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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탈핵 낫(일명 목암 낫)'을 만들어 공개한 뒤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문의와 제작의뢰를 받았다. 그런데 가장 곤란했던 점은 내가 대단한 발명가라도 되는 줄 알고 그동안 만들어 놓은 발명품(?)들을 내 놔 달라는 요청이었다. 방송사에서도 연락이 왔었고, 어느 대안기술 카페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아쉽게도 내게 그런 건 없다. 발명품이라 할 만한 건 없으나 발명 일은 한다고나 할까.

목암 낫

'탈핵 낫'은 이름이 너무 거창해서 핵발전소를 없애려는 무기인지 핵발전소 반대운동용품으로 오해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낫 인줄 알았다고 하니 이름이 과도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그냥 내 아호를 따서 '목암 낫'이라 부르고 있다.

용도가 전혀 다르게 새로 제작했다.
▲ 목암낫 1호와 2호 용도가 전혀 다르게 새로 제작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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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목암 낫' 2호를 만들었다. 1호도 서너 번 개량해서 편하게 썼는데 이번에 만든 것을 2호라 하는 것은 용도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목암 낫 1호는 풀과 함께 논밭 둑에 자라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베는 것인데 반해 2호는 이 둘의 용도를 나누어서 각각의 전용 낫으로 만들었다.

2호는 ㄱ형과 ㅅ형 두 가지다. 늦가을과 이른 봄 사이에 농장 주변에 앙상하게 서 있는 찔레나무나 싸리나무, 고춧대를 자르는 낫을 ㄱ 형이라 하고 갈대나 풀, 호밀 등을 베는 것을 ㅅ형이라 이름 붙였다. ㄱ형 낫은 나뭇가지를 걸어 당겨쓰고 ㅅ형 낫은 휘둘러 쓴다. 이처럼 일하기 편리하게 새로 만들거나 고쳐 쓰는 농기구들을 '발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작은 개조도 '발명'에 포함한다면 말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게 된 방송에서 윤도현의 물티슈가 그런 경우라 하겠다. 가수 윤도현이 연예 프로에 나와서 물티슈를 오만가지로 활용하는 사례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는 물티슈를 과자봉지 밀봉마개로도 쓰고 욕실 곰팡이 제거용은 물론이고 벽에 붙은 콘센트 안전장치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 쓰는 것들은 농기구가 비중이 크지만, 농기구에만 제한되지 않고 농가 생활용품 전반에 해당한다. 나는 웬만하면 만들어서 쓴다. 이웃집이나 고물상에 가면 재료들은 널려 있고 기술적인 원리나 도면은 인터넷에 친절하게 다 공개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다. 다만 시간이 문제다. 시간은 내가 내는 만큼 만들어진다는 게 내 소신이다.

시간은 그 길이나 속도가 신축적일 뿐 아니라 창조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간여행(타임머신)이 가능한 것이다. 스티븐 호킹이 줄곧 하는 얘기가 그렇다. 호킹은 <위대한 설계>와 <시간의 역사>에서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마당에 빨랫줄이 두 개다. 빨랫줄이 두 군데 처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두 줄로 처져 있다는 것이다. 튼튼한 나일론 줄을 왜 굳이 두 줄로 쳐 놨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빨래를 마쳤는지라 '짜잔~' 하면서 줄에 나란히 매여 있던 한 자 좀 더 되는 대나무 대롱을 줄 사이에 끼우자, 두 줄짜리 빨랫줄이 바로 빨랫줄 두 개로 변신하였다. 빨래를 두 배로 널 수 있게 된 것이다.

빨래가 많을 때 두 줄이 된다
▲ 빨래줄 빨래가 많을 때 두 줄이 된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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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 없거나 적을 때는 한 줄이 된다.
▲ 빨래줄 빨래가 없거나 적을 때는 한 줄이 된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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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하루에도 두세 번 세탁기를 돌려야 할 때도 있을 정도로 어머니 빨랫감이 많다. 빨랫줄을 두 개 쳐 놓으면 평상시에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폐단을 줄인 것이다. 누구는 이것을 보고 요술쟁이 빨랫줄이라고 한다.

나락 너는 당그래

아래 사진은 나락을 말릴 때 사용하는 '당그래'다. 처음에는 철물점에서 3천 원 주고 사서 썼는데 한 개 가지고 부족해서 더 사려다가 직접 만들어 본 것이다. 딱 한 번 실수하고는 완벽하게 만들었다. 플라스틱 당그래를 본떠서 만드니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직소기로 금 따라 잘라냈다. 손잡이를 고정시키는 과정에 조금 머리를 썼다. 1인치 남짓 되는 손잡이 굵기에 못을 함부로 박으면 쪼개지기 때문에 바늘 같은 타커기 핀으로 박았더니 튼튼하고 야물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서 귀농한 후배들 집을 방문 할 때 선물로 주기도 했다. 플라스틱보다 질감도 좋고 제작자의 솜씨가 묻어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 수제품이라는 긍지도 있는 농기구다. 기계에서 규격품으로 찍어내는 제품들은 어딘지 몰인정하고 식상하지 않은가.

나락 널 때 쓴다
▲ 당그래 나락 널 때 쓴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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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에서 물 호스를 사다가 한전에서 쓰다 버린 '공리일(얼레)'에 감아 물 호스 타래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연결부속과 스프레이 건을 사다 연결했더니 쓸 만했다. 돈이 반으로 절약된 것도 그러려니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흐뭇함이 더 크다.

주의가 필요한 것은 물이 들어가는 물 호스 초입이 타래에 감길 때 너무 급격하게 꺾이는 문제였다. 이것은 반대쪽으로 호스를 늘여 감으니 해결되었고 물 호스 타래를 땅바닥에 수직으로 안정시키는 것은 양쪽에 받침을 만들고 가볍고 회전력이 좋은 대나무로 축을 만들어 끼워 그리스를 좀 발라 줬더니 소리도 없이 잘 돌아갔다.

비를 맞히면 나무에 물이 배서 들고 다니기 무거운 게 단점이다. 비 맞은 나무는 팽창하기 때문에 둘둘 감겨 있는 물 호스에도 영향을 준다. 철물점에서 파는 철판 제품과 달리 비를 안 맞혀야 하고 호스 안에 있는 물을 빼놓아야 옮기기에 편하다.

농가에서 쓰는 농기구가 많기도 하지만 이들을 분야별로 나누면 땅용, 작물용, 제초용이 되겠다. 자연재배 농부는 아무래도 제초용 농기구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땅을 갈거나 농산물을 거둬들이는 농기구는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농기구 대부분은 풀 관리용

제초용 농기구는 '풀밀어'와 '바퀴호미'가 유명하다. '풀밀어'는 상당히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농기구다. 둘 다 이미 자라고 있는 풀을 제거하는 농기구다. 서서 쓱쓱 앞으로 밀면 풀을 맬 수 있어 좋지만, 밭이 경사가 졌거나 골의 간격이 맞지 않으면 일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포기 사이에는 끍쟁이나 딸깍이로 작업을 한다. 이것은 작물 포기 사이에 난 풀들을 제거하는 데는 아주 그만이다.

적정기술 운동을 하는 귀농자가 만들었다.
▲ 바퀴호미 적정기술 운동을 하는 귀농자가 만들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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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초기에는 풀을 제거하는데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제압(?)하는데 더 신경을 쓴다. 풀이 아예 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농사부산물이나 낙엽, 풀로 덮는 것이다. 그래도 솟아나는 풀이 있다면 그 기개를 가상하게 여겨 놔둬도 무방하다. 이런 풀은 뿌리가 약해서 호미 없이도 쉽게 뽑힌다.

내가 만든 '지네발 호미'가 이럴 때 쓰기에 알맞다. 풀이 제 세상 만난 줄 알고 의기양양할 때, 7개나 되는 호미 날로 득득 긁어주는 풀매기 호미다. 이걸로 흙을 한 번 뒤집어만 줘도 풀은 초토화된다. 혹시 좀 자란 풀이 있으면 호미를 세워서 살짝 찍어주면 뿌리 밑동이 댕강 잘리게 하였다. 옆면이 제법 날카롭다.

풀이 끼지 않게 지네발을 만들어고 양쪽이 다 날카롭게 되어 있어서 뿌리 굵은 풀 매기 좋다. 서서 일하니 힘들지도 않다.
▲ 지네발 호미 풀이 끼지 않게 지네발을 만들어고 양쪽이 다 날카롭게 되어 있어서 뿌리 굵은 풀 매기 좋다. 서서 일하니 힘들지도 않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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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발 호미'는 풀이 호미 이빨 사이에 안 끼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에서 사 쓴 농기구는 자꾸 풀이 껴서 불편했다. 그래서 지네발 호미는 안쪽 역 V자 부분에 살짝 라운딩을 줘서 만들었다. 그래도 오래 쓰다 보니까 아쉬운 곳이 발견되었다. 땅바닥에 닿는 면의 중앙보다 양 끝을 약간만 휘어지게 부메랑처럼 만들면 평지가 아니고 골진 밭을 매기가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음에는 그렇게 진화시켜 볼 생각이다.

삽쇠라는 농기구가 아래 보이는 사진이다. 일반 삽과 다른 것은 삽보다 훨씬 땅 속 작물을 캐기가 좋다는 것이다. 땅 속 깊이 들어가게 한 날 길이 때문만이 아니고 손잡이를 뒤로 제치면 흙과 함께 농작물(예컨대 감자나 고구마나 야콘)이 상하지 않고 안전하게 캘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삽쇠 뒤에는 힘 받침대가 있어서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상처내지 않고 고구마 캐기 좋다.
▲ 삽쇠 상처내지 않고 고구마 캐기 좋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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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고구마를 캘 때 보니까 힘 받침대가 너무 길어서 삽이 땅 위로 솟구치는 단점이 있었다. 힘 받침대를 좀 짧게 할 필요가 있겠다. 원래는 철물점에서 파는 4발 잡이 쇠스랑 두 개를 나란히 쇠 파이프를 대고 용점해서 8발 쇠스랑을 만들었다. 너무 넓은 면적을 감당하느라 힘이 들어서 쇠스랑 다리를 하나 잘라내고 6발(발 두 개는 나란히 묶어서 하나로 침) 쇠스랑으로 고구마나 감자를 캐 봤는데 쇠스랑 발 굵기가 가늘어서 곧잘 휘어졌다. 그 대안으로 삽쇠를 이용하게 되었다.

만들어 쓰는 농기구의 보람

언젠가부터 마당비도 플라스틱 제품, 소쿠리와 도리깨도 석유화확 제품이다. 당장 돈으로 따지면 싸리나무 잘라다가 엮어 쓰는 것보다 2천 원짜리 플라스틱 마당비가 싸다. 하지만 이는 눈에 안 보이는 귀한 것을 포기하고 이뤄지는 공산품 거래다. 자연과의 교감이나 내 건강을 덤으로 지불하고 이뤄지는 거래다. 결국 밑지는 장사다. 플라스틱 제품은 생산 과정이나 폐기 과정에 치명적인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영 찜찜한 일이다.

농기구를 만들어 쓰는 것은 돈으로만 따질 일은 아니다. 몸이나 머리의 특징은 알맞게 써 줄수록 더 성능이 좋아진다는 데 있다. 농기구나 농가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또 하나의 이유다. 손과 발을 삶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농부들만의 특권이다. 가령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농기구' 같은 연결망이 만들어지면 이런 사연과 재능들을 나눌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귀농통문> 신년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농기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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