. 탈바꿈프로젝트는 반핵·탈핵 운동가와 시민단체 활동가 그리고 여러 전문가가 함께, 시민들이 핵발전의 위험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프로젝트다.
<탈바꿈>은 독자가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주장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현 정부 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주민들의 가려진 귀를 여는 책이다. 또한 많은 자료를 첨부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곁들여 독자가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원전의 문제가 무엇이기에 오늘날 이처럼 많은 주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크게 '원전의 안전성'과 '사용후 핵연료 부지선정'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분출된다면원전 안정성 문제는 지난 2011월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fukushima)에서 일어난 원전 폭발 사고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폭발한 제1원전 4호기 수조에는 1500개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가 보관돼 있었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원전이 완전 파괴될 경우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할 수 없게 되므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분출될 순간이었다. 더구나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를 꺼낸다 해도 처분할 곳이 없었다. 이미 1~3호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수조는 오염이 아주 심해 현재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핵연료가 녹아 건물 밖으로까지 흘러나오고 말았다.
문제는 핵연료 방사능이다. 스트론튬-90은 칼슘과 같은 성질이라 뼈 속에서 생성되는 골수에 작용해 빈혈, 백혈병, 뼈 암을 유발한다. 또한 세슘-137은 칼륨과 같은 성분으로 칼륨이 작용하는 심장, 신장, 간과 같은 기관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요오드-131은 갑상선 암을 유발한다.
이외에도 문제가 되는 많은 방사능 물질들이 있다. 더욱이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지진은 1978년 지진계가 도입된 이후 1994년 이전에 19.2회가 일어난 것에 비해,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47.7회가 일어났다.
만약 안전성에 충분히 신경을 쓴다 해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가 남는다. 인류가 원전을 가동한 지 60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1978년 원전 운영을 시작 후 30년 만에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원전 근로자들이 사용한 옷, 장갑, 신발 같은 폐기물) 처리장을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지었다.
그러나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총 방사능의 95%를 차지하는 사용후 핵연료를 위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은 없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약 4년 동안 핵분열을 하며 물을 끓이다가 수명이 다한 연료봉이다. 300년을 보관해야 하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에 비해 10만 년을 보관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사용후 핵연료 부지 선정은 어떻게 할까현재 우리나라는 노후 핵발전소 시대이다. 국내에 23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이는 세계에서 5번째 많은 수다. 추가로 5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고, 고리와 울진에 각각 2개 씩 총 4기를 더 건설할 계획에 있다. 새로운 원전이 완공되면 우리나라의 원자로당 발전 면적은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쌓인 사용후 핵연료는 1만4000 톤이며, 매년 750톤의 사용후 핵연료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2014년에는 1983년 첫 가동을 시작한 월성 원자력 발전소의 수조 저장 용량 4만5000 다발 중 3만3000 다발이 저장되었다. 2010년에는 높이 6.5m와 두께 1m의 콘크리트로 되어있는 건식저장 시설 300개에 16만2000 다발이 모두 찼다.
조밀 건식저장시설도 운영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절반이 넘게 찼다. 그리고 2018년 12월에 16만8000 다발을 끝으로 포화될 예정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부지 선정을 못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 중간 저장 시설 건설은 2016년이었지만, '2013년 한국원자력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화 시점이 2024년으로 늦춰졌다. 정부는 원전을 건설하는 정책만 내세울 뿐이었지 뒷수습을 잘하는 정책은 못하고 있었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 31개국을 통틀어 35만 톤의 폐기물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40년까지 전 세계 약 200개의 원자로가 폐기될 예정이고, 또한 2040년에는 사용후 핵연료의 양이 지금의 두 배로 늘어 70만 톤을 넘어설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폐기물이 매년 약 1만2000톤 씩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사용후 핵연료 처분을 위해 ▲ 로켓에 실어 우주에 보내기 ▲ 깊은 바다에 묻기 ▲ 남극에 가져가기를 내세웠지만, 위험성이 너무 커 모두 무산됐다. 현재는 균열 없고, 지하수가 흐르지 않은 지하 500m까지 구멍을 뚫어 영원히 봉하는 '최종처분'을 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사성 물질이 방폐장 밖으로 이동하는 것은 지하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지하수 유동을 막으면 방폐장은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로 이용하던 독일 아쎄(Asse) 광산에서 지하수가 흐른 사례가 있다. 결국 독일 정부는 이곳에 있는 폐기물 모두를 다시 꺼내야 했다.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공공참여의 중요성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31개국 중 10개국만이 최종처분을 하기로 했고, 다시 이 중 스웨덴과 핀란드만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핀란드는 1994년부터 '어떤 원자력 시설도 국민이 반대하는 지역에는 영구히 건설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달고 시민들과 소통했고, 결과 2001년에 세계 최초로 사용후 핵연료 최종 처분장 부지를 확정했다. 스웨덴도 사용후 핵연료 부지 선정을 위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1100번의 만남을 가졌고, 부지 선정까지 무려 30년이 걸렸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 부지를 선정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위험의 존재와 크기는 객관적으로 실재하기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전문가 중심의 폐쇄적 위험관리체계가 무지한 일반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면 위험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인식의 틀에 따라 위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의 공공참여가 필요하다. 정책 결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이 그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고, 시민에게 자문하고,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참여과정에서 시민들도 특정 주제를 스스로 공부하고, 전문가나 동료 시민과 토론하면서 충분한 정보와 균형 잡힌 견해로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핵연료 저장시설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는 원전지역 특위를 구성해, 원전이 있는 월성·울주·기장·영광에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간담회 및 설명회를 종종 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성을 지닌 일방적 정치와 '말의 정치(Politics of talk)'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탈바꿈프로젝트의 책 <탈바꿈>을 읽다보니 현재 우리나라와 세계의 원전 문제를 느낄 수 있었다. 인류가 조금 더 안전하게 전기를 얻으면 좋겠지만, 약 70억 인구를 위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책에서도 원전 운영의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국가들이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길 주장했다.
그러나 원전 없이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구체적 계획도 없이 그저 친환경 발전을 부추기기만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2015년에는 원전이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다. 그때는 탈바꿈프로젝트가 <탈바뀜>이라는 책을 내지 않을까 기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