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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무궁화열차가 안동역에 닿았다.
 중앙선 무궁화열차가 안동역에 닿았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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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여행

나는 2009년 11월부터 이웃 횡성군 안흥에서 원주시내로 이사 온 이후에는 열차를 자주 이용한다. 우선 열차는 버스보다 교통비가 싼데다가 더욱이 30% 경로우대를 받기에 더욱 싸다. 게다가 열차여행은 출발과 도착시간이 거의 정확하고 도중에 교통체증이 없다. 여행 중 차창 밖을 바라보면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가벼운 차림으로 훌쩍 열차여행을 떠나곤 한다.

지난달 경북 안동을 다녀왔다. 그날도 열차를 이용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앞과 옆자리에 그 지역 주민들이 앉았다. 그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엿듣지 않으려고 해도 내 귀에 다 들렸다. 순간 나는 군대 생활할 때 우스개얘기가 떠올랐다. 그때 내무반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경상도사람들은 어찌나 시끄러운지 "취침!"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충청도사람들은 어찌나 느려 터졌는지 "선착순!"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날 화제는 요즘 시골의 일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경북 북부지방에서 사과 농사를 하는 분들로 지난해 가을 사과 따는 이야기였다. 지난해는 일기가 좋았다. 특히 큰 태풍 한 번 지나가지 않아 사과가 대풍이었다. 사과농사에서 추수 때 과일을 따는 일이 가장 품도 많이 들고 중요하다. 해마다 인력난으로 무척 고생을 하던 중, 이즈음에는 동남아, 특히 태국에서 온 노동자 때문에 아주 값싸게 사과를 잘 땄다는 얘기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태국 노동자들은 아주 말도 잘 듣고 일도 잘한다. 하루 일당 5만 원만 주고 잠자리만 마련해 주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기에 아주 편하다. 그들은 일당을 꼭 그날그날 계산해 달라는 요구조건인데, 그것만 주면 식사 문제나 기타 문제는 자기네가 알아서 한다. 그래서 인건비도 싸고, 기타 문제(식사나 새참 교통 문제 등)로 속 썩히지 않는다."

고랭지 배추밭에서 일하는외국인 노동자들
 고랭지 배추밭에서 일하는외국인 노동자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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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열차가 풍기 역에 이르자 그들은 모두 내렸다. 그러자 열차 안은 조용했다. 나는 그제야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원주로 이사 오기 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마을에 살았을 때 그 마을 주 농산물은 고랭지 배추였다. 특히 날마다 마주 대하는 앞집 노씨는 배추전문 농사꾼이었다. 그래서 배추 파종에서부터 수확한 배추를 가락동시장으로 보낼 때까지 전 과정을 보고 들어왔다. 배추를 뽑고 가락시장 행 트럭에 상차시킬 때는 으레 중간업자들은 봉고차에 인부를 따로 싣고 왔는데, 그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였다.

이즈음 전국 시골의 인력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 산골 밥집의 종업원까지 동남아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지금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 어떤 마을에서는 몇 년 째 마당에 애기 기저귀 널린 걸 구경하지 못했다고 푸념하는가 하면, 많은 농촌의 학교들은 학생들이 없어 폐교 당하고 있다. 나는 잠시 안흥고교에서 여름방학 강습 나간 선생님을 대신하여 학생들을 지도했는데 지난날 6개 학급 300여 명의 전교생이 이제는 모두 40여 명 정도로 한 학급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농어촌에서는 젊은이가 없어 노령화, 폐허화되고 있는데 견주어 도시에서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 근본은 우리 사회 전분야에 사무 자동화나 산업 기계화로 인력 수요가 대폭 줄어든 데다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사농공상의 잔재와 특히 농사일이나 막노동을 천대하는 전근대 노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도시인들의 농촌 모내기 체험 현장(횡성군 갑천면).
 도시인들의 농촌 모내기 체험 현장(횡성군 갑천면).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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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내가 몇 차례 미국에 가서 동포들이 사는 것을 살펴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탁소, 머리방, 봉제공 등에다가 양계, 농장 등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인력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젊은이는 한국에서 이름난 대학을 나왔는데도 일식집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은 그런 일을 못할까? 그 까닭은 우리들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힌 직업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사실 노동은 신성한 것으로,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것은 가장 떳떳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지도층이나 사대부들은 일방으로 이런 노동자들의 권익을 빼앗은 나머지 오늘과 같은 결과를 빚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좋은 일감이란, 좋은 자리란 무엇인가?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정의롭지 않는 일을 하거나, 검은 재물을 많이 챙기는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 게 대다수가 아닌가.

과학문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과학문명은 점차 사람의 노동을 줄어들게 하고 있다. 한 예로 이앙기 한 대가 50명 이상의 모내기를 했다. 콤바인 한 대가 일백 명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지난날 각 역마다 개찰을 하고 차표를 받던 역무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은행에서 돈을 세고 통장을 기재해 주던 은행원은 볼 수 없다. 앞으로 사람이 하는 일은 더욱 기계화로, 사람의 노동력이 더욱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가을 추수를 하는콤바인, 콤바인 한 대가 100명 이상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가을 추수를 하는콤바인, 콤바인 한 대가 100명 이상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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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는 직업과 노동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발상의 전환이 없이는 앞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아마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노동 관계자들은 새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아직도 사람의 노동이 꼭 필요한 직종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줘야 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는 그런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애초 하늘의 뜻이었다.

우리나라의 일자리를 우리 젊은이들이 지키는 것이 나라와 백성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이런저런 꼰대 같은 생각을 하는 새 열차는 원주 역에 도착했다.


태그:#열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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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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