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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불법채증규탄 기자회견과 특별한 사진전. 이날 이눤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형사의 카메라에서 입수한 사진을 공개했다.
▲ 불법채증규탄 기자회견과 특별한 사진전 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불법채증규탄 기자회견과 특별한 사진전. 이날 이눤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형사의 카메라에서 입수한 사진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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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벌이다 현장에서 발각된 서울 구로경찰서 정보과 최현규 경장은 오체투지 행진 중인 권영국 민변 변호사를 집중 촬영했다. 사복차림으로 행진단을 따라다닌 최 경장은 소복을 입은 권 변호사가 합장한 채 걷고, 엎드리고, 일어서는 모습을 '연사'로 찍었다. 채증은 위법 행위에 대한 증거를 남기는 게 목적이지만, 이날 행진은 경찰의 안내에 따라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가 찍은 사진은 한 사람을 표적으로 한 사찰에 가까웠다(관련기사: 경찰, <오마이뉴스> 기자 사칭해 무단채증하다 발각).

그날 최 경장의 카메라에 있던 사진이 공개됐다. 4일 오전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 감시대응팀(아래 대응팀)은 불법 채증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오체투지 행진단 관계자가 입수한 메모리 카드 속 사진 323장 중 23장을 선별해 공개했다.

이날 대응팀이 공개한 사진에는 지난 1월 7일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을 찍은 사진 외에도, 각각 지난해 5월과 8월에 열린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와 1인 시위 사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집회 시위와 아무 관련 없는 경찰들의 일상 사진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5월 17일 경찰은 서울 안국동 집회에서 인도에 올라있는 시민들을 찍었다. 이미 주최 측이 집회 종료를 선언한 후였다. 불법이 감지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어 지난해 8월 11일에는 서울 구로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멀리서, 또 뒤에서 몰래 찍었다. 이날 경찰의 '몰래 채증'은 7시간 동안 이어졌다. 같은 날 있었던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집회는 시작 전부터 촬영했다. 이는 본래 목적과 맞지 않는 광범위한 채증인데다 수사 목적으로 사용한 후 폐기해야 한다는 경찰 '채증활동규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일단 찍고 보자... 시민은 잠재적 범죄자?"

4일 오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경찰 채증 사진.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카메라에서 담겨있던 것들이다.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이 아님에도 1인 시위 중인 시민을 뒤에서 몰래 촬영했다.
▲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경찰 채증 사진 4일 오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경찰 채증 사진.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카메라에서 담겨있던 것들이다.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이 아님에도 1인 시위 중인 시민을 뒤에서 몰래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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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경찰 채증 사진.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카메라에서 담겨있던 것들이다.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이 아님에도, 오체투지행진 중인 권영국 민변 변호사를 연사로 촬영했다.
▲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경찰 채증 사진 4일 오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경찰 채증 사진.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카메라에서 담겨있던 것들이다.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이 아님에도, 오체투지행진 중인 권영국 민변 변호사를 연사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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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응팀은 입수한 사진을 예로 들며 현행 경찰 채증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경찰은 집회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일단 광범위하게 채증을 하고 있다"며 "이는 곧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사찰과 감시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채증요원'이라고 표식한 경우도 있지만, 사복을 입고 몰래 활동하는 사복 채증요원도 경찰이 운영하고 있다"라며 "이런 방법으로 수사와 상관없는 사진까지 찍은 뒤 8개월 가까이 보관하는 등 사후 관리도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0일 경찰청은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이 인권 침해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채증활동규칙'을 개정하고, 집회 참가자 인권 및 경찰 채증 활동의 합리적 방안이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훈민 진보네트워크센터 변호사는 "이번 개정안은 무분별한 채증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종래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규정된 채증 요건을 '불법 행위 또는 이와 밀접한 행위'라고 개정했지만,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다"며 "범행이 있기도 전에 채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등 이전 채증 규칙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채증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조항(제5조)에 '긴급한 경우 구두 지시로 갈음할 수 있다'는 단서를 신설한 것에 대해선 "집회 시위는 신고제임에도 경찰의 금지 통고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이렇게 선별된 집회조차 채증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건 납득이 안 된다"며 "이는 경찰에게 불리할 수 있는 규정을 유리하도록 개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 의무 경찰까지 채증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한 점과 ▲ 원칙적으로 경찰관서에서 지급한 장비를 사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개인 소유 기기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점 등을 예로 들며 "인권 존중은 허울뿐이며, 경찰에 의한, 경찰을 위한 개정"이라고 못 박았다.

"채증은 법적 근거 없는 국민 기본권 침해... 엄격한 잣대 마련해야"

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불법채증규탄 기자회견과 특별한 사진전. 이날 이눤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형사의 카메라에서 입수한 사진을 공개했다.
▲ 불법채증규탄 기자회견과 특별한 사진전 4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불법채증규탄 기자회견과 특별한 사진전. 이날 이눤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 1월 <오마이뉴스>기자를 사칭해 불법 채증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구로경찰서 형사의 카메라에서 입수한 사진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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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자리에서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 경찰 채증은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채증은 기본권인 초상권을 침해하는 행위고,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는 법이 정한 명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며 "하지만 현행 채증은 법규적 효력 없는 경찰청 채증활동규칙에 근거한 위법 행위"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채증 자료에 대한 시민의 접근권과 통제도 허용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법적 통제 장치 없이 경찰의 불법적인 채증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국민의 초상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라며 "이는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줌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채증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만약 범죄 수사에 필요하다면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아 엄격한 채증 요건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찰이 모든 집회시위를 잠재적인 범죄 현장으로 간주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 법적 근거 없는 채증 즉각 중단 ▲ 영장 없는 채증의 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 ▲ 채증요원 및 채증장비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통제 ▲ 채증자료에 대한 투명한 관리체계 마련 등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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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채증, #오마이뉴스, #불법, #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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