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언론, 진실만을 보도하는 언론, 국민은 그런 언론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자 TV방송프로그램들(특히 종편)은 온종일 유병언 일가 이야기로 도배를 했다. 과연 유병언과 구원파를 집중 조명한다고 이미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생명들에게 무슨 영향력이 있을까 의아했었다.
고 박정희 정권 때는 있지도 않은 간첩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여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방송이나 신문이다. 정부가 내준 보도지침을 받아쓰며 신문과 방송들은 소위 '간첩단 사건'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긴급히 알렸다. 그럴 때마다 시국문제들은 언론의 시끄러운 외침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천안함 사건, 세월호 사고 등등 정부의 입맛대로 움직여주는 언론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다시 수면 아래로 조용히 사라져갔다. 미디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이 시점, 김석 기자가 <언론의 재발견>이란 책을 들고 나와 언론이 저지른 왜곡과 날조에 대하여 짚어준다.
언론, 정권의 시녀"거짓말도 자주 되풀이하면 진실로 오인된다."
이런 이론이 근간이 되는 게 정치가 언론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다. 영화 <시민 케인>(오손 웰스, 1941)에서 허스트가 굳게 믿은 이론이기도 하다.
신문의 체인화와 독점화를 통해 언론 왕국을 이룬 허스트는 대통령 암살을 부추겼고, 결국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두 발의 총알을 받고 쓰러졌다. 허스트는 종범으로 비난받았다.
저자는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 전 회장을 비호했던 <중앙일보> 기자들을 예로 들며 소위 언론재벌과 그의 '신성한 암소들(언론으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는 계층)'에 대하여 일갈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신문을 사유물로 만들고, 편집권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경쟁사의 유능한 직원들을 닥치는 대로 빼오는 일도 서슴지 않은 재벌신문의 사주. 이것이 오늘날 영향력 있는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사주의 한 전형이 된 것은 신문의 산업적인 전통이 저널리즘의 전통에 앞서 발전해 왔기 때문이리라.(19쪽)저자는 5·18과 전두환 군부 때 KBS의 왜곡보도에 대하여 지적한다. "우리 내부의 혼란과 분열을 극대화시켜 폭동으로 유도하려는 불순분자들의 계획적 소행"이라는 전두환 정부의 5·18 규정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을 때 KBS는 특집방송을 편성, "부패와 불의에 물들지 않고 청렴 강직한 실천적 인물"이라며 "위급한 국가 현실을 타개할 용기와 결단"이라고 정권을 홍보했다.
2009년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중이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가 빚어졌을 때 정부에서는 이메일 홍보지침을 통해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도록 하달하기도 했다.
용산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294쪽)언론, 조작과 날조의 초상언론은 때로 '조작과 날조'라는 가면을 쓰고 대중 앞에 선다. 좀도둑이었던 버니는 우연히 비행기 추락을 목격하게 되고 승객을 구조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알고 용감하게 추락 비행기 안으로 뛰어든다. 비행기에는 잘나가는 TV방송국 여기자 게일이 타고 있다 구조되었다. 구조해준 사람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단서는 현장에 떨어진 구두 한 짝.
느닷없이 버버라는 사람이 구두가 자신의 것이라고 등장한다. 그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영웅이 된다. 조작된 영웅이다. 오로지 '영웅'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생태를 너무 잘 보여주는 영화 <리틀 빅 히어로>(스티븐 프리어스, 1992)의 내용이다. 게일은 영웅 버버를 더 영웅적으로 만드는 데 광분한다. 신화를 영웅 이미지로 조작해내는 데 언론만큼 능력 있는 게 없다.
'황우석 신화'와 '오은선 신화'의 제조자도 따지고 보면 언론이다. 영웅인 줄 알았는데 영웅이 아니어서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이다. 저자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영웅으로 떠받들 수도, 희생양으로 매도할 수도 있는 게 언론의 이미지 조작"이라고 말한다. 날조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거짓말하기, 진실 숨기기가 그것이다. 그 예로 천안함 사건을 든다.
목적성을 띈 조작과 날조는 악질적인 면으로 따지면 더한 것이 없는 까닭에 그 사회를 지탱하던 신뢰구조를 무너뜨리고 치유할 수 없이 병들게 한다. 천안함 사건이 되살리는 기시감(旣視感), 사건의 본질을 덮기 위해 언론이 생산해 낸 그 속보이는 영웅주의가 기우를 넘어 섬뜩함을 주는 까닭이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있다. 육하원칙에도 맞지 않는 조사 결과를 도대체, 누가,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265쪽)<더 테러라이브>(김병우, 2013)에서 추락한 자신의 위치를 되살리려고 윤영화(하정우 분)는 테러리스트와 전화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방송한다. 테러범은 한강 다리를 폭파한다고 위협하며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보도국장과 윤영화는 특종에만 매달린다. 다리 공사를 하다 희생당한 테러범 박노규의 아버지의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언론은 언론을 위해 있다는 생각을 짙게 만들었던 영화다. 국민은 아랑곳없다.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특종만 내면 된다. 그러니 날조든 조작이든 상관이 없다. "방송사가 별 고민 없이 '시청률=승진에 대한 윤영화=보도국장의 출세욕'"의 등식을 낳는다. 저자는 <9시의 거짓말>(최경영)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예컨대 노동자란 표현에 덧칠된 업무 방해, 폭력, 불법, 점거, 정치적, 좌경, 집단이기 등의 싱징을 떠올려 보라. 이 교묘한 언어의 물 타기를 통해 언론이 사물과 사람의 실체적 의미마저 좌우해 버릴 수 있는 게 현실이다.(371쪽)미국, 언론과 영화를 조작의 수단으로 사용영화 <킬링필드>(롤랑 조페, 1984)는 전 세계에 크메르루주 공산주의 세력의 잔인성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이면에 숨은 미국이 저지른 악랄한 잔인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왜곡이다. 1969년 미국은 캄보디아에 무려 한국전쟁 때 미군이 사용한 49만 5000만 톤 이상을 퍼부었다. 그것도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에.
미국에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킬링필드의 전설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정문태는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에서 일갈한다. 노엄 촘스키가 관타나모를 '미국의 편리한 고문실'이라고 비유하듯,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조작과 날조는 가히 설명조차 할 수 없으리라. 저자의 한 수를 적어본다.
북한 인권을 운운하기 전에 자신들의 인권의식부터 벼리고 가다듬지 않는 한, 미국이란 나라가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하는 그 숱한 깡패국가들(Rogue States)과 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441쪽)책의 의도가 언론의 긍정적 요소를 배재하자는 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폭로, 윤석양 일병 민간인 사찰 폭로 등은 모두 언론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언론에 의해 자행되는 조작과 날조, 정치적 쏠림현상은 집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읽혀 그런 부분만 썼다.
덧붙이는 글 | <언론의 재발견>(김석 지음 / 책보세 펴냄 / 2015. 1 / 448쪽 /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