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6일은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방값과 공과금을 봉투에 넣어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입니다. 그들의 1주기를 기리며 기초법 시행령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짚는 연속칼럼을 기고합니다. - 기자 말작년 이맘 때 쯤인 2014년 2월 26일이었다. 환갑이 된 어머니와 30대 딸 둘이 송파구 소재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 셋방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전에도 부모가 생활고로 자살하면서 자식까지 데려갔다는 기사를 간간이 접한 적이 있다. 차마 제 살 길을 찾기 위해 자식을 버리지 못하거나 자식을 놔두고 혼자서 갈 수 없어 함께 저승길을 택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번처럼 성인 3명으로 구성된 일가족이 세상을 등진 사건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고, 그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 모녀가 남겨놓은 것은 마지막 월세 50만원과 공과금이 담겨진 봉투, 그리고 "정말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12년 전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두 딸은 신용불량자였다. 첫째 딸은 당뇨와 고혈압이 있었지만,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을 다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은 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안정적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세 모녀는 이렇게 서로를 부양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첫째 딸은 지병으로 일하지 못해 둘째 딸과 어머니의 부양을 받아야 했다. 둘째 딸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도 대부분 3인 가족의 생계비에 보태지거나 빚을 갚는 데 쓰였을 것이다.
이렇게 이들은 우리나라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방식대로 콩 한 알까지 나누어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살얼음판 같은 현실은 어머니가 2014년 1월 말 팔을 다치고 일하지 못하게 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마지막 콩 한 알까지 떨어진 이들에게는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세 모녀 법 통과 이후 세 모녀 사건이 언론을 탄 이후 정부는 이른바 '세 모녀 법'이 통과되면 마치 이러한 사건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정부가 말하는 '세 모녀 법'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 법률안'이다.
2013년 5월, 의원 명의를 빌려 국회에 제출했지만 시민사회와 학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추진이 원활하지 않았다. 아전인수도 이런 아전인수가 없다.
송파 세 모녀는 생활고로 고생하면서도 관할 구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털어놓지 않은 점으로 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어머니가 다쳤어도 둘째 딸이 한창 일할 나이여서 부끄러워 차마 지원신청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나라 정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라고 보았을 것이라는 정도다. 병원진료기록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고혈압과 당뇨만으로 근로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 어렵다. 어머니의 부상 또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일 할 능력이 있는' 세 모녀는 구청에 가서 수급신청을 했더라도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어머니에게 그 전 달까지 매월 약 150만 원의 소득이 있었다. 2014년 3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329,118원보다 약간 많은 금액이다. 근로능력자가 수급자로 선정되려면 '소득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통장잔고만으로는 충분한 입증자료가 되지 못한다. 고용주가 국세청에 신고한 인건비 지급내역이 가장 유력한 증거자료다.
수급신청을 하면 정보제공동의서를 제출해야하기 때문에 담당공무원이 전산망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경우 소득이 있었다는 점만 입증될 뿐, 지난달과 달리 이번 달에 소득이 없었음을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소득을 나타내는 자료가 없다 하더라도 근로능력자의 수급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커다란 장벽이 있다. 바로 '추정소득'이다. 아무리 뒤져봐도 확인된 소득이 없더라도, 일률적 기준에 따라 산정된 소득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에게 수급권이 있다고 규정한다(법 제5조제1항). 소득인정액은 개별가구의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산한 금액을 말한다(법 제2조제9호).
소득평가액은 개별가구의 (ㄱ) 근로소득 (ㄴ) 사업소득 (ㄷ) 재산소득 (ㄹ) 이전소득을 합한 개별가구의 실제소득에서 장애·질병·양육 등 가구 특성에 따른 지출요인, 근로를 유인하기 위한 요인, 그 밖에 추가적인 지출요인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하여 산정한다(법 제6조의3제1항).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도 불분명한 소득이 있다고 추정해서 소득인정액에 포함시킬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위에서 인용된 규정은 2014년 말 개정되어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예정인 법률규정이다. 규정 형식은 약간 다르지만 현행법령의 내용과 같다), 정부는 어떻게 해서 그동안 추정소득을 산정해서 기초생활보장 탈락 또는 급여 삭감 사유로 삼을 수 있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탈락 또는 삭감 결정에 불복하여 소송까지 할 수 있는 수급권자가 적은 상황에서 법률보다 지침이 실질적으로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관할 구청이 근로능력자인 아들에게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하고 그에 따라 세대주인 아버지에게 개별가구의 생계 및 주거급여를 감액하는 급여변경통지를 한 사안에서 "이 사건 안내서의 추정소득 부과에 관한 부분은 헌법 제37조제2항의 법률유보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법규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할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14. 2. 20. 선고 2013구합51800 판결).
위 판결은 고등법원에서도 유지되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발간한 「2015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에서 추정소득 부과와 관련된 내용이 삭제되지 않았다. 명칭만 "보장기관 확인소득"으로 변경했을 뿐 부과사유나 부과방식은 대동소이 하다.
보건복지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 1월 입법 예고되어 2015년 말 통과된 개정 법률안과 함께 시행 예정인 시행령 개정안에 추정소득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포함시켰다. 수급(권)자의 소득 관련 자료가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 또는「최저임금법」제5조에 따른 최저임금액 등을 고려할 때 소득 관련 자료의 신뢰성이 없다고 보장기관이 인정한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산정기준에 따라 추가로 '확인'한 소득을 소득평가액에 합산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소득 관련 자료가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 또는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았다 해서 어떻게 소득이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또는 이전소득이 있다고 실제로 확인이 되면 위 소득에 포함해서 산정하면 된다. '보장기관 확인소득'이라는 별도 항목이 필요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급여 받는 것은 왜 부끄러운 일이어야 할까소득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일률적 기준에 따라 산정된 소득이 있다고 추정하고 소득평가액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래도 '세모녀법'이라고 한다면 모 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장그래법? 제발 그 입을 다물라"고 했던 것과 같은 심정으로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하고 싶다.
위 서울행정법원 판결에서 말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이란 집행기관인 행정부가 법률적 근거 없이 국민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 중 하나이다. 시행령, 시행규칙, 지침은 모두 집행기관인 행정부가 제정하는 법규로서, 법적 근거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건복지부의 시도가 법치주의를 전면으로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송파 세 모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의지한 채 살다가 마지막 버팀목이 힘없이 꺾이면서 한꺼 번에 무너졌다. 이들은 고립된 섬과도 같았다. 아동수당을 받고 기초연금을 받는 것은 당당한데,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는 것은 왜 이토록 부끄러운 일이어야 할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가난인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영아님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