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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싶은 승현아... 고생한 누나 꿈에라도 나와줘" 지난달 23일 '진도 팽목항~서울 광화문 3보1배'에 나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이아름씨는 3보1배 시작 10일째 되는 4일에도 고된 여정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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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세월호에 달린 노란 리본이 세차게 흔들렸다. '반면교사'라고 적힌 검은 깃발을 든 사람은 연신 몸을 휘청였다. 한껏 옥죈 옷깃 사이로 바람이 스미자 곳곳에서 "너무 춥다"는 탄식이 터졌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누나는 찬 아스팔트 위에 서서 세 걸음 걷고, 허리 숙이기를 반복했다. 지난달 23일 '진도 팽목항~서울 광화문 3보1배'에 나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이아름씨는 3보1배 시작 10일째 되는 4일에도 고된 여정을 이어갔다(관련기사 :
팽목항→광화문 3보1배 "하늘 위 아들 위해 멈추지 않아").
이날 오전 10시 진도 연산마을에서 출발한 부녀는 오후 4시 진도 신동마을 인근까지 3보1배로 이동했다. 지난 9일 동안 약 26km를 이동한 부녀는 이날 날씨로 인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동 거리도 약 2km에 그쳤다.
이호진씨는 "(3보1배 시작 후) 이렇게 강한 바람이 분 적이 없었다"며 "이런 날엔 안전이 걱정될 뿐만 아니라 솔직히 겁난다"고 말했다. 이어 "겉으론 추워도 3보1배를 하면 속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난다"면서 "쉬는 시간 동안 센 바람 때문에 땀이 식는데, 이 때문에 감기에 걸릴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10일 동안 시민 약 50명 동참
부녀의 얼굴은 10일 전에 비해 부쩍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이호진씨 얼굴엔 흰 수염이 덥수룩했다. 이날 3보1배에 동참한 한 시민이 "수염을 기르니 더 멋있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이씨는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쑥스러운 듯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3보1배를 한 10일 동안 부녀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동안 시민 약 50명이 짧게라도 3보1배에 동참했다. 모형 세월호를 실은 노란 손수레에는 다녀간 시민들의 메시지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진도 의신면에 살고 있는 주민의 도움으로 매일 묵을 수 있는 숙소도 생겼다. 진도 농민회에게도 여러 도움을 받았고, 부녀가 3보1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달리던 차에서 내려 응원을 하는 시민들도 종종 보였다.
이호진씨는 "10일 동안 3보1배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소수이지만 (3보1배에) 동참해준 분들"이라며 "지난해 7월 도보순례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준 분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묵고 있는 숙소의 주인과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있는 진도 농민회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아름씨와는 10일 전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3보1배를 시작하던 날, 인터뷰를 극히 꺼리던 아름씨는 이날 "그 동안 힘든 점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모든 게 다 힘들었다"고 답했다. 동생 승현군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매일 쓰는 누나의 일기
아름씨는 매일 3보1배를 마친 뒤, 아버지 명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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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일을 걸었습니다. 진도읍까지 언제 오나 싶었는데 (…) 진도체육관이 가까워 질수록 승현이를 만난 그날이 생각나 눈물이 났습니다. 아빠와 저는 15일 만에 승현이를 만났습니다. 승현이가 돌아오기 전 예감이라도 하듯 아빠는 제게 말했습니다. '승현이가 수의를 싫어할 것 같은데 평소에 좋아하는 옷을 입힐까?' (…) 팽목항에 있는 성당 천막에 승현이가 좋아하는 옷을 사서 준비해놓고 기다렸습니다. 거짓말처럼 다음날 새벽에 승현이를 만났습니다. 형아가 사준 바지를 입고, 형아가 사준 시계를 차고, 누나가 사준 티(셔츠)를 입고. 누나가 사준 지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 모습이 18년 동안 제가 봐왔던 승현이의 모습 중에 가장 예뻤습니다. 너무 에뻐서 승현이를 계속 안아줬습니다. (…) 너무 예쁘게 누워있는 승현이가 혹시나 일어날까 불러봤습니다. 그런데 승현이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승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승현이 품에 안겨 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승현이를 정성스레 닦고 팬티부터 양말까지 승현이가 좋아하는 걸로 입혔습니다. (…) 그리고 축구공과 축구화도 옆에 넣어줬습니다. (…) 그리고는 다시 승현이를 안아줬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해서 '너무 빨리 보내서 미안하고, 다음 세상에도 우리집 막내로 태어나 달라고, 하늘의 별이 되어 나를 봐달라고' 썼습니다. 발인하기 전날,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쁘게 입혀서 불구덩이에 넣을 생각을 하니 울화통이 터져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 관을 붙잡았습니다. 태우지 말라고 죄 없는 직원 분한테 진상을 부렸습니다. (3보1배를 시작한) 처음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자세도 좋아졌습니다. 왜 힘들지 않은 지 생각하니 거기엔 승현이가 있었습니다. 내딛는 걸음도, 굽히는 허리도 모두 제 안에 있는 승현이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보고 욕을 합니다. 나쁜 자식이라고. 누나가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는 거 너는 보고 있냐고. (…) 승현이는 그런 제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누나의 하늘이 될테니 누나는 땅에서 다 풀고 오라고. 그 나쁜 자식이 그렇게 말하니 저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보고싶은 승현이. 오늘도 미치게 보고싶습니다. 고생했다고 꿈에라도 나와주면 좋겠습니다."함께한 시민들 "대통령, 이 모습 꼭 봤으면"
이날 부녀의 3보1배 행렬엔 시민 6명이 동참했다. 첫날부터 함께한 홍가혜씨와 팽목항 전담 사제로 발령받은 최민석 신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에 소속된 이들이 10일째 이어진 부녀의 3보1배에 동참했다.
총 네 차례 진도에 내려와 3보1배 여정에 힘을 보탠 정인선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직도 거리에 머물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길에서 함께 걸어주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3보1배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가혜씨는 "3보1배 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누가 꼭 봤으면 좋겠나"라고 묻자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 다른 것에 신경쓸 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렸으면 한다"며 "(3보1배를 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한다면 그 한 마디로 유가족들의 피맺힌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부녀는 오는 6월 중 서울 광화문 도착을 목표로 3보1배를 이어간다. 이호진씨는 "10일 동안 해왔던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을 향해 하는 절이자, 기도이니 국민 여러분이 저의진심을 알아주시고, 희생자 304명을 품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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