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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2월 말,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정처 없이 혼자 1시간을 뚜벅뚜벅 걸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무슨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할까. 혹시나 내가 말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지.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얽히고설켰다.

"배려 안 해도 돼요. 그게 더 불편해요. 검열 안 하셔도 돼요."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 '우야'(30)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우야는 레즈비언이다. 지난해부터 공동체 라디오인 마포 FM에서 편성PD로 일하고 있다. '배려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성소수자' 혹은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질문을 우야에게 할 때면 유독 그 단어에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혹시나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우야가 레즈비언인 걸 알게 되면 어쩌지, 또 다른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것)'이 되는 건 아닐까. 조심 또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그건 우야가 아닌 나를 위한 '검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소위 진보매체 기자인데, 인권감수성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말 막해도 돼요. 너무 검열하고, 조심스럽게 하려다가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스무 살 이후 혼자 살고 있다는 우야는 2년 마다 집을 옮겨 다녔다. 마지막 이주라고 생각하고 2013년 가을 마포구 연남동으로 이사 왔다. 삶터와 일터가 모두 마포구에 있는 셈이다. 우야는 이곳에서 다양한 마을공동체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마포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활동도 있고,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공동체 활동도 있다. 마포 FM,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레즈비언 공동체 라디오 제작팀 '레주파', 언니네트워크 비혼여성합창단 '아는 언니들'... 우야가 보여준 다이어리에 일정이 빼곡하다. 2009년부터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저는 알거든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동안 우야는 주로 '소리'에 관련된 일을 해왔다.

"제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거든요. 남들은 영상에 소리를 입히는데 저는 소리에 영상을 맞추고 있더라고요."

전공 수업 시간,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동체 라디오'에 대해 알게 된 우야는 2007년부터 'L양장점'이라는 레즈비언 공동체 라디오 방송 제작에 참여했다. 마포 FM 통해 전파를 타는 'L양장점'은 마포 FM 개국 초기인 2005년부터 10년을 함께 해왔다.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레주파' 로고
'레주파' 로고 ⓒ 레주파
"L양장점 하면서 라디오라는 게 얼마나 좋은 매체인지 실감하게 됐어요. 라디오라는 매체가 좋은 게 첫 번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두 번째는 말을 하는 거니까, 글과는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

사연 남기고 그런 거 보면, L양장점 듣는 청취자 중에 지방 사는 친구들이 가장 많아요. 지방에서도 (밖으로) 잘 못 나오는, 소위 '벽장'('벽장에 갇혀있다'는 뜻, 성소수자가 벽장에서 나와 자신의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한다-기자말)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많아요. 왜냐면 지방은 나가면 서로 다 알고, 지역이 너무 좁으니까.

난 이미 친구가 있고, 잘 놀고. 그러면 라디오 안 듣죠. 라디오 들을 시간에 친구랑 놀죠. L양장점 방송에서 주로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커밍아웃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 만들 수 있을까요' 같은 거예요. 그러다 L양장점에서 공개 방송을 한다거나 오프라인 모임을 여는데 그게 첫 모임이 돼서 더 이상 라디오를 안 듣고...(웃음)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우야는 '레주파' 활동가로 공동체 라디오 만드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마을미디어 교육도 진행했다.

"L양장점을 만들면서 제 삶이 바뀌었어요. 라디오를 통해 내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경험을 하고, 오프라인 모임도 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운동도 하고... 저는 알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게 다시 만나서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그분들에게 제가 레즈비언이라고 밝히지는 못했지만요."

성소수자'만'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면, 성소수자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야는 '성소수자'도'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에 주민들, 청소년들과 꾸준히 만나 미디어 교육을 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참여했고, 2014년부터는 서울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도 활동 중이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레즈비언이에요' 이렇게 말을 해도 그 사람의 반응이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서울시민이 아니래요"

 2014년 12월 6일,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시청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한 인권헌장을 거부하고 보수기독교단체와 면담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 규탄 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2014년 12월 6일,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시청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한 인권헌장을 거부하고 보수기독교단체와 면담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 규탄 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해 12월, 우야는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포함시킨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이 서울시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그것도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있는 서울시에서.

"제가 박원순 시장 때문에 인천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어요. 박원순 시장이 있는 서울에서는 뭔가를 해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내가 성소수자라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겠다. 지역에서, 마을에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왔어요. 서울 시민으로서, 청년으로서,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정치에 참여해야겠다. 어떻게 하면 서울시에서 더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해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도 했는데, 서울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너네는 서울 시민이 아니래요. 성소수자는 서울 시민이 아니래요."

우야는 2014년 12월 6일~11일, 6일간 '무지개 농성단' 서울시청 점거농성에 참여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잘 살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썼다. 우야의 본명인 '해영'이라는 이름으로.

"원래는 우야의 삶과 해영의 삶이 분리돼있었죠. 우야는 퀴어 활동 할 때 쓰던 이름이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마포 FM) 사람들은 저를 우야라고 부르게 됐어요.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이전에 다니던 직장,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다 커밍아웃하면서 '도와 달라'고 했어요. 6일이 6년 같았어요."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오버하냐'고, '왜 커밍아웃까지 하냐'고 했다. 하지만 우야는 그만큼 절박했다.

"박원순 시장이 시민이 주인이라고 했잖아요.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을 같이 꿈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거부당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성소수자 문제도 문제지만, 몇 백 명의 시민들이 몇 개월을 투자해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든 거예요(서울시는 '시민이 주인이 되어 시민이 직접 만드는 인권헌장 제정'을 표방하며 시민위원과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190명의 제정위원을 위촉했다-기자말). 그런데 그걸 안 하겠다고 한 거예요. 거버넌스(governance), 협치의 과정이 무너져 내린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엄청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거예요.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우야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청년 정책에서도 성소수자는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마을공동체가 결혼을 한, 아이가 있는 육아공동체잖아요. 가족 중심의. 박원순 시장은 그런 '정상가족'만 잡아도 표가 되는 거예요. 또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청년들 만나는 일인데 청년 주거, 일자리... 어디에서도 성소수자는 포함이 되지 않았어요. 저 같은 애는 배제해도 된다는 거죠."

성소수자만을 위한 마을은 싫다

큰 좌절과 실망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우야는 서울에서, '마을의 구성원인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서울 청년정책네트워크에 계속 참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자신의 집에서 집밥 모임인 '우야식당'을 시작했다.

 '우야식당' 웹포스터
'우야식당' 웹포스터 ⓒ 우야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월세가 엄청 싼데, 좋은 집을 구했어요. 집을 그냥 두고 싶지 않은데, 마을에서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아현동 쓰리룸에 가게 됐어요. 거기에서 집밥 모임 하는 것 보고 저도 (사진 보여주며) 이렇게 친구들이랑 같이 저희 집에서 집밥을 먹고 있어요. 밥 하는 걸 좋아해요. 잘 하지는 못하지만(웃음). 잠까지 자고 가면 '우야장'이 되는 거죠.

올해 하려고 하는 제 개인적인 프로젝트는, 마포에서 계속 살 거니까 우야식당 계속 해서 사람들이랑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그걸 팟캐스트로 만들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퀴어 친구들만 오는데, 다양한 사업 통해서 동네에 있는 청년들을 만나고 싶어요. 꼭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성소수자든 비성소수자든 상관없이 그냥 마을에서 놀고 싶어요. 이상한 것도 하고. 그러면 재밌겠죠."

인터뷰를 마치며, 우야는 최근 자신이 한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원고를 전해줬다. 마포구에 있는 동네 아이들과 만나 미디어 교육을 했던 경험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제목은 '동네에서 만나기'였다.

"이 세상 자체가 장애인만 따로 살고, 어르신만 따로 사는 게 아니라 공존해서 사는 거잖아요. 성소수자도 마찬가지고요. 다 같이 잘 사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봐야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예요."


#성소수자#레즈비언#1인가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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