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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지붕의 마감재이자 한옥집을 운치있게 해주는 막새기와 혹은 와당.
기와지붕의 마감재이자 한옥집을 운치있게 해주는 막새기와 혹은 와당. ⓒ 김종성

옛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 한옥 지붕에도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꾸밀 줄 아는 세심한 미적 감각을 지녔다. 지붕에 기와를 그냥 얹은 것이 아니라 그림과 기호, 무늬를 넣은 기와로 꾸몄다.

그런 기와를 한자로 와당(瓦當), 우리말로 막새기와, 줄여서 막새라고 부른다. 점토를 원하는 모양으로 틀에서 뜬 다음 구워서 지붕을 덮고 처마 끝을 마감하는 건축자재이기도 하다. 귀족계층이나 양반들만 기와집에서 살 수 있었던 한반도에서 기와는 권위와 부(富)의 상징이었다.

막새기와는 둥그런 모양의 수키와와 평편한 모양의 암키와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수막새, 암막새라고도 부른다. 암키와와 수키와가 지붕 위에 번갈아 얹어져 있는데, 이는 빗물이 기와 골을 따라 흐르게 되면서 눈이나 빗물로 인한 누수를 차단하고 건물에 쓰인 나무가 썩는 것을 막는 중요한 기능을 한단다. 순우리말 특유의 질박함이 느껴지는 '막새'라는 이름은 아마도 지붕의 기와를 막음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이름이지 싶다.

한옥집 지붕의 기와를 막음하는 마감재이며 기와집의 처마 끝을 장식하는 감탄이 나오는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아름다움과 예술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열정, 그 시대의 미적 감각과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국인 누구에게나 눈에 익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가 유명하다.

예술로 분한 막새기와들의 보물창고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신라시대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신라시대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국립경주박물관

이 흥미로운 고대의 생활용품이자 예술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곳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유금 와당 박물관이다. (유금은 관장님과 부인의 성에서 각각 따온 이름) 요즘 걷고 싶은 동네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암동에는 카페도 많이 들어섰지만, 구석구석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알차게 자리하고 있다.

유금 와당박물관은 부암동의 한적한 골목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소나무로 잘 꾸며진 작은 정원과 귀여운 새들이 지저귀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런 주택가 골목에 와당이라고 하는 옛 선인들의 문화와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니 보물 탐험하러 가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2008년에 개관한 '유금 와당박물관'은 글자 그대로 와당(瓦當) 즉 막새기와 전문박물관이다. 고대 중국, 일본, 한국의 동아시아 와당 3000여 점, 중국 토용 토기 1300여 점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나이 지긋한 관장이 젊은 시절부터 30여 년간 와당을 수집해온 긴 여정이 맺은 결실이라고 한다.

검사라는 독특한 이력의 관장은 젊은 시절 '와당 검사', '기와 박사'로 불릴 만큼 단순한 수집 취미를 넘어 와당의 문양과 생김을 통해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교류의 흔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81년 <중원 탑평리 출토 육엽 연화문 수막새>라는 논문을 썼고 2009년에는 와당 연구를 집대성한 책 <동아시아 와당 문화>를 출간했다.

유창종 관장은 1987년 일본인 의사로 평생을 한국의 기와와 벽돌을 수집하고 연구한 이우치 이사오(1911~1992)씨가 한국의 국립박물관에 자신이 소장한 기와와 벽돌 1082점을 기증한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25년간 수집한 귀한 보물들을 국립박물관에 모두 내놓았다. 그 후 고인이 된 이우치 이사오 선생의 아들이 남은 유물 1301점을 유 관장이 운영하는 유금 와당박물관에 다시 기증하게 되는 흐뭇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 막새기와 박사를 파견했던 백제

 양각이 굵고 힘찬 고구려 막새기와, 도깨비 얼굴의 귀면기와가 인상적이다.
양각이 굵고 힘찬 고구려 막새기와, 도깨비 얼굴의 귀면기와가 인상적이다. ⓒ 유금와당 박물관 누리집

기와로 지붕을 덮는 일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일본·태국·베트남 등동아시아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축 마감재요 장식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엔 삼국시대 건물터에서 비로소 막새기와가 발견되고 있다.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 시대별로 특징이 있는 막새들이 발굴되었다.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당 문화를 전하는 와박사(瓦博士)를 파견해 사찰인 비조사(飛鳥寺)와 사천왕사의 기와를 제작할 정도로 건축과 기와제작기술이 삼국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단다.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인해 백제나 신라보다 기와를 먼저 만든 고구려의 막새들에선 역시나 투박하고 강한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모양의 기와가 제작되었는데 이 중 반원 모양의 막새는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유행했던 것으로 고구려에서도 제작된 특이한 막새라고 한다.

백제기와의 문양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연화문(連花文)이 특징으로, 기와에 새겨진 연꽃잎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되어 한층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을 자아냈다. 백제의 막새는 고신라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아스카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깊은 불심을 나타내는 백제의 우아한 연꽃무늬 수막새.
깊은 불심을 나타내는 백제의 우아한 연꽃무늬 수막새. ⓒ 유금와당 박물관 누리집

 옥빛 청자로 만든 고려 시대의 수막새와 암막새 기와.
옥빛 청자로 만든 고려 시대의 수막새와 암막새 기와. ⓒ 문화재청 누리집

기와 문화는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꽃을 피우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던 암막새기와도 다량 제작되었고, 전돌 등이 새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궁전과 사원 등을 새로 지으면서 기와 제작이 국가적 차원으로 급속히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경주의 왕궁터 월성과 안압지에는 수많은 막새기와가 출토되었다.

고려 시대엔 막새기와도 청자로 만들었다. 왕궁터인 개성의 만월대에서 출토된 은은한 옥빛이 감도는 화려한 청자 수막새, 암막새 기와들은 국립박물관으로 기증해서 아쉽게 사진으로만 감상했다. 암막새에는 넝쿨무늬를, 수막새에 새겨진 꽃이 참 풍성하고 탐스럽다 했더니 부귀화, 화왕(花王)라 불리는 모란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 기와의 수요가 가장 많은 사원이 억불숭유정책으로 폐쇄됨에 따라 발전을 이루지 못했고, 장식성보다는 기능성이 강조되면서 막새기와의 화려함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한 눈에 봐도 문양의 정교함이나 아름다움이 전반적으로 퇴보, 약화되는 듯 보였다. 막새기와에는 이렇게 각 지역과 시대에 따라 독특한 문양과 다양한 제작 기법을 나타내고 있어, 시대에 따른 미술사 연구의 대상 뿐 아니라 문화 교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한옥집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막새기와

 장식성과 화려함이 점차 사라진 조선 시대의 막새기와.
장식성과 화려함이 점차 사라진 조선 시대의 막새기와. ⓒ 문화재청 누리집

막새기와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고구려 시대의 귀면(鬼面)기와다. 우리나라의 옛 귀신인 도깨비 얼굴이 새겨져 있어서다. 따로 설명글을 보지 않아도 집 지붕에 도깨비 얼굴의 기와를 올려놓아 잡귀를 막고자 했던 바람이 느껴졌다. 도깨비 문양이 마치 대륙을 달리던 용맹한 고구려 장수마냥 양감이 굵고 힘차다. 아니나 다를까 와당 박물관이 아끼는 1호 보물이란다.  

천 년의 시간을 훌쩍 넘은 막새기와들과 마주하니 아히 먼 옛 사람들의 손길과 숨결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글씨와 다양한 문양으로 멋을 낸 막새기와엔 그 시대의 문화와 미학, 복을 비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깊은 불심을 나타내는 여러 무늬의 연꽃이 그려진 삼국시대의 막새, 잡귀를 물리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험악한 표정의 도깨비가 그려진 고구려의 막새,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진 신묘한 모양의 와당, 용 같은 상상속의 동물들이 세밀하게 그려진 중국의 와당 등···.

아주 오래된 옛날 옛적이었지만 예술적인 감각과 그 솜씨는 현대의 작가들 못지않아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고구려 문화의 웅장함, 백제 문화의 격조 높음, 신라 문화의 화려함을 기와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안내판 글에 공감이 갔다. 

 고대 중국의 기와와 도용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기와와 도용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 유금와당 박물관 누리집

서울 북촌 한옥마을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가회동 31번지 언덕 위에서 보았던 기와지붕이 떠올랐다. 신명난 어르신들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매끈한 곡선미가 인상적이었던 한옥 기와지붕. 정답게 붙어 있는 암키와와 수키와, 기와 끝 부분을 깔끔하고 아름답게 마감하는 막새기와가 모여 그런 느낌 있는 한옥 풍경을 만들어 냈구나 싶었다. 이젠 운치 있는 기와지붕도 한옥마을이나 궁궐에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것이 돼 아쉽다.

현재 와당 박물관에서는 '중국 燕(연) 기와'전과 '중국 唐(당) 도용'전도 함께 열리고 있다. '중국 연 기와'전은 기원전 770년에서 220년까지 이어졌던 연나라의 기와 76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중국의 제1차 와당전성시기인 전국시대(戰國時代) 중에서 연나라 기와를 통해 당시의 예술성과 대륙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다. '중국 당 도용'전에서는 중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문화 융성기를 누렸던 당(618~907)의 이채로운 도용 1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도용(陶俑)은 흙을 빚어 만든 인형으로 고대에는 주로 주술과 상징적인 의미로 만들어오다 후에는 부장품으로도 사용되었다. 풍만한 여인의 유려한 도용, 개방적이었던 당나라의 시대의 흑인 모습 도용, 북방이나 서방에서 온 이민족인 호인(胡人) 도용 등은 역사책이 담을 수 없는 생생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박물관 방문 전날 미리 예약 전화를 하면 직원의 안내와 함께 막새기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문화관광체육부의 '문화가 있는 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3월 20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박물관 위치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302-5
ㅇ 개관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 (일요일, 월요일 휴관)
ㅇ 입장료 :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ㅇ 문의 : 02) 394-3451 (http://www.yoogeum.org)
ㅇ 문체부 ‘문화가 있는 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무료관람



#유금와당 박물관#막새#기와#와당#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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