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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생산공정 일부를 담당하지만 현대 자동차 소속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사내하청업체' 혹은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들인데요, 이들이 2005년 법원에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낸 소송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을 현대자동차 소속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무려 10년이 걸렸네요.

자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나와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최재혁 간사의 판결비평을 보면서 판결의 의미 꼼꼼히 새겨보시죠. - 기자 말

대개의 경우,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에서, 그 회사를 위해 일한다. 이때,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와 노동자를 사용하는 회사는 동일한 회사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와 사용하는 회사가 다른 경우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와 일하는 회사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 노동자 입장에서 내가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가 아닌, 노동자를 사용하는 회사, 즉 내가 일하는 회사를 위한 업무에 종사하고, 나를 사용하는 회사가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두고 '파견'이라고 한다.

사내하청은 파견이 아니다. 말 그대로 회사 안쪽에 있는 하청인데, 하청은, 용역, 위탁 등과 함께 '도급'이다. 도급은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와 사용하는 회사가 다른데, 노동자를 사용하는 회사가 업무지시 하지 않는 상황이다.

불법파견이란 파견은 파견인데, 불법인 파견이라는 뜻이다. 법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서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제조업체이므로, 법에 따라 직접생산공정업무에서 파견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도급은 허용된다. 그리하여 이번 재판의 쟁점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가 맺은 '도급'계약의 실질이 '파견'이냐, 아니냐에 있다.

'도급' 계약이 실제로 파견이냐 아니냐가 쟁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차에서는 2013년 3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가 시행됐지만 일부 하청업체에서 여전히 심야 2교대를 하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반발한 후 노사가 밤샘근무를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를 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차에서는 2013년 3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가 시행됐지만 일부 하청업체에서 여전히 심야 2교대를 하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반발한 후 노사가 밤샘근무를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를 하기로 합의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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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며, 현대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의 삼각관계가 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서는 파견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이 파견은 불법파견이 된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파견의 기준은 많고 길어서, 생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에 명시된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라는 파견의 정의 아닌가 싶다.

사실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조립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2010. 7. 22. 대법원 3부 주심 차한성 대법관)했다.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조립공정 좌우에 현대자동차의 정규직과 사내하청업체들이 섞여서 일했다는 사실관계 등등에 근거하여 불법파견을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나 고려 없이, 메인라인과 서브라인, 서브공정, 차체(프레스로 찍어낸 철판을 용접해서 자동차의 뼈대를 만드는 과정), 도장(차체에 색을 입히는 과정), 의장(조립), 엔진공정 등등 컨베이어벨트나 의장(조립)공정에 대한 특별한 구분이나 언급없이 현대자동차 생산공정 전반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또한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현대자동차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 분리되어 일한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다. 원청 소속 노동자와 사내협력업체 소속 노동자가 뒤섞여 일하면, 이를 혼재공정이라고 한다.

혼재공정이라는 작업환경 하에서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에게 분리해 업무지시를 하기 어렵다는 정황 하에 (혼재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업체들은 자신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 사내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를 공정상 구분하여 배치하거나, 자신의 공장을 사내협력업체 100%로 운영하면서 우리 공장은 혼재공정이 아니니 불법파견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이제 이런 꼼수도 어렵게 되었다. 자동차업체, 자동차부품업체 등 일정한 유형이나 범위의 생산공정이나 방식에 대한 불법파견 논란은 정리된 것 아닌가 싶다.

이번 판결은 컨베이어벨트 생산공정, 혼재공정을 불법파견의 기준으로 삼아 촉발된 여러 논란을 일정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해 주지 않은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인정 않는 점 아쉬워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란 근로계약이 없어도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근로계약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인데, 사업주로서 실체가 없어 보이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를 원청 소속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 등이 대략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스스로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는 고유하고 특유한 업무가 별도로 있지 않고, 현대자동차의 필요에 따라 사내협력업체의 업무가 구체적으로 결정되며, 사내협력업체의 전문적인 기술이나 노동자의 숙련도가 요구되지 않고, 고유 기술이나 자본이 투입된 바도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 스스로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를 '현대자동차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며, 고유의 기술도 자본도 없는 업체'라고 판단하고서도, 사업체로서 실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한계는 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업계, 비슷한 공정과 공장의 사내하청 대부분을 불법파견으로 간주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모든' 불법파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시위에 나서는 여승무원들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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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은 전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고, 서비스업 등에서의 불법파견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같은 날, KTX 여승무원에 대한 판결(2015. 2. 26. 대법원 1부 주심 고영한 대법관 : KTX 해고 여승무원이 한국철도공사 소속 직원으로 볼 수 없으며,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결)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판결의 원심은, 'KTX 여승무원들을 고용한 회사 즉, 홍익회나 철도유통은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이 없고, KTX 여승무원에 대한 인사노무관리의 실질적인 주체는 한국철도공사라고 판단하여,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고, 이 관계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며 파기환송한 것이다.

파견은 날로 확산되고 있는데, 법원에 가면 내용과 기준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론이 나오고 있다. 파견의 원칙을 분명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갈 길이 멀고 험하다. 물론 직접고용원칙이 제일 우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판결비평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참여연대 블로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내하청, #대법원,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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