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다. 10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후보자의 반민주적 언론관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이 후보자가 "언론인을 대학 총장과 교수로 만들어줬고, 언론사와 기자들이 곤욕을 치르도록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 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해당 녹취록은 지난 1월 27일 이 후보자가 정치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을 한국일보 기자가 녹음한 것으로, 지난 6일 KBS 보도를 통해 일부 폭로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후보가 청문회장에서 언론 외압 사실을 부인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자회견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 후보의 '식사 자리 발언' 중 '언론관'에 해당하는 내용 전문을 공개했다.
이 후보의 자격 논란은 그의 그릇된 언론관에서 그치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병역 비리 의혹에 관한 그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은 이 후보자가 부주상골, 즉 평발이 될 수 있는 증세로 보충역 판정을 받기 4년 전인 1971년, 현역 판정을 받았던 사실을 확인해 추궁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40년 된 일이기 때문에 기억을 일일이 못 하겠다"고 변명했다. 이 와중에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후보자의 자격 논란은 부동산 투기 및 병역 기피 의혹, 논문 표절 등 역대 '낙마 계기 단골메뉴'가 한 명의 후보자에게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이 후보자가 기자들 앞에서 언론계 내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내놓고 과시한 일은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략적 목적을 위해 언론 자유를 비롯한 민주주의 원칙을 언제든지 훼손할 수 있는 사람임을 방증한 것이며, 총리 후보자 낙마 사유가 되기에도 충분하다. 언론은 이를 심층·분석 보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여론 형성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나 공영방송 KBS는 이를 기계적 균형에 빠져 소극적으로 보도했고, MBC는 이 후보 감싸기에 몰두해 왜곡 보도를 일삼았다. 오히려 TV조선과 채널A가 이 후보자를 비호하느라 바쁜 여당 의원을 희화화했고, 이 후보자의 답변 태도를 지적했다. 정작 공영방송에서는 이 후보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언론 외압 사실 최초 보도한 KBS, 청문회 보도량은 꼴찌
보도 건수로만 보면 채널A가 이틀간 8꼭지로 관련 내용을 가장 많이 다뤘다. 채널A는 대담 꼭지로도 이 내용을 짚어 청문회 이모저모를 가장 상세하게 다뤘다. 이어 JTBC와 TV조선이 각각 7꼭지씩 보도했고, MBC가 6꼭지, SBS가 5꼭지를 보도했다. 이 후보자의 언론 외압 사실을 최초 보도한 KBS는 4꼭지로 청문회 내용을 가장 적게 전달했다.
보도 비중을 알 수 있는 보도 순서를 비교해 봤다. 청문회 첫날인 지난 10일에는 KBS · MBC · SBS · JTBC가 인사청문회 내용을 톱 보도로 전했다. 이튿날인 11일엔 영종대교 교통사고와 신축 체육관 붕괴사고 때문인지 인사청문회 내용을 톱 보도로 전한 방송사는 JTBC뿐이었다.
TV조선과 채널A는 청문회 내용을 이틀 연속 뉴스 후반부에 배치했다. TV조선은 지난 10일 관련 내용을 5번째 보도로 시작했고, 11일에도 10번째 순서로 배치했다. 채널A는 10일과 11일 모두 관련 내용을 16번째 순서로 배치해 보도했다.
이완구 후보자 대변인으로 나선 MBC의 황당 보도 '베스트 3'[Best 1] 불법 운운하며 '취재윤리 위반'이라고 왜곡한 MBC 청문회에선 이번 녹취록의 녹취 과정과 전달 과정에 대한 취재 윤리 위반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기자의 녹취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그런데 MBC는 녹취행위가 불법인 것처럼 강조하는 표현만을 사용했을 뿐, 녹취 당시의 정황은 전달하지 않았다. 이는 객관성을 상실한 왜곡·편파 보도다.
MBC의 편파 보도 행태는 "녹음파일 공개 취재윤리 위반? (2/10, 장재용 기자)" 보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장재용 기자는 리포트에서 "당시 몰래 녹음한 한 기자는...", "새누리당은 불법으로 녹음한 파일을 기자가 직접 보도하지 않고 특정 정당에 넘긴 것은" 등의 표현을 통해 '불법'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 녹취 행위의 불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근거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불법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과 근거는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청문회 발언인 "일상적인 기자들의 취재 관행입니다. 그리고 오찬 간담회 자리고요. 뭐가 불법입니까?"라는 말로만 전달됐다. 그러나 이 말만 들으면 마치 김 의원이 '녹취 행위는 불법이지만 기자들의 취재관행이라고 우기는 것'처럼 느껴질 뿐, 녹취가 불법이 아니라는 근거로 인식되기엔 불충분하다.
반면 TV조선은 "'인준' 첩첩산중...개각 지연 (2/10, 이재민 기자)" 보도에서 앵커가 "결국 만약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 취재 윤리에 반하는 녹음과 제공 때문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독수독과 원칙도 있지만 이번의 경우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지, 위법은 또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JTBC는 "윤리위반? 국민 알권리? (2/11, 신혜원 기자)" 보도에서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의 "불법적으로 녹음된 내용"이라는 발언을 전한 뒤, 기자가 "현행법상 타인의 대화 녹취는 불법이지만, 대화에 참여한 사람의 녹취 행위는 불법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노진녕 변호사의 "본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금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 자체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되긴 어렵다고 봅니다"라는 인터뷰를 담았다.
[Best 2] 겁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식당 종업원 취재에 나선 MBCMBC는 "외압 분위기 아니었다 (2/11, 장재용 기자)" 보도에서 오찬 간담회를 한 식당을 찾아갔다. 앵커는 "이완구 후보자가 과연 기자들을 상대로 언론 외압성의 발언을 했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일었는데요. 그렇다면 문제의 식사 자리에 함께한 기자들과 식당의 관계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라며 보도를 시작했다.
이어진 리포트에서 장재용 기자는 당시 상황을 알아보겠다며 식당을 찾아가 "당시 분위기는 농담과 큰 웃음소리가 오간 분위기였다고 식당 관계자는 밝혔습니다"라고 전했다. 음성 변조한 식당 아주머니의 "화기애애했어요. 웃고 계셨어요. 정말"이라는 인터뷰도 담았다.
기자는 또 "당시 식사 자리에 있었던 총리실 관계자들도 이 후보자가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농담을 섞어 한 말이었다고 밝혔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총리실 관계자의 "반어법이죠. 무슨 학술 논문 강연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무슨 그 자리에서 청문회 하는 것도 아니고"라는 인터뷰도 음성 변조해 담았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기자들도 이 후보자의 발언은 받아넘길 수준이라 외압으로 느끼지 않았는데 보도가 나와 당혹스러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보도는 한마디로 MBC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장재용 기자와 MBC 데스크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해도 겁박일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장삼이사 누가 들어도 이완구 후보자의 발언은 언론인에 대한 겁박이며, 회유인데 어떻게 MBC만이 이렇게 외압이 아니었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일까. 더 이상 논평하는 것조차 무가치하게 보일 정도로 이 보도는 수준 미달이다.
[Best 3] 이완구 후보자는 성인군자? 이미지 메이킹하는 MBCMBC는 또 "투기 의혹" "주거 목적이었다 (2/10, 천현우 기자)" 보도에서는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성 발언 인용으로만 리포트의 절반을 구성했다. 앵커는 "이 후보자는 주거 목적 외에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라고 말했고, 리포트에서는 "제가 40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6번 이사를 한 것 같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근검절약해서...", "타워팰리스 매매 의혹에 대해서는... 투기 목적이었다면 안 팔았을 것" 등 이 대표의 발언이 다수 전달됐다.
또한 이번 논란과 무관한 혈액암으로 투병했던 사실을 전하는가 하면, 이 후보자의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저의 의견보다는 듣는 쪽으로..."라는 엉뚱한 해명을 담았다. "1년에 1200만 원대의 기부 내역, 충남 지사 시절 장모상 때 태안 기름 유출 현장으로 먼저 달려갔고,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부고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사연 등"도 나열했다. 이는 이완구 후보자에게 성인군자의 이미지를 부여해 논란의 본질을 흐리고, 총리 인준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골적인 편파 보도다.
기계적 균형 지키느라 애쓰는 KBS
KBS는 지난해 문창극 총리 후보 검증 보도로 공영방송의 위상을 높였고, 지난 6일에는 이완구 후보자의 언론 외압 사실과 반민주적인 언론관을 최초로 보도해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10일 인사청문회 보도에선 문창극 총리 후보 검증 보도 당시의 기개와 날카로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KBS는 "백번 사죄...'언론 외압' 녹취록 공개"(2/10, 황현택 기자) 보도에서 "이완구 후보자는... 통렬하게 사과한다며 몸을 바짝 낮췄습니다", "이완구 후보자는... 여러 차례 사과하며 최대한 몸을 낮췄습니다" 등 이 후보자가 깊이 반성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문장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리포트 마지막에는 이완구 후보자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관련 답변이 소홀했다면서 언론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거듭 해명했다"고 전했다.
"병역·부동산 투기 의혹 파상 공세 (2/10, 최영은 기자)" 보도에서는 "오랜 공직 생활 과정 중에 단 한 건의 어떤 부정이나 비리가 없었던 걸로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한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과 "제가 평소 정치하면서 닮고 싶은 정치 지도자하면 이완구 후보자였습니다"라고 말한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을 차례로 전달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입장도 전달해 언뜻 기계적 균형을 취한 듯 보이나, 의혹에 대한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성 발언을 다수 실었기에 오히려 편파적이라는 인상만 남겼다. 지난 11일에도 KBS는 두 꼭지의 보도에서 최대한 간략하고 기계적으로 청문회 내용을 전하는데 그쳤다.
TV조선·채널A, 이완구 후보자 감싸는 여당 태도 희화화 TV조선은 "진땀 흘리며 '백번 사죄' (2/10, 박상현 기자)" 보도에서 "새누리당 인사청문 위원들은 이 후보자를 감싸기 급급합니다", "일부 의원은 질의 시간에 이 후보자의 기부 내역을 줄줄이 읽습니다" 등 이완구 후보를 감싸는 여당 의원들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이어 "더 이상의 총리 후보자 낙마는 막아야 한다는 여당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여당 지도부도 이 후보자의 총리 인준을 위한 당심 모으기에 나섰습니다"라고 전했다.
채널A도 "20번 넘게 고개 숙인 '사과 자판기' (2/10, 노은지 기자)"에서 앵커가 "일부 여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대변인 같은 지원을 펼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보도하며 여당 의원들의 행보를 지적했다. 이어진 리포트에서도 "여당 일부 의원들은 후보자의 '대변인'처럼 지원사격에 나섰"다고 말했다.
한편 채널A는 이완구 후보자의 답변 태도를 지적했다. "'X레이 없는 곳서 신검' 거짓말 들통 (2/10, 신재웅 기자)"에서는 앵커가 이완구 후보자의 병역 기피 논란을 보도하며 "이 후보자는 '오래 전 일'이라며 답변을 회피했습니다"라고 말한 데 이어 리포트에서도 기자가 "이 후보자는 '오래 전의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총장 시켜줬다' 민낯 드러낸 '허풍'" (2/10, 류병수 기자)에서는 비판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앵커는 "이완구 후보자의 '언론 허풍'이 또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황당하고 가관인 내용이 속속 밝혀지자 기억력 탓을 하며 사과로 일관했습니다"고 멘트했다.
JTBC, 이완구 후보자의 반민주적 언론관 비판JTBC는 "여야 충돌 부른 '녹음 파일'" (2/10, 조익신 기자)에서 이완구 후보자의 반민주적인 언론관을 비판했다. 논란이 된 녹취록 내용 중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 주고. 나, 언론인 지금 이래 살아요.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 부분을 들려준 뒤 "언론 회유와 대학 외압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평했다. 이어 "김영란법 처리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이어집니다"라고 말한 뒤 김영란법을 통과시켜버리겠다는 이완구 후보자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언련 사무처장입니다.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