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해보니까 내가 미술학원을 너무 자주 가는 것 같아요 .""뭐? 미술학원 다니고 싶다며! 그래서 학원 등록시켜줬는데 이제 가기 싫어?""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너무 자주 가는 것 같다고요.""△△아, 네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 다니게 해줬는데 하는 데 까지는 해봐야지. 하다가 싫증난다고 금방 그만두고 하면 앞으로 뭘 배울 수 있겠어?" 아빠가 만든 개구리, 아들이 만든 개구리아내와 첫째 아이(9살)의 대화다. 요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고자 아이가 원하는 대로 보습학원을 끊고 미술학원에 보낸다. 처음엔 여자아이들이 많아 문 열고 들어가는 것조차 쑥스러워하더니 요즘엔 잘 다닌다. 가끔 가기 싫다는 말도 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고 나름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알고 보니 미술학원에서는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저녁(16일) 첫째가 종이로 뭔가를 열심히 접고 있었다. 아들에게 물어봤다.
"뭐 접는 거야?""개구리요. 선생님이 개구리 접는 법 알려줬어요.""그래? 지난번에 아빠가 개구리 접는 법 알려줬잖아. 그거랑 같은 거 아냐?""아니에요. 달라요."그러더니 이내 개구리를 만들었다.
"근데 △△아, 미술학원에서 종이접기도 해?""예, 종이접기도 하고요 나무랑 종이로 만들기도 해요."미술학원이라고 해서 그림만 그리는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다 가르치나 보다. 공부하느라 스트레스 받고 엄마한테 만날 혼나느니 지금처럼 두뇌 회전도 좀 되고 손놀림도 좋아지는 미술학원에 다니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개구리 접는 것을 보다가 나도 따라서 해봤다. 내가 알던 개구리 접는 방법과는 달랐다. 둘째(7살)도 형이 종이 접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가 싶더니 잘 안되나 보다. 형에게 물어본다.
"형아, 이렇게 접는 거 맞아?""아니, 그렇게 하면 안 돼.""형아 좀 알려주라. 나 못하겠어.""개구리는 아무나 접는 거 아냐. 나도 선생님한테 힘들게 배웠어."듣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났다. 하긴 종이 접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정말 힘들게 배웠을 것이다. 나도 어릴 적 기껏해야 비행기나 배 정도 접어보는 게 전부였으니. 나는 내가 만든 개구리와 첫째가 만든 개구리를 가지런히 놓고 물어봤다.
"애들아, 어떤 개구리가 멋져 보여?""와! 신기해요 아빠가 접은 거요. 아빠 저도 접어주세요. 아빠 거는 뒤를 누르니까 막 튀어나가요 얼른 또 하나 접어주세요."아이들은 내가 접어준 개구리가 더 웃기게 생겼고, 엉덩이 부분을 눌러주면 팔딱팔딱 앞으로 튀어나가니 재밌단다. 난 둘째에게 개구리를 한 마리 더 만들어줬다. 그러더니 둘이서 내가 만들어 준 개구리를 가지고 누가 멀리 뛰나 시합을 한다. 한 십여 분 간 진지하게 시합을 하더니 첫째가 태권도장에서 받은 빨간 띠를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한다.
태권도장에서 받은 빨간 띠 자랑하는 아들!"아빠, 저 이제 빨간 띠예요. 한 번 보실래요?"말을 마치자마자 띠를 허리에 묶는다. 얼마 전 만해도 허리에 묶는 방법을 몰라 대충 둘둘 말더니 이제는 제법 띠 매는 폼이 그럴 듯하다.
"아빠, 이거는요 아까 사범님한테 배운 거예요. 아빠가 옛날에 배웠던 거랑은 달라요. 얼마나 어려운데요."혼자 재잘재잘 대더니 사진을 찍어달란다. 내 참……. 바로 사진 찍을 준비 자세로 들어간다. 배를 너무 내밀고 있기에,
"배 좀 집어넣어라. 배 나온 거 자랑하려고 그러냐?""알았어요. 빨리 찍어줘요."
사진을 찍어주자마자 바로 동생과 함께 안방으로 쏙 들어간다. 또 뭔가 재밌는 거리를 발견했나 보다. 방에서 동생과 장난감 놀이를 하는지 시끌시끌하다.
작년보다 확실히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작년엔 첫째가 수업 끝나면 돌봄 교실에 방과 후 수업을 받다가 보습학원으로 갔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은 머리를 태권도장에 가서 식히고 집에 오면 학교에서 내준 서너 개의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나는 왜 만날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냐'고 투덜댔을까.
숙제도 줄고 보습학원도 안 가니 늘어난 건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가끔 스마트폰에 빠져 아내와 내게 꾸지람 받는 것 외에는 나도 한 시간 반 이상을 아이들과 함께 논다. 태권도 1품 승단 시험 준비하느라 배운 여러 가지 동작들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하고 동생에게 상급 코스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리고 미술학원에서 배운 그림이나 만들기, 종이접기 등을 하며 아빠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둘째도 덩달아 형을 따라 하게 된다. 물론 같이 놀다 금세 싸우고 토라지는 게 일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2학년인 지금엔 태권도장에 갔다가 저녁에 집에 오면, 일기 쓰기 정도와 어쩌다 독후감상문 작성하는 정도 외엔 숙제도 거의 없다. 오히려 1학년 이었던 작년보다 학습량이 더 적어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의 교육방침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아이가 1학년 때와 비교해서 아무래도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얼굴도 밝아지고 여유도 생긴 것 같다. 덕택에 아빠와 어울리는 시간도 많아졌다.
물론 부로모서 선행학습이나 추가 수업을 받지 못하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뒤처질까 염려도 된다. 그러나 아빠인 나는 지금이 좋다. 정규수업에 집중하고 간간이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빠뜨리지 않고, 아이들과 책도 읽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본 학습능력은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는 초등생이지만 영어교육을 위해 방학 동안 해외에 나갔다 오는 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학습 이해도가 높아 우리 아이와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성적이 좋다. 거기에 영어와 수학, 논술 학원을 전전하며 밤이 돼서야 집에 오는 아이들도 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10시나 11시까지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학부모로서 공부 잘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아이가 편한 데로 봐주다가 정작 필요한 시기에 적당한 자극을 주지 못해 나중에 원망을 들을까 고민도 된다. 그래도 아내와 상의하여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방관하지 않고 대화를 많이 하며 아이와 유대관계를 높이고,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백지에서 시작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