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다'라는 동사가 보여주듯이,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먹는 것'은 인류의 공통 관심사다. 그래서일까.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에 목마른 방송계에 요즘 '먹는 것'이 대세다.
음식 예능 프로그램은 '먹는 방송'을 뜻하는 '먹방'을 넘어 요리하는 과정을 다룬 '쿡방'으로 진화하고 있다. '본인이 먹는 것'엔 생존을 위해 관심을 가진다 해도, 우리는 왜 '타인이 먹는 것'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이는 걸까.
우리가 보는 '쿡방'의 모습'쿡방' 인기의 선두 주자는 전라남도 신안군의 만재도라는 오지의 섬에서 차승원과 유해진, 게스트 한 명이 직접 요리해 끼니를 해결하는 tvN의 <삼시세끼-어촌편>이다. 지난 6일 방송된 <삼시세끼-어촌편> 7회는 평균 시청률 13.9%(닐슨코리아)로 4주 연속 지상파 포함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도 지상파 월화 드라마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됐음에도 10일 방송된 17회가 3.591%의 시청률(닐슨코리아)로 선전하고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셰프 출연자들이 연예인 게스트들의 실제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해 15분 안에 요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도 빼놓을 수 없다. 개그맨 신동엽과 가수 성시경이 나와 각자 한 가지씩 요리를 만드는데, 틈만 나면 둘이 아옹다옹하며 장난치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다.
인기 '쿡방'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한 번쯤 먹어봤거나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다. <삼시세끼-어촌편>에서 나온 차승원의 탁월한 요리 실력이 화제긴 하지만, 그가 주로 만드는 건 제육볶음이나 어묵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다.
전문 요리사 출연자가 요리하는 <냉장고를 부탁해> 역시 비록 처음 봤어도, 15분이라는 제한 시간 때문에 누구나 따라 해볼 만한 음식들이다. <오늘 뭐 먹지>에서도 비교적 손쉬운 음식을 만든다.
또 다른 공통점은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시세끼-어촌편>에서는 연예인이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의 일상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고 <냉장고를 부탁해>는 연예인 출연자의 냉장고 속을 보며 평소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뭐 먹지> 역시 신동엽과 성시경은 지난주에 술을 마셨다는 등 서로의 사생활을 장난스럽게 폭로한다.
'쿡방'이 주는 작은 위로예능 프로그램의 기본 목적은 시청자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데 있지만, 이 재미에는 사람들의 공감이 필요하다. 언어적·문화적·사회적 배경을 공유해야 내용을 이해하고 재미를 느낀다. 우리가 외국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쉽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정서와 사회상을 반영한다. MBC의 <나 혼자 산다>는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한 외로움의 정서를,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시대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쿡방'의 인기와 맞닿아 있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학생은 대입 경쟁, 청년은 취업난, 중장년은 자녀 양육비와 노후 자금 마련 그리고 노인 빈곤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불안한 시대다. 사람들은 '쿡방'에 나온 평범한 음식을 따라서 해 먹기도 하고, 따라 하지 않더라도 '나도 할 수 있다'고 느끼며 '작은 위로'를 얻는다.
'쿡방'에 나온 음식을 만드는 데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을 뿐더러, 먹는 순간의 즐거움으로 잠시나마 경쟁과 불안에서 벗어난다. 화려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연예인들이 나와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고 먹는다는 점도 '쿡방'이 주는 작은 위로 중 하나다. 대다수 사람이 TV에 나온 유명 연예인들의 호화로운 '의(衣)'와 '주(住)'를 보면서는 부러움과 박탈감을 느끼지만, '쿡방'을 보며 '식(食)'에서 만큼은 평등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진정 '타인의 먹는 것'에 관심 있는가
하지만 '쿡방'을 보며 '먹는 것'에서 우리가 평등하다고 느끼는 건 착각이다. 우리 사회는 소득에 따라 먹는 것이 달라지는 '밥상의 양극화'를 겪고 있다. 고소득층은 채소와 과일을 많이 그리고 자주 먹지만, 저소득층은 지방 함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나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 섭취가 많다. 이로 인해 밥 굶는 사람은 없어도 영양이 부족한 사람은 생겨난다.
2011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권장량보다 섭취량이 낮은 영양 섭취 부족자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대라지만 어떤 라면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과 어느 산지의 유기농 채소를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같지 않다.
TV만 틀면 누군가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타인의 먹는 것'에 관심이 있을까. 내가 먹어봤거나, 먹고 싶은 것을 다루기만 하는 프로그램에서 타인은 유명인이 아닌 이상 '먹는 행위자'로서만 존재할 뿐 주인공은 '음식' 그 자체다.
영국의 <채널4>에서 2005년 방영된 <제이미의 스쿨 디너>는 '타인의 먹는 것'에 집중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유명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가 정크푸드 위주로 구성된 영국 공립학교 급식을 개선하는 내용으로, 방영 이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공립학교 급식 개혁 법안이 통과됐다.
프로그램이 '먹는 것'을 넘어 '먹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쿡방'을 보며 유명인의 '먹는 것'이 나와 같다는 사실에서 위로받는 것도 좋지만, 내 이웃의 식탁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아직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이웃을, 배부른 돼지가 되어가는 나의 오늘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필요한 시대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