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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의 수업 모습(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한 초등학교의 수업 모습(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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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유는 언제 먹어요?"
"급식은 다 먹어야 돼요?"
"청소는 언제, 누구부터 하는 거예요?"

첫 날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얼핏 보면, '저런 것들이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쯤 된 아이들이라면 정말 중요하다 못해 핫(?)한 주제들이다. 우유, 급식, 청소, 학급 규칙 등은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담임 선생님이 되기 전 가장 고민을 많이 했고 주변에 많이 묻기도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신규교사인 나는 뭐가 맞는지 혹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모든 학급 운영의 방향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 경력이 없는 내가 확실한 중심을 잡고 나의 학급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선배 선생님들께서 전해주시는 '그거 말이야, 내가 해봤는데...'로 시작하는 조언들은 섣불리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많은 고민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학급 운영과 관련한 모든 사항들을 모두 아이들에게 맡겨보기로 결정했다. 걱정하시는 선배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옆에서 아니라고 해도 소신대로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선배 선생님의 말에 용기를 얻어 결정한 것이었다.

학급 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학급의회를 조직하고 학급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일과 실행해보는 일을 직접 해야 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필요한 정책과 약속을 만들어 내고, 지켜가는 생활 속에서 배려와 협동, 자유와 책임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담임선생님으로서 큰 우려가 따르는 일이었다. 만약 아이들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학급 규칙이 정해지거나 아이들이 학급의회에서 행하는 일들을 다소 장난스럽게 받아들인다면, 학급에 아주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음... 그런 것들은 다 너희들이 정할 거야."
"우와! 그럼 우리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그렇지. 대신, 우리 반 모두가 동의한다면."

내 발언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 초코 분말 가루를 가져와서 초코 우유를 만들어 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이, 청소를 일 주일에 한 번만 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 급식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자는 아이까지. 어이구, 이거 정신 안 차리다간 정말 큰 일이 나겠다 싶었다.

"너희들이 직접 결정해"... 호기롭게 외쳤지만

3월 4일. 첫 학급의회를 열던 날, 나는 두 가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실제로 학교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공부하는 영국 '서머힐 학교'에 관한 동영상이었고, 하나는 자신의 사소한 정책 하나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원래 이런 동영상 시청 시간은 내 계획에는 없었다. 하지만 내 귓속을 맴도는 아이들의 웃음기 가득한 환호성에 걱정이 한가득이라 급하게 준비한 영상이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내가 학급의회에서 요구하는 태도와 역할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돌아서면 달라지고 눈 깜빡하면 변하는 것이 초등학생들의 마음이라 쉬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우리 반은 행정부(정책 운영 총괄 및 회의 진행 부서), 환경부(교실 환경 관련 정책 제시 및 운영 부서), 학습부(학습 관련 정책 제시 및 운영 부서), 인성부(학교생활 관련 정책 제시 및 운영 부서) 그리고 감사부(부서 정책 운영 및 정책 평가)로 6명씩 나뉘어 장장 다섯 교시에 걸친 회의가 시작되었다.

정책을 만드는 것에 제한점은 단 하나였다. '모두가 행복한' 정책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모양새를 보아 하니 의견도 활발히 나오는 것 같고, 의견 충돌도 자주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장난스럽게 참여하거나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인 내가 굳이 참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나름의 자정작용을 거치고 있었다.

좋아하는 친구끼리 급식을 먹자는 의견은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에 부딪쳤고, 일 주일에 한 번만 청소하자는 의견은 쓰레기통이 된 교실은 상상하기도 싫다는 의견에 부딪쳤다. 그냥 선생님이 대표로 청소하면 안 되냐는 장난기 섞인 의견도 뭐든 공평해야 한다는 말에 쏙 들어갔다. (사실, 그대로 통과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또, 수업시간에 떠드는 친구는 감사부에 보내서 큰 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은 가혹하다는 이유로 말로 경고하는 것으로 감면(?)되었다.

그렇게 끊임없는 아이들 간의 치고받는 회의 끝에 만들어진 우리 반 약속과 정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세했고 세심했다. 물론, 비효율적인 정책들도 있었고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는 정책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정책들이었으며 그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며 하나하나 만들어낸 정책들이었다. 자연히,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정책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쳐 직접 학급 운영을 고치고 다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통보하는 학급이 아닌, 함께 만든 학급이 된 것이다.

부서별로 한 가지 씩을 '수정 없이' 그대로 공개하면,

행정부
선생님이 없을 때, 학급에 전화가 걸려오면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를 밝히고 전화 내용을 꼭 메모해두기


인성부
우유는 아침활동시간에 다 먹고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는 제외) 모둠 꼼꼼이가 우유곽을 펴고 나머지 부원은 접어서 꼼꼼이 우유곽에 넣기


환경부
환경부+회장/ 인성부+여부회장/ 학습부+남부회장/ 감사부+선생님 4팀으로 구성해서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며 청소하기

학습부
5분 전(1번치기, 수업 5분 전 알림), 3분 전(2번치기, 교과서 준비), 1분 전(3번치기, 자리 앉아 있기) 종신호로 아이들 수업 준비시키기


감사부
교실 뒤에 건의함을 설치하여 정책과 부서 운영에 대한 의견 듣기


이런, 그런데 아이들이 만든 정책들 속에 함정 하나가 눈에 띈다. 청소 팀에 '감사부+선생님'. 환경부에서 학급은 공평해야 한다며, 선생님인 나도 졸지에 꼼짝없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게 생겼다. 어쩔 수 없지. 교실은 나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니까.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선생님,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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