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물가는 비싸다. 날씨도, 공기도 좋지 않다. 사람이 생활하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런던에 대해 품고 있는 선입견이다. 거기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발상지, 영국이라는 국가 이미지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내내 시달려온 피해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편견을 감출 수 없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면서 정작 축구실력이 시원치 않은 점도 못 마땅하다.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국가임에도 '대영제국'에 대해서는 그리 호감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굳이 이번 유럽 여행의 동선에 영국은 끼워넣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섬나라 신세나 마찬가지인 한국을 벗어나면서 굳이 또 갑갑한 섬나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급적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 자유롭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유럽대륙의 호연지기를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숙고 끝에 런던을 첫 번째 여행지로 정했다. 한 번쯤은 가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 영국박물관, 내셔널갤러리가 있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 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던 영국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이고, 내셔널갤러리는 영국 최대의 미술관이다. 무엇보다 그 두 곳을 비롯해 런던의 대다수 박물관, 미술관 구경이 공짜라는 고급정보는 매력적이었다.
거듭 강조하자면, 이번 유럽 여행의 기본콘셉트는 '소요유(逍遙遊)'이다. '소요유'란 <장자>에 나오는 개념으로. '마음 가는 대로 유유자적하며 노닐 듯 살아감'을 뜻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유럽의 잘 보전된 역사와 문화를, 마치 유럽인처럼 '유유자적하며 노닐듯' 목격하고 체험하려는 게 여행의 주목적이다.
그러자면 그 나라의 박물관, 미술관부터 우선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럽인들의 전통, 관습, 일상생활이 진하게 묻어있는 공원, 광장, 시장, 골목, 고택, 대중교통, 선술집(Pub) 등을 잇는 동선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묘책'런던의 물가, 생활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현 정부의 차관이 런던에서 못 살겠다며 사표를 내고 낙향을 했겠는가. 그 차관의 연봉은 한화로 2억 원이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런던 시내에서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이 넘는 주택 월세를 감당하지 못했다. 평당 7억 원이 넘는 주택도 흔하다고 한다. 가히 살인적인 물가다.
나도 첫날부터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호되게 체험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로부터 살인을 당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조심했으나 소용없었다. 런던의 첫날밤 저녁식사가 문제였다. 그 가격에 그렇게 작은 방 크기를 보니 4성급 켄싱턴 클로즈(Kensington Close) 호텔의 석식은 아무래도 비쌀 게 뻔했다. 조심스레 호텔 뒷문을 빠져나왔다. 어두운 하이스트릿 켄싱턴 거리에서 정처없이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만만해보이는 식당은 잘 보이지 않았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고급 레스토랑만 눈에 들어왔다. 테이크 어웨이 스시바가 만만해보였으나 내키지 않았다. 유럽에 왔으니 유럽 음식을 먹어야지, 그것도 유럽에서 첫 만찬이니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춰서. 마침 전철역 상가 안에 다소 허름해보이는 작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적당한 곳인지 확신은 들지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날은 어두웠다.
불안하고 불편한 심정으로 레시피를 잘 이해할 수 없는 메뉴판을 살펴보다 가장 단순해보이는 음식을 시켰다. 유럽의 식당에서는 먹는 물도 돈을 받으니 하우스 와인 두 잔도 물 대신 시키고. 그 단순한 레시피의 음식은 홍합요리였다. 다 먹고 계산서를 받아들고 영국의 식당을 잘 모르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후회했다. 도합 45파운드가 나왔다. 한국 돈으로 7만7000원 정도. 서비스요금 12.5%까지 따라 붙었다.
한국에선 그 돈이면 고급부페를 갈 수 있었을 텐데. 먹고 나니 배는 더 고팠다. 심지어 아프기까지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식당은 그리 만만한 식당이 아니었다. 런던의 유명한 맛집이라는 빌스(Bill's)카페의 체인점 가운데 하나였다. 다시는 그 근처를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런던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외국 유학생들도 학비만큼 생활비가 더 들어가니 각오하고 가야한다는 런던이다. 택시를 자칫 잘못타면 하루 일당이 날아간다는 런던이다. 그런데 런던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런던시민들, 그러니까 '런더너(Londoner)'이 살아가는 묘책은 따로 있었다. 런던 시민들은 런던에 살지 않는다고 한다.
런던에서 일하는 '런더너(Londoner)'들은 대부분 런던 교외에 산다. 런던으로 전철(Undergronnd)를 타고 1시간여 출퇴근한다. 서울 직장인들이 부천에서, 고양에서, 성남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식이다. 월급의 몇 배인 런던 시내의 주택 월세를 월급쟁이들이 감당할 수 없다.
런던은 일하는 직장이 있는 곳일 뿐 생활의 터전은 될 수 없는 구조다. 런던의 상점, 식당, 택시를 주로 이용하는 고객은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한다. 아마도 현명하고 합리적인 런더너들은 한국 아름다운가게의 벤치마킹 모델이 된 재활용품 가게 옥스팜(OXFAM) 같은 가게를 이용할 것이다. 이제 런던의 부동산도 외국인들의 손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역시 자본주의의 고향, 영국의 수도답다.
그런데 현지인들조차 정주하지 못할 정도로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는 런던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꾸 찾아오나.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빈국에서 온 이방인들은 아예 눌러앉아 공부를 하거나 이민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렇다면 런던에는 물가의 불편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한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게 아닌가. 여행객 입장에서 보자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이유에서 런던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에서 비싼 물가를 보상받다개인적으로는 영국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단 두 곳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런던의 매력은 충분했다. 비싼 호텔비와 저녁 밥값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선 세계 3대 박물관인 영국박물관, 영국 최대 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는 모두 공짜다. 런던 시내의 대다수 박물관, 미술관은 공짜다.
만일 한국에서 영국박물관이나 내셔널갤러리의 값진 세계적 문화재, 명화들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할까. 내셔널갤러리에만 명화가 2300점이 넘는다. 한국 특별전시회에는 그림 몇 점 달랑 걸어놓고 수만 원씩 입장료를 받지 않나. 현실적으로 아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니 값을 따지는 시도 자체는 부질없는 짓이다. 차마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이렇게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나라는 영국 말고는 없다고 한다. 박물관, 미술관 뿐이 아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보상받을 방법은 또 있다. 영국박물관을 나와 내셔널갤러리를 찾아가려면 자연스레 런던 웨스트엔드를 지나게 된다. 영국의 브로드웨이로 불리는 공연예술의 성지다.
피카딜리 서커스 거리, 코베트 가든 거리마다 세계적인 오리지널 뮤지컬을 공연하는 극장이 즐비하다.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라이온 킹, 미스 사이공 등이 이곳에서 초연돼 세계로 퍼져나갔다. 연중 상시 공연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는 가격의 반의 반 값 정도면 볼 수 있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한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 정도 밖에 허락되지 않아 공연 관람은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세계적 명작이 초연된 고색창연한 극장건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공연광고 간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공연의 감동을, 런던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영국박물관은 우주 같았고 내셔널갤러리는 바다 같았다. 영국박물관은 영국의 흑역사다. 지난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호전적인 선조들의 전리품이다. 이집트, 그리스, 앗시리아,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의 전시장이다. 영국박물관에 정작 영국의 문화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박물관은 입장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 입구에서 자발적인 기부금만 받고 있다. 자국 물품이 일정 수 이상이 안 되면 입장료를 받을 수 없다는 국제박물관헌장 규정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연을 듣고 외침과 수탈의 역사에 찌든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마음도 따라 아팠다.
영국 국립미술관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는 명화의 전당이다. 르느와르, 클림트, 모네와 마네, 고호와 고갱, 터너, 쇠라, 루벤스, 루소, 루벤스, 홀바인 등 학교 미술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대가들의 명작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데 모여있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지만 고호의 해바라기를 보고, 홀바인의 대사들을 보고, 모네의 수련을 보고 홀린듯 사진을 몇 장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60여개의 전시실에. 축구장 6개 넓이다. 그만큼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의 시공간은 우주나 바다처럼 넓고 깊다.
일단 그 무지막지한 규모와 깊이에 나는 입구부터 이미 질려있었다 주눅이 잔뜩 들었다. 딱 아는 만큼만 보였다. 그러니 결국 많이 보이지 않았다. 도슨트의 안내나, 오디오 도우미도 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작정하고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날을 잡아 돌아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럼에도 통풍으로 발까지 절뚝이며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의 회랑을 바삐 돌아다녔다. 내셔널 갤러리는 두 번이나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갔던 방을 또 들어가는 등 예술에 홀려 미로를 자꾸 헤맸다. 명화의 신들에 치여 내내 술 취한 듯 비틀거렸다. 결국 1백만분의 1밖에 구경하지 못했다.
그날 런던에서 나는, 영국박물관을 거쳐 내셔널갤러리를 빠져나와 석양이 지는 트라팔가 광장 한켠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프랑스의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환청이 들렸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