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행진단의 걸림돌은 경찰이었다. 지난 5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와 목동 스타플렉스에서 출발하려고 했던 3차 오체투지 행진단의 길목을 번번이 경찰이 막아섰다. 이미 신고한 '합법적' 기자회견과 행진이었지만, 경찰은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라며 과도한 연행과 채증을 했다. 이미 지난해 12월 26일과 지난 1월 12일 두 차례 진행된 오체투지 행진도 경찰이 막아선 탓에 수십 명의 행진단은 6시간 동안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공무집행 방해'로 6명 연행... 국회 앞 사거리 곳곳에서 충돌지난 5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비정규직노조 등 800여 명이 참여하는 3차 오체투지 기자회견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 병력에 가로막혀 6시간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이 오체투지단과 경찰은 열 번 이상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6명의 참가자가 연행됐다. 1인 피켓시위로 경찰과 두 차례 충돌했던 한 20대는 구토 증세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기자회견 30분 전부터 충돌은 시작됐다. 50여 명의 경찰 병력은 "몸자보(몸에 걸고 있는 대자보)와 머리띠를 한 것으로 보아 이는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다, 20~30명 내외의 대표자만 참가하라"며 국회 인근을 막아섰다. 국회 앞으로 갈 수 있는 모든 횡단보도와 지하철 입구가 막혔다. 그곳마다 "건너 가겠다"는 참가자와 경찰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상희,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현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경찰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며 "참가자들이 불법을 자행하면 그때 경찰이 개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인간띠를 만드는 등 모든 행동들이 집회 신고를 해야만 가능하다"며 "사전에 막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본격적인 충돌은 국회로 가는 횡단보도와 역 출구에서 벌어졌다. 오전 10시 30분경,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에 있던 5명의 참가자가 "우리는 범법자가 아닌데 왜 못 건너냐"며 국회 앞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자 30여 명의 경찰이 순식간에 이들을 둘러쌌다. 참가자들은 "몸에서 손을 떼라"며 소리쳤지만 그대로 경찰에게 떠밀려 몇 명은 그대로 넘어졌다. 경찰들은 이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위에서 압박했고 누군가가 "들어서 옮기라"고 외쳤다. 5명을 막기 위해 투입된 경찰 병력만 60여 명이었다.
경찰의 막무가내식 진압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로 나오자 경찰은 출구 정면을 막았다. 선두로 나온 이들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 막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경찰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정세윤(34) 조합원은 "차라리 에스컬레이터를 정지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상관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올라오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먼저 올라온 참가자들이 지하를 향해 '다치니깐 내려가라'고 소리지른 후에야 경찰들은 옆으로 물러섰다.
'술에 취한 채 공무 집행을 했다'는 의혹을 산 사복 경찰과의 충돌도 빚어졌다. 오전 11시 10분경, 영등포경찰서 소속 정보관이 서영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를 향해 "이건 집회이며 사법처리 할 테니 법정에서 보자"고 말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게서 술 냄새를 맡은 서 신부가 "술을 마셨냐"고 물었고 서로의 몸을 밀치는 상황으로 번졌다. 정보관은 서 신부의 목 부근을 손으로 세게 밀친 후 경찰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해당 정보관은 기자들에게 "어제 술 먹은 것은 사실이나 이것 때문에 자리를 피한 게 아니라 일이 더 커질까봐 물러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다른 영등포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이 서 신부에게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서 신부는 "정보과장이 (내게)대신 사과하면서 '보호해달라, 아직 젊은 친구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과잉 진압은 계속됐고 참가자들이 연행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낮 12시 50분경, 국회 앞에 정차 중이던 참가자들의 방송차를 강제로 견인하려는 과정에서 이에 항의하는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을 비롯해 SK·LG비정규직 조합원 6명이 연행됐다. 이 와중에 다른 쪽에서 대기하던 경찰 병력이 갑자기 뛰어가면서 대열에 함께 있었던 청년좌파 소속 김대환(25)씨가 경찰에게 떠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기자회견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진행됐다. 발언에 나선 참가자들은 "평화 시위를 방해하는 경찰병력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경상현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자유가 있는 나라인지 이 많은 경찰들이 왜 우리를 막아서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날"이라며 "평화적이고 적법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것인데 무엇이 두려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열지어 걷는 것도 행진이기에 허가할 수 없다'는 경찰과 대치한 끝에 6시간 만에 오체투지는 시작됐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앞에서 부터 아스팔트 위에 엎드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종일 국회 앞에서 합류하지 못했던 참가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린 SK브로드밴드 송순익(42) 조합원은 "우리의 뜻은 오늘만 막힌 게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SK에 대화 요구를 했지만 매번 거절 당했고 오늘은 단지 1년의 축소판입니다. 공권력이 저희의 얘기를 SK쪽에 전달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것을 막지는 말아야죠." 목동, 순조롭게 행진 시작했지만... 또 막아선 경찰반면 목동에서 출발한 행진단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오전 11시, (주)스타케미칼의 본사인 스타플렉스 앞에 모인 200여 명의 행진단은 스타케미칼 해고자 차광호씨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서 출발했다. 발언에 나선 임창호 LG유플러스 영남 부지부장은 "일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노예처럼 등골만 빨아먹힐 줄은 몰랐다"며 "모두가 연대해서 꼭 승리를 이뤄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오체투지 행진이 시작되자 난관에 봉착했다. 오후 1시 13분, 행진단이 오목교 사거리를 지나는 순간 경찰이 중간에 투입되면서 행진을 막아섰다.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불법으로 도로점거를 하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니 해산하라"고 명령했다. 행진단은 오체투지를 하는 상태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 자리를 지켰다. 경찰과 행진단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고성이 오갔다.
참가자들은 행진이 합법적 집회임을 강조했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관할서의 협조 고지서를 받았고 차도에서는 20보 1배, 교차로에서는 40보 1배를 하기로 이미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교차로에서 늑장을 부려 교통체증이 유발됐다"고 맞섰다. 실제로 교통체증으로 시민들이 반발하자 경찰은 대오를 막고있던 인원들을 철수시켰다. 결국 행진단은 스타플렉스에서 오목교 중간까지의 900m를 건너는 데 50여 분이나 걸렸다.
오체투지 행진단에 대한 채증은 어김없이 발생했다. 경찰이 민간인 복장으로 행진단을 채증한 것이다. 오후 3시 55분, 영등포역에서 여의도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한 목격자는 "먼 곳에서 DSLR카메라로 사진 찍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소형 사다리로 행진단을 찍는 모습을 수상히 여긴 오 집행위원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지만 오히려 경찰은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맞섰다. 오 집행위원이 계속 추궁하자 그는 결국 "경찰이다"며 시인했다.
다른 경찰 채증요원들은 '소음관리'라고 쓰여진 조끼를 입고 있는 것과 달리 그는 경찰을 나타내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행진단이 카메라 사진까지 확인한 후 계속해서 항의하자 해당 경찰관은 사진을 모두 초기화 한 뒤 다른 경찰 관계자의 보호를 받고 행진장소를 빠져나왔다. 이로 인해 행진단의 대오가 10여 분 가량 지연됐다.
오체투지 행진단의 거리 점거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도 있었다. 교차로에서 경찰과 행진단이 대치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상열(60)씨는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광경을 지켜보던 송현호(21)씨 역시 "교통이 지체되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진단은 "경찰이 의도적으로 방해했고 시민들의 불만을 우리에게 전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춘자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사무국장도 "이는 의도적인 교통체증 유발로 봐야 한다"며 "오히려 교통체증 유발자는 교차로에서 우리를 막은 경찰"이라고 말했다. '평화적인 집회를 막으면서 사람들이 더 집중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채증을 두고서 경찰 내부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 경찰서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민간인 복장 채증은) 참 바보 같은 짓"이라 말했다. 그는 "채증을 할 거면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민간인 복장으로 하는 거냐"며 "오히려 행진단에 화를 돋우는 격"이라 말했다.
한편 오체투지 행진단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있었다. 영등포역으로 가는 행진단을 향해 지나는 한 차량에서 누군가 "재벌의 갑질 멈춰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영등포역 근방에서 오체투지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김아무개씨는 "내 아들 보는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는 "계란에 바위치기인 것 나도 알지만 이런 식의 '갑질'에 여론이 지지해주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적 오체투지' 하겠다는데 왜 막아?"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행진을 왜 그렇게 막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박준호 스타케미컬 해고노동자(42)는 "평화적인 행진에서 채증을 하거나 길을 막아서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준다"며 "오히려 경찰에게 고맙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진출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조합원(41)은 "그냥 뒀으면 조용히 이동했을 건데 괜히 경찰들이 나서서 분위기를 경직시켰다"고 말했다.
"그냥 놔두면 조용해질 텐데. 괜히 경찰들이 막아서니 사람들이 더 투쟁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오체투지 하면서 몸이 바닥에 닿으면, 이전에 투쟁했던 다른 사람들이 생각나서 북받쳐 오르기도 해요. 그때의 나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우리 지부의 노조 가입률도 절반 정도인데 나머지 사람들은 예전의 나 같아요. 그래도 우리가 이겨서 돌아가면 그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지겠죠.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니깐." 오후 5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3차 오체투지단 전체가 모였다. 이들은 다시 한번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 폐기'를 외쳤던 이들은 최종 목적지인 LG트윈타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