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내게도 다르지 않다. 가깝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또 막연한 적개심 같은 게 마음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 못난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괜찮고,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라 해도 괜찮다. 그냥 일본이란 내게 그런 나라다. 솔직히 일본에 대하여 아는 게 없다.
일본군 성노예나 독도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때 속으로 삿대질 한 번 해보는 정도가 일본에 대한 내 모습이다. 이번 참에 맘 한 번 크게 먹고 일본을 알아볼 양으로 집어든 책이 김상태 작가의 <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이다. 부제는 '폭력과 허위로 얼룩진 천년 사무라이 국가'다. 책 제목만 봐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할지 가늠이 간다.
그러나 책 내용은 호기에 찬 내 모습과는 달리 냉정하고 시종일관 침착하다. 수많은 역사적 사료들과 도서들을 근거로 또박또박 일본의 전쟁광기와 미개함, 일당독재, 우경화 등을 밀도 있게 언설하고 있다. 표현이 과격할지 모르지만 논설에 있어서는 일목요연하고 정연하다.
나치 독일과 난징학살의 일본이 다른 이유
최근 몇 년 새 읽은 책 중 가장 두꺼운 책인데 가장 읽힘이 매몰찬 책이기도 했다. 저자는 막힘없이 639쪽에 이르며 일본의 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짚어나간다.
저자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확한 방식"으로 대중의 한 사람으로 치우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일본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다룰 수 있음을 자신감으로 내보인다.
저자는 일본에서 배운 한국의 일본역사가들을 전문가로 대우하기를 꺼린다. 저자는 무수한 도서들을 섭렵하고 이 책을 사명감을 가지고 썼음을 책을 읽으며 알아챌 수 있다. 일본은 "해방되지 않으면 위험한 나라"며 "그 가능성에서 북한보다 더 위험한 나라"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일본이 해방되지 못하면 사라져야 하는 나라"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왜 그럴까? 책은 바로 그걸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나치에 의한 600만 유대인학살을 뛰어넘는 난징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을 이야기하며, 나치의 만행보다 더한 짓을 저지르고도 그게 잘못인지 모르는 게 일본이라고 지적한다. 나치는 학살 대상자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 가스실이라는 집단살상을 택했다. 군인이 멀쩡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그리 어렵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직접적인 대규모 학살과 강간에 모든 병사가 참가했고 또한 지속적으로 그렇게 했다. 윤색되긴 했지만 이런 일이 신문에 자랑스럽게 보도되고 그것을 보는 일본 국민들은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중략) 특히 이들은 검으로 사람의 목을 베는 것을 좋아했다. 필수 경험이나 되는 것처럼 서로 가르치며 그렇게 했다.(68쪽)이게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 무사도란 거다. 독일과 일본이 그 이후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대처 방법이 전혀 다르다. 이는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일본이 죄를 자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침팬지 행동'에 비유한다. 침팬지는 다른 집단을 학살하고도 여전히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기 집단에서 자애롭다.
거짓과 신화로 꾸며진 일본의 사무라이 역사'주군에 대한 충성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일본의 근간인 사무라이 정신은 천황이란 존재를 옹위하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천황은 무사통치의 표면이고 '서류가방을 든 무사들'은 신화와 신비로 자신들을 미화했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역사다. 스미스의 <일본재구성>에 인용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일본이라는 것 자체가 순전히 누군가 만들어낸 허위에 불과하다. 그런 나라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그런 국민은 없다.(위의 책 25쪽)조선의 명성왕후를 '여우사냥'이란 작전명으로 해치우는 국가, 그것도 전 국가적으로 자랑스럽게. 일본의 무사정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적·외교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이런 엽기적 살인 축제를 여는 것은 이런 광기어린 살인이 그들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유물 도적, 학문적 조작, 갈취와 은폐 등은 식은 죽 먹기란 뜻이다. 교과서 왜곡도 이런 류이다.
저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예로 들며 사무라이의 주기적이고 극단적인 살육의 카니발, 성과 여성을 대하는 일그러진 인식, 사무라이 체제의 도구로 전락한 일본 학계의 실상 등을 지적한다. 일본은 위기 때마다 죄의식이 없는 살인기계 무사집단을 동원하여 한국이나 중국 등 준비 안 된 국가들을 침략함으로 돌파구를 헤쳐 나갔다.
독도 영유권 주장도 이와 같다. 저자는 "궁지에 몰린 사무라이들이 일본 민중을 또 다시 어둠의 억압 속으로 밀어 넣겠다는 절망적 의지"라며 그들은 전쟁만이 위기를 모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조일전쟁(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이 모두 그런 맥락이다. 지금은 일본 자위대가 파병을 할 수 있는 법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일본서기>로 비롯된 일본 역사는 거의 조작이다. 초기 천왕들은 그 실재가 의심스럽다. 조작 이유는 천년을 이어온 사무라이 정권이 "자신들의 입지를 절대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는 가끔 TV화면에서 너무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일본인을 본다. 저자는 그것 자체가 의식의 조작이라고 본다.
내세울 만한 '도'나 '예'가 없기에 겉으로 보이는 '예'가 일본의 인상처럼 느끼게 된다. 양아치 집단인 사무라이는 그런 형식적인 '예'로 일본을 끌고 나가고 있다. 한국은 선비정신이 있다. 중국은 유학이 있다. 일본은 그게 없다. 그러니 양아치와 다름없는 무사도지만, 겉으로는 예를 다하는 듯한 깍듯함만이 비쳐진다.
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 기로에 있어저자는 메이지유신을 일본의 대변혁의 멋진 역사로 보는 데 반대한다. 서구의 개항 압력에 벌어진 일본 내부의 내전으로 보며, "결국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내전을 통한 권력과 정부의 변화라는 상식적인 역사에 어떤 신비함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는 서구의 개항 압력이었기에 좋은 결과를 냈다는 뜻이다.
약한 자에겐 무자비하다. 강한 자에겐 무한대로 비굴하다. 일본 무사정권이 그렇다. 일본군 성노예나 731부대 만행, 난징의 대학살은 무자비하다. 지금도 그 실체나 국가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끝까지 무자비하다. 그러나 미군정에게는 너무나 녹록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죽도록 항거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신탁통치가 진행될 때 순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은 순전히 미군정에 순종했다.
무사도라는 게 속성상 그렇다. 테러, 암살, 유혈, 전쟁, 음모로 점철된 일본의 역사는 입헌군주 민주주의라는 이름과는 달리 군국주의다.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손을 잡은 미국을 등에 업고 다시 한 번 전쟁 광기를 활할 태우며 속도를 내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하여 후쿠시마가 죽은 땅이 되었는데도 그 대책은 숨긴 채 어떻게 하면 전쟁을 할까 노리고 있다.
후쿠시마 대책은 바로 전쟁이다. 일본의 경제도 추락하고 있다. 그 돌파구도 전쟁이다. 일본이 주도한 모든 전쟁은 그런 돌파구였다. 일본의 우경화는 그냥 하루 이틀에 이뤄진 게 아니다. 아베가 다시 등장한 것도, 우경화로 가파르게 돌아선 것도, 독도니 교과서 문제의 조작들도 모두 사무라이 집단의 전쟁광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일본을 보며 측은해 한다. 우리나라나 중국 등 주변국들이 민주화됨으로 일본을 민주화로 안내하여 해방시키든지, 아니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워낙 방대한 자료들과 많은 내용들이 있기에 이 글에 다 담아내지 못해 아쉽다. 우리가 얼마나 일본을 몰랐는지 독자들이 직접 책을 읽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김상태 지음 / 책보세 펴냄 / 2014. 12 / 639쪽 /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