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낮 12시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 일명 '이명박 목도리'인 파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이 전 대통령 가면을 쓴 남자가 대형 현수막 옆에 자리를 잡았다. 현수막에는 '멕시코 볼레오 동광개발 1조5000억 원 손실, 캐나다 하베스트 석유개발 2조7000억 원 손실' 등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 없는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이윽고 가면을 쓴 남성이 현수막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간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지난 2일 발간된 이 전 대통령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으로 인한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4일 오전 이 전 대통령의 사저 인근에서는 'MB 자서전 자원외교 관련 거짓말 규탄, 국정조사 청문회 출석 요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는 참여연대와 민주주의를위한변호사모임, 정의당 등이 모인 'MB 자원외교 사기의혹 및 혈세탕진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모임'(아래 이진모)이 주최한 것이다.
'이진모'는 특히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중 자원외교 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들은 "회고록에는 MB정부의 자원외교가 성공적인 듯 나와 있지만, 이는 현실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거짓말"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부실한 투자의혹과 국부 유출 등에 대해, 최고 책임자였던 이 전 대통령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는 지상파 방송 KBS와 SBS, 종편채널 JTBC, 채널A 등 카메라·취재 기자 30여 명이 몰리는 등 뜨거운 취재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기자회견은 원래 사저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사저 앞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 형사를 포함해 정복 경찰 등 100여 명이 지키며 접근을 금지했다. 기자회견은 결국 약 70m 떨어진 인근 건물 앞에서 진행됐다.
"왜 부실사업에 국민혈세 26조 탕진했나... 국정조사 나와서 진실 밝혀야"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위 소속인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국민들은 (이 전 대통령이) 왜 '해외자원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국민혈세 26조 원을 탕진했는지 궁금해 한다"며 "그러나 회고록에는 온통 아전인수와 자화자찬 내용뿐이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이어 "회고록에 나온 투자 대비 총회수율 114.8%도 현실을 무시한 '숫자 부풀리기'이며, 이 전 대통령은 자주개발율(※전체 에너지 수입량 중 자국이 직접 생산하는 비율)을 임의로 높이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실을 말할 자리는 이미 준비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 앞에서 진실을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일영 민변 변호사(민생경제위원회)는 이 전 대통령의 법적 책임과 처벌 가능성을 짚었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11월에 이미 이 전 대통령 측근 관계자들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검찰 고발한 바 있다, 투자할 가치가 없거나 부실한 사업들에 막대한 혈세를 투자해 국민 경제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던 장진수 전 주무관(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원)도 참여했다. 그는 "책에는 불법 민간인사찰 등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은 누락되고, '자원외교'만 치적사업이라 홍보하고 있다"며 "(불법사찰 등은)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인데 최소한 반성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이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를 풍자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퍼포먼스를 끝낸 이진모 관계자들은 '국정조사 출석 요구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 자택으로 가려했지만 30m도 채 가지 못하고 경찰 20여 명에 의해 가로막혔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 시민은 '이명박 전 대통령 피하지 마십시오, 면담을 요구합니다'라 쓰인 피켓을 들고 경찰들 너머로 "(대통령) 만나게 좀 해주세요"라 외쳤다. 한 남성은 "떳떳하면 나와라"라고 소리쳐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이진모 관계자들은 "그래도 민심은 전달됐을 거라고 믿는다"며 이후 서한을 우편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