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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을 대형풍선에 담아 북한에 날려보내는 일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위험을 일으킬 경우 정부가 전단 살포를 막는 건 위법하지 않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의정부지방법원 민사9단독 김주완 판사는 6일 대북전단 대형풍선 발명자 이민복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국민에 위험 끼치는 대북전단 살포 제지, 위법 아냐"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회원들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4주기인 10월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을 날려보냈다.
▲ 탈북자단체, 대북전단 20만장 살포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회원들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4주기인 10월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을 날려보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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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탈북해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씨는 지난해 6월, 2007년 이후 군과 경찰, 정부 공무원 등이 자신의 대북전단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방해한 행위 13건과 북한의 살해위협으로부터 이씨의 신변을 보호하는 경찰관들이 임무를 게을리 한 3건의 사례를 모아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공무원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받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북한의 인권탄압 실상을 알리고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위해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을 북한으로 날리는 것은 원고의 표현의 자유에 속한 것"이라며 "그 자체는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한 적법한 의사표시의 한 방법이라 할 것이고 피고(국가)로서도 이를 원칙적으로 제지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김 판사는 북한 당국이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이 북측으로 넘어오면 도발지점뿐 아니라 남측에 대한 전면적인 격파·사격을 하겠다고 위협한 일, 실제 지난해 10월 10일 북한군이 경기 연천 지역에서 대북전단 날리기에 대해 고사포를 쏴 포탄이 민통선 지역에 떨어진 일을 예로 들었다.

김 판사는 "대북전단을 대형풍선에 실어 날리는 행위는 원고와 원고의 신변을 경호하는 경찰관을 비롯해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지역과 휴전선 지역 부근에 사는 국민들의 생명, 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따라서 경찰관이나 군인은 이런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관직무집행법 혹은 민법에 따라 대북전단풍선을 날리는 행위를 제지할 수 있고, 그 제한이 과도하지 않은 이상, 제지 행위를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경찰·군인 등이 풍선날리기를 제지한 각 사건들에 대해 김 판사는 강도가 낮은 수준의 물리력 혹은 유형력 행사에 그쳤다고 봤다. 김 판사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대북전단 활동으로 인해 원고와 신변보호 경찰, 휴전선 인근 국민들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침해되는 법익과 보호되는 법익 사이의 균형성이 있어 위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씨 주장 중 지난 2011년 3월 정부 공무원이 선박회사에 전화해 이씨의 풍선 차를 배에 실어주면 배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부분은 증거가 없어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씨는 항소를 검토하는 걸로 알려졌다.

"대북전단 살포, 표현의 자유라 못 막는다"는 정부 명분 사라져

남한에서 대북전단을 실은 대형풍선을 날려보낸 일은 북한의 강경대응으로 이어졌다. 북한이 풍선에 사격, 포탄이 남측에 떨어졌던 지난해 10월엔 정부가 대북전단 날리기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지만 통일부와 국방부 등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이어서 우리가 통제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만 해왔다. 현재까지도 대규모 대북전단 살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풍선가스 판매 제한, 살포장소 선점 등 간접적인 제지 뿐 아니라 직접적인 살포 제지도 국민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더 이상 대북전단 날리기를 방임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 판결과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정부에 대북전단 살포행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일을 거론하며 "통일부는 더 이상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남북 당국이 접촉조차 못하고 그로 인해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등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들에 대해 북한과 논의조차 못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태그:#대북전단, #원점타격, #표현의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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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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