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천(49) 경정이 지난 20일 구속됐다. 입원해 있던 서울 도봉구 소재 병원에서 긴급체포된 지 나흘 만이었다. 박 경정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물러나면서 '정윤회 동향 보고서' 등 청와내 내부문건들을 밖으로 유출했다는 것이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범죄 혐의가 중대하다"라고 했다.
박 경정은 '정윤회'라는 박근혜 정부의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박근혜 정부 그림자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통해 국정에 개입해왔다는 내부문건을 작성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한 것이다. 이를 두고 권력 내부에서 '비선실세 국정개입'의 심각성을 경고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반면 자신이 벌인 '찌라시 공작'에 자신이 무너졌다는 냉혹한 시선도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암행감찰반-공직기강비서관실 파견근무박 경정은 대구에서 태어나 지난 1985년 56년 역사의 대구고를 졸업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임환수 국세청장,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대구고 출신이다. '서울고'가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에서 부상했다면 '대구고'는 2기 내각을 상징하는 열쇠말 가운데 하나다. 대구고를 졸업한 이후에는 방송통신대를 다녔다(1990년~1996년).
박 경정은 지난 1993년 경찰간부후보생 41기로 경찰에 들어왔다. 경찰에 들어오기 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1학년 때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퇴교조치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간부후보생 41기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그는 감찰과 지능범죄 수사 등에서 능력을 발휘해왔다. 스스로 "내가 국내 특수수사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수사통이면서도 정보수집과 분석에 탁월하다는 평가가 많다.
박 경정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2011년~2013년) 시절 ▲ 제임스한 사기사건 ▲ 검찰청 앞 사설도박장 사건 ▲ 군납 식품업체 가격 담합 사건 ▲ 방위사업청 비리 사건 ▲ 교통안전공단 인사 비리 사건 ▲ 아프간 파병 불량 군장비 납품비리 사건 ▲ 조희팔 사기사건 ▲ 김학규 용인시장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 유명 사립대 전 총장 아들의 청와대 금품 로비 의혹 사건 ▲ 국세청 조사국 직원 뇌물수수 사건 ▲ 동아제약·대화제약·CJ제일제당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 등을 수사했다. 특히 김광준 검사 비리 사건과 경찰관의 밀양 검사 고소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경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종암경찰서와 남양주경찰서, 경찰청 마약지능수사대와 지능범죄수사대 등에서 근무했던 박 경정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국무총리실(2006년)과 금융위원회(2010년), 대통령 비서실(2013년)에 파견 나갔다. 그는 '암행감찰반'으로 불렸던 조사심의관실(국무조정실)과 범죄 의심이 있는 금융거래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주요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MB정부 시절 대통령훈장까지 받아 'MB맨'이라는 평가도국회를 통해 입수한 박 경정의 인사기록카드는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훈장(2011년)과 안전행정부 장관상(2009년), 경찰대학장상(2010년)을 연달아 받았다. 5건의 상훈 가운데 3건이 이명박 정부에 집중돼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경찰대학장상(2002년)과 대통령상(2004년)을 받은 경력에 비하면 이명박 정부 시절에 유독 '상복'이 많았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경감에서 경정으로 승진한 때도 이명박 정부 시기였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가 'MB맨'이라는 평가도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의 한 관계자는 박 경정이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상, 경찰대학장상, 대통령 훈장을 받고, 금융정보분석원에 근무하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으로 승진한 것을 두고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다 컸다"라고 표현했다.
게다가 박 경정이 정윤회 동향 보고서 등을 언론에 흘린 것을 이명박 정부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앞서 언급한 국회 안전행정위 관계자는 "정윤회 동향 보고서가 보도된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다"라며 "그로 인해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위산업비리)이 다 물건너갔다, 이명박 쪽에서 정말 좋아할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경찰청 범죄정보과의 한 관계자는 "박 경정은 TK(대구·경북)출신이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 비서실 등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었다"라며 "전라도 출신들은 그런 곳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 세 정부에 걸쳐 요직에 파견나간 것을 보면 박 경정의 '빽'이 좋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파견 10개월 만에 중도하차박 경정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4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로 파견나갔다. 역대 정부에서는 통상 민정비서관실이 대통령 친인척들을 관리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업무가 공직기강비서관실로 이관됐다. '인사검증'에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까지 맡으면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힘이 세졌다.
그런데 박 경정은 지난 2월 갑자기 청와대에서 물러났다. 공직기강비서관실로 파견나간 지 10개월 만의 도중하차다. 박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미행사건을 내사한 것이 화근이었다. '박지만 회장 미행사건'이란 지난해 정윤회씨 쪽에서 박 회장을 미행하다가 들켰다고 알려진 사건을 가리킨다.
청와대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 3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박 경정은 "정윤회씨의 박지만 회장 미행사건은 금시초문이다"라면서도 "좌천은 맞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고리 권력 3인방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겪은 것은 맞다"라고도 했다. 정윤회씨 쪽에 서 있던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견제받아 일선경찰서로 좌천됐다는 얘기다.
박 경정은 청와대에 물러난 이후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장으로 발령날 예정이었다. 서울 남산 예장동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부지에 위치한 정보1분실은 서울경찰청 정보1과 4계 외근 사무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는 서울 도봉경찰서 정보보안과장으로 발령났다. 기획수사나 사정분야에서 활동해온 그가 치안·방첩정보 등을 다루는 곳으로 좌천된 것이다. 그와 함께 총경 승진도 어려워졌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갔으니 총경 승진을 바랐을 것이다"라며 "청와대에서 최대 2년 정도 근무하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총경 승진이 주어지는데, 박 경정은 10개월 만에 도중하차하면서 여러 가지가 엉클어져 버렸다"라고 말했다.
"박 경정이 직접 정보공작을 벌였을 개연성이 있다"박 경정이 지난 2월 다량의 청와대 내부문건들을 가지고 나오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애초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라고 주장했던 그는 검찰조사에서 "청와대에서 출력한 문건을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겼다"라며 문건 유출을 인정했다. 그가 반출한 청와대 내부문건에는 정윤회 동향 보고서뿐만 아니라 박지만 회장 주변 인사들의 비위 의혹과 부인 서향희 변호사의 동향 등을 담은 문건도 포함돼 있었다.
박 경정이 유출한 청와대 문건들은 정보1분실에 근무하던 한아무개 경위와 최아무개 경위를 거쳐 언론사와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에서 보도한 '정윤회 동향 보고서'도 그렇게 유출된 문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일각에서는 박 경정이 통일교 신도여서 <세계일보>에 문건을 건네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박 경정의 문건반출을 "국기문란행위"라고 규정했고, 검찰도 문건 내용의 진위보다는 문건 유출에 중점을 두고 수사해왔다. 검찰은 박 경정이 반출한 청와대 내부문건들을 '대통령 기록물'로 보고 조만간 그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할 예정이다.
구속된 박 경정을 바라보는 경찰 내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근무하는 한 인사는 "뚱뚱한 미꾸라지 한 마리가 경찰 조직을 뒤흔들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박 경정은 경찰의 별이라는 총경을 달고 싶어 청와대에 들어가 박지만 회장 쪽에 서서 뭔가를 도모하려 했다"라며 "하지만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한 십상시의 반격이 있었고, 이 싸움에서 패배해 청와대를 나왔다, 이후 분에 받쳐 <세계일보>에 문건을 넘긴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정보분실의 또다른 인사는 박 경정을 "행동대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박 경정이 이번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사건의 처음이자 끝이다"라며 "총경으로 승진하기 위해 정윤회 동향 보고서 등을 작성했지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자 '한번 해보자'며 <세계일보>에 문건을 흘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정보분야에서 활동해온 한 인사는 "총리실 암행감찰반 등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보면 박 경정이 직접 정보공작을 벌였을 개연성은 있다"라며 "박 경정은 영웅심리를 갖고 있어 자기를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번진 이번 사건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박 경정은 지난 16일 긴급체포되기 직전 <채널A>와 한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속이 후련해지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며 "물바가지는 한번 새기가 힘들지 한번 새기 시작하면 그 바가지는 깨진다"라고 '경고'했다. 권력을 향한 그의 '법정투쟁'이 벌써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