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어디쯤 온 것일까?
꽃 소식이 한창 들려오는 남도의 땅, 지난 23일과 24일 제주도는 오는 봄과 가는 봄이 교차하고 있었다. 단아하고 피처럼 검붉은 홑동백이 보고 싶었다.
제주 돌담 너머 고개를 내민 초록의 이파리 사이로 붉은 동백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듯하다. 갓 피어나는 것들도 있고, 몽우리 뜰듯한 동백도 있지만, 이미 시들어가는 동백도 있다.
세상에나!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올해 처음으로 너희들과 눈맞춤을 하였는데, 너희는 벌써 봄을 등지고 떠나가다니...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통째로 떨어지는 꽃, 아무런 향기도 없지만 그 향기없음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꽃.
동백을 닮은 사나이가 있었다. 33살 젊은 나이에 십자가를 져야만 했던 예수라는 사나이, 그리고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은 동백을 닮았다.
33살보다도 더 젊은 20대에 이 땅의 민주화를 외치다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는 그리 먼 시절의 이야기도 아니다. 아니, 이미 그들이 살았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오래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그들이 동백처럼 뚝뚝 떨어졌건만, 봄이 온 것이 아니라 다시 겨울로 회귀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의 친구였고, 후배였고, 선배였던 이들이 잘못 살아온 까닭이 아닐까?
겨울은 가고 봄이 왔으나...
"기다림.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간절한 꽃말을 가진 동백이라서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보고 싶으면서도 아프고, 그 아픔과 저림이 있어 사무치는 아름다움으로 각인되는 동백. 저 남도의 땅에서 그들은 그렇게 붉은 피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문득, 4월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싶다.
1948년 4월과 2014년의 4월, 아픔에 아픔이 더해지는 시간들이 이어지는 4월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자들은 치욕처럼 살아가야 하는 현실, 동백이 다 떨어질 즈음이면 그렇게 온 강산에 봄이 오겠구나.
그런데, 너희들 오늘에야 만났는데 벌써 가고 있구나! 너희들이 피었다는 소식을 누군가 부지런히 실어 날라 주었다면 좀 더 일찍 만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서둘러 온다고 왔건만 이미 떠나고 있는 중이구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떨어진 동백, 향기 없는 꽃이지만 그렇게 떨어져도 열매가 맺히니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그 기름으로 쪽을 지는 소녀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떨어진 너희들이 죄다 흙의 빛깔이 되어 흙으로 돌아갈 즈음이면 온 강산이 푸른 봄이 될 것이다.
동백의 낙화는 아직도 언 땅을 두드려 봄을 여는 몸짓이다. 그 처절한 몸짓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울 때 이 땅과 이별해야 했던 수많은 영혼들, 그들은 모두 이 땅의 봄을 열기 위해 떨어진 꽃들이다. 그 꽃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살아있는 자의 몫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