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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고 학생 몇 명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는 흔히 내리는 근신이랄지, 강전(강제전학)과 같은 징계가 아닌 '수북형'(1년간 매달 한번 수요일에 북클럽 활동을 할 것) 처벌을 내린다.

'내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에 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요즘 잘 나가는 애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토론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애들이 우리 학교에도 있다. 나는 그 애들을 잘 안다. 성적은 좋지만, 뭔가 없는 애들이다. 패션 감각이 없거나, 유머 감각이 없거나, 감정이 없거나. 아니면 뭔가 모자란 애들도 있다. 얼굴이 모자라거나, 몸매가 모자라거나, 친구가 모자라거나.'-<수상한 북클럽>에서.

이처럼 뭔가 없는 애들이나 읽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하는 신영고 '일진' 장영주, 청소년 축구 유망주였으나 부상으로 꿈이 꺾인 박민석,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을 넘지 못해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만년 2등 윤정환, 자신을 놀린 아이들에게 식판을 던져버린 외모 콤플렉스가 심각한 김의영이 그들.

 <수상한 북클럽> 책표지.
<수상한 북클럽> 책표지. ⓒ 문확동네
책하고는 거리가 먼 아이들에게 북 카페 '숨:' 주인장은 '반드시 책을 읽어올 것,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한 군데 이상 밑줄을 그어 올 것. 인상 깊은 부분이 없으면 눈을 감고 아무 곳이라도 밑줄을 그어오되 책은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읽어 와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책 정보를 훑으며 망설였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함께 읽는 책은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비롯하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제인 에어>, <모모>, <달과 6펜스>,<자기 앞의 생>, <연애소설 읽는 노인> 등 13권. 3권만 빼고 모두 이미 읽은 책들인지라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읽을 책도 많은데 공연한 시간 낭비 아냐?'와 같은 얕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신사와 절대 악인, 이 두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주인장이 첫 달에 읽을 책으로 제시한 것은 '우리(나) 안에 혹은 우리 사회 안에 공존하는 선과 악'이 주제인 <지킬박사와 하이드>(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평을 받는 지킬박사가 내면의 악을 분리해내는 약을 발명, 호기심으로 악인 하이드가 되어 본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작은 악행은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가 되어 있곤 한다. 그리고 지킬박사로 되돌아오는 약을 먹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잦아진다. 이에 지킬박사는 절망, 죽고 만다'는 흥미로운 주제와 스토리 때문에 작품 발표 이후 40여 편에 달하는 뮤지컬과 연극, 영화, 동화, 만화 등으로 수없이 재창조되었다는 그 <지킬박사와 하이드> 말이다.

지킬박사가 살고 있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는 위선의 시대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나 경제는 번성하고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영국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의 시대가 열립니다. 신사와 귀부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교양 있고 고상한 생활을 추구했어요. '격식과 옷차림, 사회적 평판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같은 영국인이라도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의 공장에서 겨우겨우 연명할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죽도록 일해야 했습니다. 영국이 지배한 식민지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했지요.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영국인들에게 빼앗기고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노예가 되어 팔려나가는 신세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영국의 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착취한 결과입니다.-<수상한 북클럽>에서.

한 달 후 북클럽에 모여든 아이들은 저마다 밑줄 그어온 부분을 읽으며 작품 혹은 자신의 문제 등을 이야기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북클럽 주인장은 위처럼 작품이 나온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사연, 작품에 얽힌 이야기 등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건넨다.  

나머지 책들도 마찬가지. <제인 에어> 편에서는 작가 샬롯 브론테의 사생활과 작품 중에 나오는 서인도제도의 유래 등을, <자기 앞의 생> 편에서는 이미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을 발표해 최고 인기 작가의 명예를 얻은 작가가 예순 한 살에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이란 작품을 발표한 사연을 들려준다.

'읽은 책들이 대부분이라고 읽지 않았으면 아까운 책을 놓쳤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수상한 북클럽>을 통해 다시 만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새삼 반갑게 와 닿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으며 작품의 가치보다 줄거리에 흥미를 더 가졌던 작품인데,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니 남다르게 느껴졌다.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초등학생 때 동화로 읽은 <모모>도 마찬가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다시 읽고 싶은 충동까지 일 정도였다. 연륜이 깊어진 그만큼, 그리고 이 <수상한 북클럽>에서 알게 된 것들 덕분에 훨씬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축구를 그만 두면서 내 인생의 모든 출구가 잠겨버렸다고 생각했어. 나도 내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한 해 전에만 해도 그런 열쇠는 없다고 확신했었어. 심술궂은 누군가가 내 문의 열쇠를 어디 개천에라도 던져버렸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어쩌면 내 인생에는 출구 자체가 없다고, 높고 높은 담벼락 안쪽에 갇혀서 끝도 없이 뱅뱅 돌고만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안 그래. 내가 카페 숨:의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의 열쇠꾸러미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것 같아. 그냥 알 것 같아. 내가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열쇠는 이미 내 손안에 있고, 이제 그 열쇠를 녹슨 자물통에 꽂기만 하면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이미 나는 문을 여는 데 성공한 것도 같아. 그 문이 내가 생각한 문과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살짝 열린 문틈으로 내가 앞으로 갈 길이 얼핏 보이기도 해"-<수상한 북클럽>에서.

문제아들로만 구성된 이 북클럽, 예정된 1년을 채울 수 있을까? 저자는 그동안 청소년 관련 책들을 꾸준히 써왔다는 현직 교사.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독서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저자는 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었던, 그리하여 한 달에 한 권 읽는 것이 기적처럼 여겨질 정도로 책을 매우 어려워하거나 싫어했던 아이들이 책읽기를 거듭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을 책 관련 정보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여 들려준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전 혹은 명작으로 꼽는 문학작품들과 그에 얽힌 사연들을 알아가는 재미, 한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감동 둘 다 느낄 수 있으리라. 문제 청소년들이 주요 등장 인물들인 데다가 이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과 상처가 우리 청소년들이 대체적으로 많이 겪는 것들이기 때문일까.

저자가 책을 통해 만든 북클럽이지만 이런 북클럽을 우리의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가급적 많은 청소년들이 책 속 민석이처럼 삶의 열쇠꾸러미를 챙기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인다.

덧붙이는 글 | <수상한 북클럽>(박현희) | 문학동네 | 2014-12-22 12,000원



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문학동네(2014)


#북클럽#책읽기#독서지도#독서#지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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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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