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부산지방경찰청 앞. 윤철면(45)씨가 등산복 차림의 옷을 벗었다. 속옷 차림이 된 윤씨가 어깨에 멘 가방에서 꺼낸 전단을 허공에 뿌리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내놔'라는 붉은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국민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대통령 자격 없다'란 문구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 (The strongmans's daughter)이라고 표현한 2012년 <타임>의 표지 사진도 전단에 실렸다. 그 밑으로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의 대선개입, 청와대 비선 실세 논란, 공안몰이, 서민 증세 및 부자 감세 정책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모두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1일 광주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전단이다. (관련기사:
"국민 섬기지 않는 대통령" 광주서 또 전단 살포)
이날 윤씨가 준비한 전단 300여 장 중 100장 가량이 경찰청 바닥에 떨어지자 경찰의 무전 이 다급해졌다. 윤씨가 속옷을 일부 내려 엉덩이를 보이자 "체포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의경 2명이 양쪽에서 윤씨의 팔을 휘어감았다. 전단을 뿌린 지 10분도 되지 않아 윤씨는 경찰청 앞에서 체포됐다.
한쪽에서 윤씨가 붙잡혀 있는 동안 다른쪽에서는 수십 명의 경찰이 바닥에 뿌려진 전단지 수거에 들어갔다. 윤씨는 "내가 직접 줍겠다"고 말했지만 주변에 있던 경찰관들까지 나서 전단을 주웠다. 경찰이 윤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위반(광고물 등 무단배포)이었다. 과잉대응이 아니냐는 윤씨의 항의가 이어졌다.
"억울하다. 경찰의 과잉 수사를 풍자하고자 '다 털어보라'는 의미에서 속옷 차림 퍼포먼스를 한 것인데 사전에 예고했음에도 잡아가는 건 뭐 때문인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공연 심의기관도 아니면서 음란성이 있다고 현행범으로 잡아가는 모양인데 경찰이 이런 자의적 잣대를 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가."경찰이 적용한 주요 혐의인 공연음란죄는 형법상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를 처벌 대상으로 한다. 통상 '바바리맨'과 같이 성기를 드러낸 채 음란한 행위를 한 성범죄자가 이에 해당한다.
경찰은 "애매모호한 법 적용으로 체포를 하면 되는가"라고 따지는 윤씨에게 "일단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자"며 차에 태웠다. 윤씨는 연제경찰서 지능팀에서 수사를 받게 됐다. 경찰은 "윤씨가 퍼포먼스라고 주장하지만 전단 살포는 경범죄 처벌 대상"이라며 "공연음란 역시 윤씨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지만 일단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윤씨는 지난 2월 부산의 번화가와 시청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당시 압수수색까지 실시한 경찰의 수사를 놓고 과잉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고, 윤씨는 오는 7일까지 경찰청 앞에서 경찰 수사에 항의하는 집회신고를 내놓은 상태였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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