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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이야기 - 얀과 카와카마스>
<얀 이야기 - 얀과 카와카마스> ⓒ 동문선
주는 것에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자꾸만 내가 준 것만큼은 받고 싶단 생각이 들어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한다.

몇 번은 주고 나서 주었단 티를 냈다가 관계가 어색해진 경우도 있고, 지금 역시 나는 내가 준 만큼 내게 주지 않는 친구 때문에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다. 좁디 좁은 이 마음이 나도 마음엔 안 들지만, 섭섭한 걸 어쩌랴!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기만 하다.

어젠 태어난 지 50일도 안 된 조카를 보러 갔다가 저녁 때야 집에 왔다. 저녁을 먹은 후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마츠다준의 <얀 이야기 – 얀과 카와카마스>(마츠다준 지음, 동문선 펴냄)였다.

이 아름다운 우화의 주인공은 고양이 한 마리와 물고기 한 마리이다. 고양이의 이름은 얀이고, 물고기의 이름은 카와카마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책에서 얀은 주는 입장이고, 카와카마스는 받는 입장이다. 얀은 계속 주고 카와카마스는 계속 받는다. 이들의 주고받는 관계를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레 누구나 카와카마스가 밉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카와카마스가 달라고 하는 바람에 얀이 계속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주기만 하는 얀과 받기만 하는 카와카마스

야트막한 언덕 위 비탈진 곳에 위치한 아담한 오두막에 얀이 살고 있다. 얀의 아담한 오두막 앞에는 초원과 작은 숲들이 막힘 없이 펼쳐져 있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숲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은빛 물결의 강이 흐르고 있다.

어느날, 몇 개월째 방문객이 없던 얀의 집에 누군가가 찾아온다. 열어 보니 뜻밖에도 카와카마스이다. 둘은 이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멀리 산책을 나왔던 카와카마스가 우연히 얀의 집을 발견해 문을 두드린 거였다. 처음 만난 둘은 반갑게 인사한 뒤 얀은 초원 생활에 대해, 카와카마스는 강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둘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집을 나서며 카와카마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그래그래, 내일은 이름의 날 축제여서 버섯 수프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 안타깝게도 소금하고 버터가 다 떨어져서 말이야... 있잖아, 저, 미안하지만 그것들을 좀 꾸어 줄 수 있겠어?"

얀은 기꺼운 마음으로 '응, 그래!'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카와카마스에게 소금과 버터를 챙겨준다. 다음 날도 카와카마스는 놀러 왔고 이야기를 나눈 후 집을 나서며 또 이렇게 말한다.

"아차, 그래그래, 내일은 이름의 날 축제여서 버섯 수프를 만들 생각인데, 공교롭게도 스메타나가 떨어져서 말이야... 괜찮다면, 조금 꾸어 주지 않을래?"

얀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맛있는 스메타나 소스를 카와카마스에게 건네 준다. 그 다음 날은 버섯을, 그 다음 날은 차를 끓일 수 있는 사모바르를. 얀은 카와카마스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모양이었다. '응, 그래!'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카와카마스가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는 사모바르를 가지고 간 지도 한 달이 흘렀다. 얀은 그간 차를 마실 수도 없었고,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다. 친구를 직접 찾아 나서보겠다던 얀. 전날 만들어 놓은 버섯 피로그를 자루에 담아 오두막을 나선다. 강에 이르자 카와카마스의 집이 보인다. 얀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카와카마스. 둘은 함께 버섯 피로그를 먹으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얀이 집을 나서려고 하자 카와카마스가 또 홍차와 설탕을 꾸어달라는 것이 아닌가. 얀은 또 알았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카와카마스가 교활하다 생각된다면 오늘 쉬라"는 저자

다음 날 홍차와 설탕을 들고 강으로 향한 얀은 카와카마스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집도 사라지고 난 뒤였다. 전날 내린 큰 비가 카와카마스와 집을 쓸고 간 거였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흐른다. 하루하루를 사느라 카와카마스와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마저 잊고 지내던 얀이었다. 그러다 문뜩 얀은 집을 나서 강 쪽으로 향해 본다. 물줄기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흘러가고 있다. 그때, 갑자기 카와카마스가 나타난다. 둘은 실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얀을 향해 카와카마스는 여지없이 이렇게 말한다.

"아, 그리고 이제야 생각이 났는데, 정말정말 미안하지만 버터하고 소금이 다 떨어져서 말이야. 만약 괜찮다면, 참말로 괜찮다면 조금만 꾸어 줄 수 있겠어?"

얀은 또 여지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응, 그래! 내일 꼭 가져갈게."

카와카마스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얀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얀은 왜 이리 착한 걸까! 카와카마스는 왜 얀 것을 자꾸만 가지고 가는 걸까! 그러면서도 왜 이리 떳떳한 걸까! 나처럼 카와카마스가 밉다고 생각할 독자가 많다는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저자인 마츠다준은 '맺는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대가 카와카마스는 늘 꾸기나 하고, 게다가 꾸어 간 것들을 갚을 줄 몰라 교활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그대가 조금 지쳐 있다는 증거다. 오늘 하루는 우선 학교를 쉬어라. 학원도, 예비학교도 쉬어라. 회사도 쉬어라. 온 하루를 아무런 생각없이 멍하니 있어 보는 것이다.

나쁜 친구를 나쁘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저자 마츠다준은 왜 우리가 지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천천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저자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것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몰랐다. 지친 우리는 때론 너무 많은 것들을 무심하게 흘려 보내기도 하니까. 

얀의 집을 방문하며 "머뭇머뭇 망설이듯" 문을 두드리던 카와카마스의 모습. 버터와 소금, 스메타나, 버섯, 사모바르, 홍차와 설탕을 꾸어달라며 몹시 미안해하던 카와카마스의 모습. 큰 비에 집이 휩쓸려가던 날 얀의 사모바르를 주위보다 높은 초지에 조심스레 놓아둔 카와카마스의 마음. 얀의 집으로 오는 중에 지었다던 카와카마스의 아름다운 시.

카와카마스의 집을 처음으로 찾아간 날 얀은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5km나 되는 이 먼 길을 카와카마스는 어떻게 그렇게 자주 걸어왔던 것일까. 카와카마스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얀이 자기가 가진 것을 주었던 것처럼.

물론, 얀은 나처럼 무언가를 주었다고 해서 꼭 돌려받아야 성이 풀리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마츠다준은 이 따뜻하고 귀여운 우화를 통해 이 말이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때일지언정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얀은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었던 것이다. 얀에겐 카와카마스와 함께 있는 순간 그 자체가 소중해 행복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내가 주고 있는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 역시 친구가 줄 수 있는 걸 내게 주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친구는 내게 뭘 주었던 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얼른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생각이 안 나면 계속 미워하려고? 아니,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나 친구가 된 그날의 기억. 함께한 그 오랜 시간. 서로 귀 기울이며 나누었던 이야기. 이 모든 순간들을 나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건 그 순간들을 같이 했던 것뿐인데도.

덧붙이는 글 | <얀 이야기 - 얀과 카와카마스>(마츠다준/동문선/2004년 05월 05일/8천원)



얀 이야기 1 - 얀과 카와카마스

마치다준 지음, 김은진 외 옮김, 동문선(2004)


#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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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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