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 내각을 진두지휘했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일본 총리(69)가 지난 18일 경주에서 강연을 열었다.
지난 17일 부산, 18일 오후 울산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과 동아시아 탈 원전 과제를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월성1호기 계속 운전 논란이 뜨거운 경주를 방문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약 200여 명의 청중이 참가한 가운데 간 나오토 전 총리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과 현재 상황, 탈 원전과 재생 에너지 가능성 등에 대해 약 40분 동안 강연하고 뒤이어 40분 동안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간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원전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인위적 요소 작용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시뮬레이션 결과 최악의 경우 5천만 명의 일본 국민이 20~30년 이상 장기간 대피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면서 "그런 상황이라면 일본은 장기간에 걸쳐 국가로서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를 받은 후 원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기술 수준이 낮은 구소련에서 발생한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일본은 기술 수준이 높아서 그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원전 안전 신화를 굳건히 믿고 있었지만, 후쿠시마 사고 발생 후 제 신념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간 전 총리는 "원전의 위험성은 큰 전쟁이 일어나 피난할 정도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며, 그 위험성이 존재하는 원전을 더 사용해선 일본과 전 세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그 이후 총리 재직 당시에도 원전을 폐쇄하고, 재생 에너지를 도입하려고 방향을 전환했고, 총리 퇴임 후에는 전 세계 많은 나라의 국민에게 후쿠시마 원전의 진실을 알리려고 강연에 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격 강연에 들어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이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 11일 이전부터 존재했다면서 사고가 '인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간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지진과 쓰나미 때문이지만, 15m 크기의 쓰나미를 무시한 것이 원전 사고로 이어졌다"면서 '인위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15m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과거 역사적 사실을 알면서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애당초 해수면 30m 높이에 건설해야 할 후쿠시마 원전을 해수면 10m 높이에 건설했고, 긴급용 전원도 원전보다 낮은 곳에 설치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주민의 사고 직후 대피 장소는 정전으로 사용하지도 못했고, 현지 재해대책본부의 전문가는 알고 보니 전문가가 아니었다"며 "사고에 대한 대응이 매우 불충분했다"고 회고했다.사고 발생 후 4년이 지난 후쿠시마 원전 상황에 대해서는 "녹아버린 핵연료는 격납용기 바닥에 고여있고, 오염수는 바다로 유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사고 확대는 저지했지만, 현재까지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의 수가 12만 명에 이르고, 낙농업, 농업은 다시는 할 수 없는 지역이 돼버렸다"면서 "국민의 불행이 지속되고 있는데 큰 책임을 느낀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퇴임 직전인 2012년 7월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전력 회사들이 시장 가격보다 비싼 '고정 가격'으로 사들여 관련 설비의 보급을 유도하는 고정 가격 매수제(FIT)를 도입하는 등 재생 에너지 정책을 시행했던 간 총리는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재생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전 일본 전체 소비 전력의 30%를 공급하던 원전 생산 전기가 현재 0%로 줄어든 상황에서도 국민 생활, 경제 활동에 커다란 지장을 주지 않은 것은 전기사용 방식을 효율적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간 총리는 덴마크, 독일, 스페인 등의 재생 에너지 권장 정책을 설명하면서 재생 에너지 개발을 통해 탈 원전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간 전 총리는 끝으로 "원전 사고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어디에서든 발생하며,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에는 원전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에는 원전을 건설할 장소가 거의 없다"면서 "사고 났을 때 많은 사람이 대피해야 할 곳에는 결코 원전을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 세계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원전 소재 지역의 경제적 측면과 관련해선 '폐로의 경제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간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하루에 6천 명의 노동자가 폐로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면서 "폐로는 대단히 어렵고 장기적인 작업이지만, 일자리를 창출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이 없어지면 고용이 사라지는 걱정을 여러 지역에서 말하고 있다"면서 "원전이 없어지면 가동시키기 위한 작업은 없어 지지만, 폐로를 하기 위한 작업은 지속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간다. 그 길이 지금 취해야 할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사용의 국민 또는 주민의 선택권을 강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선택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었고, 한 주부들의 모임에서는 그 모임에서 송전망까지 확보한 뒤 원전 이외의 전력을 매입해서 사용하는 운동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면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국민이므로, 에너지의 내용을 선택하는 것도 국민, 주민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이 책임지고 선택하는 것으로 국가 정책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며 '전력 사용의 자유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원자력은 값싼 전기? 원자력은 비용이 싸다는 사업자 측의 홍보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나타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사고 발생 전까지는 화석 원료를 이용한 전기보다 원전이 저렴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사고 발행 후 현재까지 6조 엔(한화 60조 원)이 투입된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면서 "현재까지 6조 엔이 투입됐고, 최종적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므로 원전의 비용은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전 생산 비용에는) 사용 후 핵연료 최종 처분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사고 발생시의 비용,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을 포함하면 통상적인 화력 발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고 주장했다.
복수 원전 위험성 높아간 전 총리는 한 곳에 복수의 원전이 존재하는 것은 사고 발생시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당시 원전 책임자였던 요시다 소장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책임자였던 요시다 소장은 원전 사고가 확대됐을 때 한 사람이 복수의 원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의 저서에서 증언한 바 있다"면서 "한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복수의 원전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로 불가능하며, 복수의 원전이 하나의 부지 내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경주 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