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우연히 옛 친구를 17년 만에 만나는 기분이다. 지난달 11일 충남 금산의 삼가천 중류에서 1996년 이후 17년 만에 성공한 재회. 친구였다면 전화 번호를 교환하겠지만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행운처럼 만난 주인공은 '물까마귀'다. 17년 전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 중 뱀사골 계곡에서 만난 물까마귀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이후 물까마귀는 그동안 내게 재회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물까마귀는 전국의 산과 계곡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종이다. 대전 인근의 계룡산 식장산에서 서식하는 모습을 목격한 탐조인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때문에 20여 차례 계룡산 등산을 해온 나는 매번 계곡을 오를 때마다 촉을 세우고 물까마귀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번번이 물까마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운이 없었다.
물까마귀는 검갈색의 모습으로 잠수해 수서 곤충이나 작은 물고기를 사냥한다. 물속의 바닥을 긴 발톱으로 잡을 수 있어 잠수하며 바닥을 걸어 다니면서 먹이를 잡는 특이한 종이다. 잠수 할 때 눈을 보호하기 위한 흰색의 눈꺼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다시보기 위한 노력도 그간 시들해졌다. 17년의 세월이 있기에 궁합이 잘 안 맞는 종으로 생각하며 보기를 포기 했다.
그런데 계곡도 아닌 삼가천 중류에서 다시 물까마귀를 만난 것이다.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만남이었기에 기쁨은 두배 이상이었다. 정신없이 관찰했다. 물가를 다니며 먹이를 찾는 모습은 매우 바빠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비행하더니 사라졌다.
30분 내외의 관찰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아무튼 17년 만에 다시 재회한 물까마귀로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다. 나는 물까마귀를 다시 보기 위해 지난 1일 현장을 다시 찾았다. 물까마귀는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물까마귀를 나는 다시 관찰했다.
다시 만난 물까마귀... 둥지 틀기 위해 찾은듯 물 위를 낮게 날다가 첨벙이며 착륙하는 모습은 다른 새들의 사뿐하게 물에 착륙하는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그러다 어디론가 쏙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물을 건너야 해서 가까이 근접하지는 못했다. 아마 둥지를 틀려고 하는 장소로 판단됐다. 나의 인기척을 감지한 탓인지 숨어서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번식 가능성을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곡에 서식하는 물까마귀의 특성을 감안하며 주변을 살피니 산간 계곡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위로 형성된 하천의 지형이 물이 많이 흐르는 계곡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다.
삼가천으로 따지면 중류에 해당하는 지역에 둥지를 틀기 위해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의 재회를 통해 만난 물까마귀. 이 서식처는 이제 매년 찾아 갈 수 있는 탐조 포인트가 되었다. 번식을 위해 이후 다시 현장을 찾지는 않으려고 한다.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지만 나에게는 17년 만에 다시 모습을 보여준 물까마귀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