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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고다. 망고는 6살 딸이 다니는 '꿈꾸는 어린이집'에서 쓰는 나의 별칭이다. 생 망고와 익은 망고의 맛이 다르듯이, 이중적인 삶을 살고 싶은 나를 표현한 것이다. 나는 2015년도 어린이집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꿈꾸는 어린이집은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아마(엄마·아빠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어린이집의 운영 전반을 맡는다. 운영 전반의 총 책임자로서 기대도 되지만, 그보다 두렵다. 망고가 익기도 전에 곪아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

지난 7일, 오전 10시에 27명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아마들이 정기총회에 모였다. 여느 중·고등학교 학부모 총회보다 형식을 갖추어 진행했고, 충분한 토론시간이 보장되었다. 하반기 사업보고만 한 시간 넘게 진행했다.

사업 보고는 문서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할까도 싶었지만, 아마들의 눈에서는 주식그래프를 보는 듯한 집중력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8개의 정식 안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리한 질문과 논쟁이 이어졌고 가결과 부결을 반복해가며 총회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학부모들이 점심시간을 넘겨 가며 주린 배를 움켜 쥐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밥은 먹고 하자고 제안을 하고 싶었지만, 논쟁에 열을 올리는 아마들로부터 돌아올 눈초리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안건 신임이사진 선출의 건이었다.

24가구의 아마 중 7명의 아마가 신임 이사진으로 선출되었다. 꿈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신임이사 망고, 수박, 귤, 고등어, 호호, 코끼리, 지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폐회는 1시 넘어서 했지만, 추가로 논의할 사안이 있어서 아마들을 총회 장소를 떠날 수 없었다. 논의가 마무리된 것은 오후 3시. 점심도 먹지 않고서 말이다.

우리 신임 이사진은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수박의 차에 몸을 싣고 경기도 화성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길이 막혔다.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한 내비게이션조차 불쌍해 보일 만큼 막히는 곳이 많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행사장에 도착했다.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 주관하는 2015년 공동육아 협동조합 신임이사진 교육 행사장이었다. 전국 70여 개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의 300여 명이 넘는 이사진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300여 명의 아마 이사진들이 스파르타의 전사처럼 보였다.

전국 70여 개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이사진 300여 명 참여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신임이사진 교육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신임이사진 교육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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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인 나는 이사장분과 장소로 들어섰다. 남자 이사장이 소수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얼핏 보더라도 남자 이사장들이 절반 이상이 되는 것 같았다. 남자들이 육아에 발 벗고 나서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어머니들은 이해 못 하시겠지만.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사장의 나이들이 예상외로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다. 국가 보육정책의 실패로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었거나 아니면 부부간의 사랑이 돈독하여 얻은 늦둥이이거나. 이사장 분과에서는 몇 가지 공통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었다. 하나는 어린이집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협동조합이란 말을 사용하였지만, 협동조합 기본법에 보장된 협동조합은 아니었다. 협동조합식으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2년 제정된 협동조합 기본법에 따라 실제 협동조합으로 승인을 받거나 아니면 협동조합이란 이름을 버려야 했다.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린이집이 가진 재산 문제, 어린이집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의 승인문제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공동육아 아마들을 어린이집의 참여활동으로 충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발품을 팔아가며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아마들도 있었고 이미 승인을 받아낸 아마들도 있었다. 그분들을 만나 뵙고 싶었다. 끊이지 않고 솟구쳐나오는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어린이집 활동을 하면서 정작 귀댁의 가정은 평온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두 번째로 다룬 주제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어린이집의 대응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마들은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 반대할 것이다. 교사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공동육아의 원칙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장들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일정한 공간에 설치되어 지속적으로 사람을 촬영할 시에는 촬영의 대상이 되는 이들로부터 동의를 구해야 한다.

교사와 아마들이 동의할 리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이 신기해서 좋아할 가능성은 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아이들만. 위법성이 있기에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그래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의 정부는 기존의 법을 예상치 못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대담함과 독창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시가 넘어서야 분과 모임은 끝이 났다. 다시 전체 행사장에서 이사장분과, 교육, 홍보, 운영, 시설, 재정분과의 정리 발표가 진행되었다. 스파르타 같던 300여 명의 아마 이사들은 어느새 굶주린 하이에나의 표정을 짓고, 물소 때마냥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준비된 술은 금방 동이 났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를 뚫고 누군가는 술을 찾아 헤매였을 생각을 하니 눈앞의 술이 인삼보다 더 귀해 보였다.

새벽까지 끊임없이 어린이집에 대해 이야기...

새벽 2시 반이 지나자 주최 측에서 제발 마무리하고 객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노래도 없이, 춤도 없이 아마들은 끊임없이 어린이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들의 집중력과 체력에 놀라웠다. 대학 축제 주점에서의 20대 대학생들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체력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진정 스파르타 전사보다 강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객실로 들어가니 또 한 번 전사들의 모습에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객실 안에서는 지역과 성별에 따라 객실이 정해졌지만, 어린이집 아마들을 또 다른 단합의 장을 마련했다.

공동육아 이사진 교육후 뒷풀이 새벽이 오고 있음에도 전혀 굽힘이 없다.
 공동육아 이사진 교육후 뒷풀이 새벽이 오고 있음에도 전혀 굽힘이 없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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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역시 그 옆에서 다시 판을 깔았다. 새벽 4시를 향해가는 와중에도 초면의 옆 테이블 마저 챙기는 공동체의 정신은 숭고해 보였다. 이제부터 수박을 수박애주의자로 불러야 겠다. 새벽 4시가 넘어서 나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마무리하고 잠을 자자는 막내의 부탁을 형님 누님들이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저 맡기는 어린이집라면 학부모들이 모여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키우고 함께 만들어가는 어린이집이라면 이야기소재는 밤을 지새울 만큼 무궁무진하다. 겨우 양치만 하고 잠을 청했다. 2015년의 기대와 책임감이 위 안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정말, 잘 거야?"

수박이었다. 수박은 올 들어 최고의 한파를 아랑곳하지 않고 방문을 나섰다. 또 어느 팀의 술판을 굽어살펴주시려 하는 걸까? 공동육아, 공동체. 내 아이 행복하게 키우겠다는 욕심에 발을 들였지만, 정작 부모가 더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다.


태그:#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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