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상식의 사회다. 그러나 그 상식을 실천하고 세상을 움직여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옳은 방향을 믿고 뜻대로 살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좋은 마음이 모자라거나 그런 생각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벅차게 다가오는 현실의 요구가 그럴 여유를 주지 못해서다.
나는 그런 점에서는 참 다행스럽다. 일상의 상식으로 보면 어려운 여건 속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격일 근무가 가져다준 행운 덕분으로 하루는 일하고 하루 휴일 날은 몸 상태만 잘 조절하면 좋은 일에 투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문화와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눈 뜨고 사는 지름길이라 믿는다.
나는 네팔인 이주여성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며 살피고 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그들에게 구인활동을 하거나 특별히 바쁜 날을 제외하면 '눈 뜨고 사는 사람'이 되라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그들의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코리안 드림 너머의 꿈을 찾으라 전하는 마음이주노동자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노동을 위해 한국에 왔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이란 사회에 이주노동을 온 사실에 집중하지 말고, 노동을 통해 얻는 돈을 '장학금'으로 생각하라 말한다. 그리고 얼마든지 협력할 테니 한국을 배워라, 그래야 후일이 기약된다고 말한다.
네팔에서 한국에 온 그들이 자국에서 받는 한 달 월급의 열 배, 스무 배를 받으며 무언가 누리기만 하려고 하는 한, 코리안 드림 이후의 앞날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돈만 보고 세상을 못 보는 사람으로 살게 되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 삶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벗들의 직장, 도심의 거리와 농촌의 거리를 배회해보기도 바란다. 모두가 낯선 한국에서 지불한 수업료가 될 것이고 후일 그들의 삶의 길을 밝히는 자양분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주어진 기회마다 한국을 배우라... 오늘은 수원수차례 기회가 닿는 날이면 네팔인들을 수원이나 서울 그리고 다른 지역의 도시들까지 소개하고 안내를 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스스로 마음 편하게 안내할 수 있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이라 아무래도 수원을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집주변의 작은 동산을 질러 우만동 버스정류장을 거쳐 수원고용노동센터를 찾아 걸었다. 네팔에서 온 지 6개월 된 네팔한국문화센터 부대표 모한 까르기(47세)씨의 아들 수던 까르기(25세)의 직장을 알아봐주기 위해서다.
그는 의성에서 일하다 일자리를 옮겨 수도권에서 취직하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를 평소 알고 있는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 머물게 한 후, 다음 날 아침 내가 일하고 있는 아파트로 오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쉼터의 여성이주노동자 두 사람과 합류했다.
수원고용노동센터에는 네팔인 이주노동자가 일할 만한 일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화성고용노동센터로 일자리 알선을 요청한 후 그때부터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계동 길을 걸어 수원시청을 향했다. 나는 시청을 먼저 여행하고 위안부 기림비를 알리는 일도 포함시켰다.
시청에서는 김우영 주간님에게 동행을 청했다. 이주노동자로 와서 수원시 관계자에게 직접 안내를 받는 것도 그들에게 자긍심이 되리란 마음에서다. 수원시청에서의 기념 촬영도 빠짐없는 일이고, 올림픽 공원과 기림비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 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시간 절약을 위해 창룡문까지 택시를 타고, 창룡문에서부터는 화성열차를 이용해 서장대 아래까지 단숨에 갔다.
다시 돌아서 정조대왕상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문안을 전한다. 그들은 수원에서 보낸 며칠, 한국에서 보낸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나의 도시를 한 눈에 넣고 보며 기뻐한다. 더구나 한국의 역사를 설명 듣고서 신기해한다. 마치 대단한 행운을 잡은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발전을 통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았다면 나는 그들에게 여가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도시의 발전상을 보여준 것이다. 나의 안내는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속되었다. 마지막 길은 긴 도보여행의 피곤을 달래기 위해 수원역 앞 카삼 네팔 레스토랑을 찾았고 여행 시작 8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길고 긴 하루 일과였다. 네팔 레스토랑 사장 꺼허르만 라이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쉼터 식구들과 모한 까르기씨의 아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 또 한 번 신세를 크게 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