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눈에는 배꼬리가 바다에 떠 있다/그 배 안에서 숨소리가 들리고/그 바다는 여전히 몸부림을 친다/ … 우리는 416 그날을 기억하며 기다린다."김유철 시인이 쓴 '세월호 연작시'의 한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만 그런 게 아니다. 숨을 쉬는 국민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난 1년 내내 세월호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김 시인의 연작시는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해 놓았다. 김 시인은 아이들한테 '미안하다'고, '보고싶다'고, '꿈에라도 돌아오라'고, '그날을 기억하며 기다린다'고 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인 김유철 시인은 경남민예총 부회장으로 있다. 시집 <그대였나요> <천개의 바람>과 포토에세이 <그림자 숨소리>를 펴냈다. 김유철 시인이 신작시 '세월, 그 노란바다에서(-416. 1년)'을 포함해 그동안 쓴 세월호 연작시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는다.
큰사진보기
|
▲ 흐린 날씨 속 진행되는 수색작업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인 지난해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아직 향을 피우지 못하며(416. 사흘 후)아이들아, 춥지?나와야 한다 철문을 열고, 제발, 나와야 한다엄마 아빠와 함께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이 기다리는학교로 돌아가 다시 떠들어야 한다아이들아, 외롭지?나와야 한다 철문을 열고, 제발, 나와야 한다소리 내어 흐르는 강가에서흐드러진 꽃들이며연둣빛이 돋아난 나무들 사이로들어가 실컷 다시 돌아다녀야 한다아이들아, 무섭지?나와야 한다 철문을 열고, 제발, 나와야 한다수능이 아무리 힘들고야자가 아무리 괴롭히고0교시가 아무리 너희의 마음을 짓눌러도소란스럽던 우리들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잠시 지나가는 우리들의 시련일거야어딘가 잘못된 어른들의 잘못일거야어둠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오듯이누군가 너희들이 있는 철문을 열고 불빛을 곧 비출거야조금만, 조금만 더 엄마 얼굴 기억하며 기다려야 한다미안하다, 아이들아, 그저 미안하다안개 속에서 출발한 일도,기다리라는 방송만 반복한 일도,한없이 늦어지기만 하는 구조대의 출발도그저 미안하다아이들아, 네모난 흑백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안 돼차마 초를 켜지 못하고아직 향을 피우지 못하는 아빠를 생각해서라도결코 누워서는 안 돼아이들아, 철문을 열고 나와라. 어서.동백, 맹골수도에 피다(416. 100일 후)한 송이한 송이 꽃이 되어바다 속 동백꽃이 되었습니다모진 바람에 씻기어도거센 풍랑이 몰아쳐도붉은 동백은 피어나듯 임들은 그렇게바다 속 동백꽃이 되었습니다떨어져서 피는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통째로 떨어져서 슬픈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한 송이 꽃 속에 온 생명이 담겨 있듯보고싶다는 외마디 속에 짧았던 인연 온 마음을 담습니다맹골수도를 동백밭으로 만든 임들부디,부디,안녕금요일엔 돌아오렴(416. 300일 후)하늘의 별이 된 그대이지만오늘도 맹골수도 그 노란바다를 바라보며 그대의 이름을 불러봅니다화요일 수학여행 가방을 챙기고 떠난 그대안개 짙은 인천항에서 전화를 했었지요엄마, 다녀올게요아빠, 술 먹지 말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언니, 기념품 뭐 사다줄까 ㅎㅎ그렇게 그대는 떠나서 여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해맑던 얼굴과 목소리가 사라진 채우린 노란바다에서 목 놓아 그댈 부릅니다어떻게 하면 그댈 만날까삼보일배로 땅바닥을 기어서 갔습니다철통같은 방패 가랑이 사이로도 들어가 보았습니다숱한 날을 굶으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갖은 비난과 손가락질에서도 애써 초연함 잃지 않았습니다그래도 그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하늘의 별이 된 그대여노란바다 붉은 꽃이 된 그대여 금요일에 돌아온다던 그대여그대에게 내 새끼손가락을 내어 약속드립니다팽목항, 진도체육관, 안산분향소, 광화문, 국회, 청와대가 다 사라져도그대가 어느 날 왜 하늘의 별이 되었는지 우리는 밝힐 것입니다그러니 그대여, 별이며 꽃이신 그대여꿈에라도꿈에라도이번 금요일에는 돌아오렴꼭. 꼭. 꼭.세월, 그 노란바다에서(-416. 1년)아직 내 눈에는 배꼬리가 바다에 떠 있다그 배 안에서 숨소리가 들리고그 바다는 여전히 몸부림을 친다데려가라고, 이 아이들 너희가 데려가라고그 하늘에 별이 박혀있다사흘이 지나도록 너희는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다백일이 지나도록 너희의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삼백일이 지나도록 너희는 아이들을 달래주지 않았다일 년이 다가와도 너희의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그 하늘에 오늘도 별이 박혀있다세월이 가라앉은 그 노란바다삼백예순닷새 열두 달이 지나는 동안무거운 침묵과 한없는 설움과 더할 수 없는 노여움으로하루 네 번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맹골수도가 목을 놓는다사람들아 사람들아다시 피는 꽃그 꽃을 먼빛으로 바라본다하늘에 박힌 별들이 땅으로 돌아와 다시 꽃으로 피어나기를우리는 416 그날을 기억하며 기다린다사람들아, 마음을 돌이켜라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사람이 우선인 세상평화가 먼저인 세상생명이 전부인 세상그 세상이 열리는 날그 날이 지금여기에 펼쳐지는 날세월호 희생자 삼백네 명이 돌아오리니다시는 노란바다에 억울한 죽음으로 울지 않으리하늘이시어 우릴 도우소서하늘이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