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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0일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시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사고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은 각종 규제 강화 대책을 쏟아냈다. 전·월세난과 1·2인가구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도입한 도시형생활주택에 규제를 완화해준 것이 참사의 원인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각종 화재 관련 규제에서 제외된 대학가 원룸과 하숙방들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화재 진압 장비는 본적 없어... 불나면 순식간에 번질 것"

대학생인 기자는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3층짜리 단독주택 건물의 원룸에 거주하고 있다. 다른 세대원들은 주로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다. 의정부시 화재같은 도시형생활주택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에는 별 차이가 없다.

원룸은 좁은 골목길에 늘어선 다세대주택 사이에 있다. 소방차가 건물 근처로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방 안의 유일한 창문에는 방범 펜스가 쳐져 있어, 건물 입구를 제외하고 마땅히 대피할 수 있는 출구가 없다.

다른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대학가 주변 원룸이나 하숙방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 A씨(23)는 지난 3년간 학교 근처인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 거주했다. 원룸과 하숙방에서 각각 2번씩 살았다.

A씨는 "아래층이 상가였던 경우를 빼고는 그간 거주했던 원룸과 하숙방에서 소화기조차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번 살았던 한 하숙방 같은 경우에는 큰 방을 합판 같은 것으로 나누어 두 개의 방으로 만든 것 같았다"며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건축자재가 약해, 화재가 난다면 순식간에 불이 번질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일대의 고시원, 다세대주택 등에서 산 대학생 B씨(29)는 "규모가 있는 건물이나 법적으로 (규제가) 있어서 소방 시설이 있는 것 같다"며 "오히려 고시원에서 살 때는 (화재 시 이용하는) 하강 루프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소화기 자리는 있는데 정작 소화기는 없어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의 한 원룸 건물. 소화기 자리는 있지만 정작 소화기가 없다.
소화기 자리는 있는데 정작 소화기는 없어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의 한 원룸 건물. 소화기 자리는 있지만 정작 소화기가 없다. ⓒ 김예지

느슨한 화재 예방 규제... 법 어길 시 제재 없어

대학가 원룸이나 하숙방이 화재에 취약한 데는 이유가 있다. 원룸과 하숙방은 4층 이하의 저층 건물인 경우가 많다. 대개 주택법상 다세대주택(공동주택, 층수 4층 이하, 바닥면적 660제곱미터 이하)이나 다가구주택(단독주택, 주택 층수 3층 이하, 바닥면적 660제곱미터 이하, 19세대 이하 거주)으로 분류된다.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은 화재 예방에 관한 규제가 느슨하다.

소방법상 고시원이나 기숙사, 오피스텔 등은 규모와 용도에 따라 스프링클러나 옥내소화전 등 특정한 소방 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은 규모와 용도에 상관없이 이러한 의무가 없다. 대신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법은 2012년 2월부터 시행됐다. 따라서 기존 건물의 경우 2017년 2월까지 유예기간이 있다. 실제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의 한 부동산에서 지난 2014년 1월 1일부터 12월 1일까지 매물로 나온 원룸 71개의 옵션을 확인했지만 '화재경보기'가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한국소방안전협회 정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해당 내용이) 법률상으로 의무사항이기는 하나, 법률적으로 과태료나 벌칙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유예기간이 끝날 때쯤 되면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에 대한 법률 개정안이 추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외부 마감재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것도 문제다. 건축법에서는 노래방·PC방 등의 다중이용업소나 공장, 고층 건물에만 불에 잘 타지 않는 외부 마감재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화재가 난 의정부시 도시형생활주택처럼, 불에 약한 스티로폼을 사용하는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외벽을 마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대학가 원룸과 하숙방은 가까운 거리에 밀집해 있다. 다세대주택의 경우, 건축법상 0.5미터 이상 4미터 이하의 간격만 확보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원룸과 가정집이 섞여 있는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의 한 주택가의 경우, 건물 간격이 좁은 것은 물론 골목 곳곳에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불이 쉽게 번질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소방차 진입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의 한 주택가 건물간 간격이 좁을 뿐만 아니라, 골목 곳곳에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의 한 주택가건물간 간격이 좁을 뿐만 아니라, 골목 곳곳에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 김예지

쏟아져 나오는 화재 대책, 원룸·하숙방은 해당 안 돼

이처럼 대학가 원룸과 하숙방이 화재에 취약한 환경임에도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의정부시 화재 사고 이후 지자체나 정치권이 내놓은 안전 대책들은 도시형생활주택에 치중돼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6층 이상의 건물에 초점을 맞췄다. 대학가 원룸이나 하숙방의 일반적인 형태인 저층의 다가구·다세대주택은 해당사항이 없다. 도시형생활주택 중 하나인 '원룸형 주택'도 4층 이하이다.

지난 1월 23일 나온 '도시형생활주택 안전 대책'을 담당한 서울시 주택건축국의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다가구·다세대주택 안전 대책의 도입에 관해 묻자 "소방법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라면서도 지자체가 모든 건물을 규제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6층 이상 공동주택에 불연 또는 준불연 외부 마감재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내놓은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실 측의 입장도 비슷하다. 신경민 의원실 측은 전화통화에서 "모든 건축물에 불연재를 사용하고 안전 기준을 의무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적용하기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외부 마감에 불연·준불연재를 사용하는 건물의 범위를 넓힐 경우, 경제적 부담이 고스란히 건물주와 세입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번에 내놓은 건축법 개정안은 현실을 고려한 '절충안'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일단은 도시형생활주택이 문제가 됐으니 먼저 관련 법을 강화하고, 규제 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후속 입법이 가능한 부분들을 찾아 발의를 해볼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소방시설 강화하고, 관련법 제정할 필요 있어

한편,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정기성 교수는 이메일을 통한 인터뷰에서 다가구·다세대주택 형태의 원룸과 하숙방의 경우 "스프링클러 설비 등 자동소화 설비가 설치되지 않아 화재시 대책이 허술하다"고 전했다. 또 "피난계단이나 피난시설 등이 미비하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게 되어 많은 인명피해가 예상된다"는 우려를 표했다.

더해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의 화재를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소방시설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피난로 확보와 방염처리 등도 할 수 있도록 법규가 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스프링클러나 옥내소화전, 피난시설 등 현재는 완화되어 있는 주요 소방시설 설치의 강화를 제시했다. 소화기와 같은 기초적 소방 장비 또한 필수적으로 비치하여 사용방법을 교육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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