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 부끄럼 없이 정직하게 시험에 임할 것을 서약합니다."
광운대는 2014년 1학기 중간고사부터 학교에서 시행하는 모든 시험 답안지에 정직시험 서약문을 게재하고 있다. 학생들은 여기에 서명을 해야 한다. 천장호 광운대 총장이 지난 35년간의 교수 재임기간 동안 수업에서 받아온 정직서약을 학교 전체로 확대한 결과다. 정직서약은 이제 "더 믿음직한 지성으로 거듭나는 광운인"이 되기 위한 광운대의 필수조건이 됐다. 천 총장은 한발 더 나아가 "정직이 정답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발표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광운명예헌장'(명예헌장)이 제정됐다. 명예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학업과 생활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며,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나는 학칙 및 대학의 제 규정을 준수하고 모든 행동에서 예의와 품의를 지킨다." "나는 학교 모든 구성원의 인격과 권리 및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나는 학업부정행위를 하지 않으며, 동료의 학업부정행위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나는 교내 시설물을 아껴 사용하며, 깨끗한 캠퍼스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한다."이 명예헌장은 "학교와 학생대표인 총학생회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위원회를 구성한 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정직, 예의, 성실, 존중 등 5가지 항목으로 구성"(광운뉴스레터, 2014년 11월호)됐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와 총학생회만 명예헌장 제정에 참여한 듯하다. 학생대표라고 자임하는 총학생회가 명예헌장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광운대 재학생 상당수는 명예헌장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또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학업부정행위 근절', '정직과 성실의 자세' 등으로 추측건대, 명예헌장 선포는 학생들의 명예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라기보다, 단지 정직서약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그럴까.
정직서약의 사제인연도 정직서약을 알리는 도구가 됐다. 천장호 총장의 대학 제자였던 민상원 광운대 전자통신학과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광운대 재학 시절, 정직서약을 경험했던 민 교수는 "마치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직업적 사명과 윤리를 다지는 것처럼 스스로 하는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됐다"(<전자신문>, 2014년 9월14일치)고 언급하며, 천 총장의 평생신념이던 정직서약의 중요성을 학교 안팎에 설파했다.
학교는 천 총장의 대표 정책인 정직서약을 '광운대의 교육 브랜드'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 홍보활동은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직서약으로 대표되는 광운대만의 인성교육 방식을 알리는 데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ACE 사업이 말하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핵심은 정직이라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정부 재정을 소요할 정도로 정직서약은 정말 학생들에게 필요한 제도일까.
천 총장이 말했듯이, 물론 정직서약은 "본인의 이름을 날인하는 행위의 무거움을 가슴 속에 심어주는"(<한국대학신문>, 2014년 4월20일치) 역할을 할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부정행위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서약이 꼭 필요한 제도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매번 시험을 치를 때마다 왜 자신이 정직하다고 속마음을 드러내야 할까. 나는 여태까지 정직하게 시험을 봐왔는데, 굳이 부끄럼 없이 시험을 보겠다고 서명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이런 의문을 품고 정직서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는 시행 초기라 참여를 원하는 학생에 한하여 자율적으로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성적을 받아야 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하기 싫어도 정직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제도 자체가 강압적이란 얘기다. 당장이라도 정직서약을 하지 않으면, 학교 정책에 반대하는 듯 비치는 것은 물론이고, 어찌됐든 나는 '정직하지 않게' 시험을 치르는 것이 되기 마련이다. 정직서약을 거부한 학생은 학교로부터 괘씸죄가 적용되거나 부정행위자로 지목되어 학사·교무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직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반강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정직서약은 학생들을 '잠재적인 부정행위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나의 내심이 학교로부터 알게 모르게 부정당하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강요에 의한 서약서 작성'을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한 사례로 규정했다. 그런 점에서 정직서약은 학생들에게 "자기 내심의 판단을 외부에 표현하도록 사실상 강제한 것으로서 「헌법」제19조가 정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 13진정0519400)이나 다름없다. 정직을 요구하는 명예헌장보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할 '학생인권헌장'이 광운대에 더 시급한 상황이다.
나에게는 침묵할 자유가 있다. 나의 양심을 언어에 의해 표명하지 않을 자유가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정직서약은 그런 만큼 학생의 인격권과 존엄성을 침해한다. 나의 정직함을 왜 증명해야 하는가. 광운대 학생들이 정직서약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학교가 만약 정직으로 대표되는 인성교육을 진행하고 싶다면, 명예심 고취 등의 당위론적 주장만 난무하는 정직서약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취업전문학교로 전락한 광운대에 문학 중심의 교양과목을 늘리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인성 함양에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을까. 도정일 경희대 교수가 말했듯, "문학교육이 최고의 인성교육"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진리와 지성을 추구하는 공간에서 인성교육을 자신이 정직하다는 서명으로 대체하는 것은 정말 '웃프'(웃기지만 슬프)지 않은가. 지금 당장이라도 학교는 정직서약의 시행을 철회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저는 광운대 학생입니다. 공학을 전공합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