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3일, 신양초등학교 강당에서 '2015학년도 추가 입학식'이 열렸다. 2일 먼저 입학식을 치른 이 학교 1학년생 13명과 같이 공부하게 될 최순근(69, 충남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할머니를 위한 특별한 입학식이다. 다른 친구들보다 11일 늦게, 아니 61년 늦게 입학한 최 할머니는 그보다 사흘 앞서 진행된 인터뷰 때의 들뜬 표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한껏 긴장해 있다.

 입학첫날, 최순근 할머니가 담임교사와 학급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입학첫날, 최순근 할머니가 담임교사와 학급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 장선애

 최순근 할머니가 입학식에서 김득기 교장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고 있다.
최순근 할머니가 입학식에서 김득기 교장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고 있다. ⓒ 장선애

김득기 교장은 최할머니의 입학허가를 선언한 뒤 "처음 할머니의 입학의사를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 했지만, 직접 면담한 뒤 학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끼고 확신하게 됐다. 즐겁게 공부하실 수 있도록 교육가족 모두가 도와드리겠다. 재학생들도 할머니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 함께 열심히 공부하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할머니의 가족과 학생, 교직원들은 물론 축하 꽃다발을 들고 달려온 최동학 면장을 비롯한 내빈들도 참석해 늦깎이 학생의 출발을 함께 기뻐했다.

입학식이 끝난 뒤 교실에 입성한 최할머니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애기들도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던 담임 이미영 교사는 "할머니 친구는 경험이 많으시기 때문에 어린이 친구들이 도움받을 일이 많을 것이다. 또 친구들 중에 글씨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할머니 친구를 도울 일이 있을 것이다. 같은 반 친구끼리 서로 도와가며 지내자"고 당부했다.

슬하에 6남매와 15명의 손자손녀를 둔, 신양초등학교 1학년 최순근 학생의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학교 구경, 평생 딱 한 번

 이미영 담임교사가 최순근 할머니에게 1학년 교과서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짝꿍인 이승찬 어린이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함께 듣고 있다.
이미영 담임교사가 최순근 할머니에게 1학년 교과서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짝꿍인 이승찬 어린이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함께 듣고 있다. ⓒ 장선애

"세살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디, 그때까지 호적이 없었유. 옛날에는 출생신고를 다들 늦게 했으니께. 내가 원래는 한산 이씨인디 호적 빌리느라구 최씨가 됐지."

1946년생으로 6·25전쟁과 가난한 시대를 살아낸 최 할머니의 고단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남의 집 살이를 하며 자란 할머니는 열아홉살 때 가정을 꾸렸지만,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6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맞벌이를 하느라 자식들 입학식과 졸업식, 운동회에도 가지 못했다.

"막내딸이 쌍둥인디, 걔들 국민핵교(폐교된 귀곡초등학교) 입학할 때 딱 한 번 가봤유. 덕분에 애들 한복 입혀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어."

학교는 그렇게 최 할머니에게 멀기만 한 곳이었고, 평생의 꿈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노인네가 학교 가는 거 나오면 그렇게 부럽더라구. 서울 살면 나두 할텐디 왜 시골은 그런 것도 없나 생각만 했지, 내 생전에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어. 우리 막내아들이 '엄마 진짜 학교 가겠냐'고 묻더니만, 월차내고 내려와서 같이 학교에 가서 알어봐주고 면사무소루 서류 떼러 갔더니 면장님이 직접 교육청에 전화해 다른 서류까지 처리해주시구 해서 하루만에 일사천리루다가 되더라니께."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 할머니는 성경을 많이 본 덕분에 읽기는 가능하지만,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받침 넣는 게 너무 복잡혀. 숫자두 0을 몇 개 쓰는지 몰라 깜깜하구. 반듯하게 내 이름 석자만 쓸 줄 아니 어디 가서 글씨 써야할 때 '못쓴다'구 헐려면 얼마나 가슴이 저리고 기가 죽는지…"

자녀들도 모두 출가하고, 지난해까지 유일한 농사처였던 화산천 둔치밭도 정비공사로 못짓게 되면서 최 할머니의 면학(?) 여건이 조성됐다.

"나는 인제 짐보따리 다 내려놨으니 공부에만 전념할 거다"는 선언에 자녀들도 두 손 들어 환영했다.

할머니의 꿈은 소박하다.

"입학은 했느니 가방 메고 핵교 다녀서 졸업증 따는게 제일 기대돼유. 75살이 돼야 졸업할텐디 다른 욕심은 없구, 그저 편지라도 쓸 줄 알면 더 바랄 게 읍슈."

6년 뒤 신양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최 할머니를 꼭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늦깎이 입학생#학교 입학식#최순근#예산군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