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입니다. 한국은행 기준 금리가 1%대로 내려가면서 물가를 감안하면 저축할수록 손해인 시대입니다. 저금리로 혼란을 겪고 있는 금융권 실태를 짚어보고 금융 소비자로서 '저금리 시대'를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저금리 덕에 대박이 난 안심전환대출의 허와 실을 짚은 1편에 이어 이번엔 저금리 덕에 '미운오리새끼'에서 '서민 재테크' 상품으로 거듭난 재형저축의 인생 역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요즘 금리가 2% 정도인데... 저도 올해 재형저축 가입했어요."지난 1일 아침 서울 광화문에 있는 시중은행 지점에 만난 직원이 살짝 귀띔했다. 금융 상품에 누구보다 밝을 은행 직원이 3년 만에 재형저축에 가입한 이유는 3년만 유지해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민형 상품'이 나온 탓도 있지만 최근 저금리 영향이 컸다.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가 2%대로 떨어진 지금 3~4%대 금리를 3~7년간 보장하는 재형저축은 더 이상 '미운오리새끼'가 아니었다.
'미운오리새끼' 재형저축, '최고 금리' 상품으로1970, 1980년대 서민·중산층의 '재산 형성' 수단이었던 재형저축이 박근혜 정부 들어 부활했지만 박정희 시대만큼의 인기를 끌진 못했다. 18년 만인 지난 2013년 3월 출시 당시만 해도 금융회사의 우대금리 마케팅에 힘입어 한때 180만 계좌까지 모였지만 이후 계속 줄어 올해 2월 말 현재 150만 계좌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간 급여 5천만 원 이하 직장인 등 대상자를 제한한 데다, 7년 동안 유지해야 이자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탓에 미래가 불투명한 서민들조차 가입을 꺼렸기 때문이다. 3년간 최대 연 4.2~4.6% 고정 금리를 보장했지만 이후에는 매년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데다, 당시 1년 적금 금리도 연 3~4%대 수준이던 시절이라 큰 이점이 없었다. 결국 은행권에서도 그해 7월 연 3.2~3.5%대로 금리를 낮추는 대신 7년간 고정금리를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았지만 하락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3%에 육박하던 시장 금리(국고채 3년 만기)가 2% 초반대로 떨어진 지난해 말 이후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재형저축 계좌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긴 하지만 해지율이 점차 낮아지는 반면 전체 납입금액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매달 집계하고 있는 재형저축 계좌수 변동 추이를 보면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매달 1만~2만 명을 웃돌던 계좌 수 감소폭이 수천 계좌대로 줄었다. 신규 가입이 늘어난 반면 해지자 수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재형저축 납입금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재형저축 납입금액은 지난 2013년 6월 말 7591억 원 정도였지만 그해 12월 말 1조 9천억 원을 넘었고 지난해 9월 말엔 3조 5천억 원에 달했다. 불과 9개월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로 내리고 시중은행에서 2%대 예적금 상품이 눈에 띄게 줄면서, 재형저축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재형저축 신규 가입은 1000~1500계좌인 반면 해지가 4천~5천 계좌 정도로 2~3배 높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해지가 3천 계좌대로 줄어든 반면 신규가 2천~3천 계좌로 늘면서 격차가 수백 계좌 내외로 줄었다.
때마침 은행권에선 지난달 30일 3년만 유지해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민형 재형저축'을 선보였다. 대상자는 일반형의 절반인 연간 총 급여 2500만 원 이하 직장인(소득형)이나 29세 이하 중소기업 고졸 이하 직원(청년형)으로 제한했다. 금리도 일반형과 동일하지만 7년 유지에 부담을 느꼈던 저소득층, 청년 직장인에겐 큰 이점이다.
일반형 가입자 역시 비과세 혜택을 포기하더라도 3년짜리 고금리 적금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3년간 연 4.2~4.6% 고정금리가 적용되는 '혼합형'의 경우 현재 2~3% 정도인 시중은행 3년제 정기적금 금리와 비교해서도 1~2%포인트 가량 높다. 저축은행에서 상대적으로 3% 후반에서 4% 초반대 고금리 적금을 내놓고 있지만 이조차 재형저축에는 미치지 못한다.
현재 '월복리'를 적용하는 저축은행의 3년 적금 최고 금리는 연 4.3%. 여기에 매달 100만 원씩 3년을 넣으면 세후 이자가 210만 원 정도다. 이는 연 4.5% 재형저축에 3년간 불입하고 받는 세후 이자 211만 원에 조금 못 미친다. 3년 뒤에도 비과세가 적용되는 서민형 재형저축 대상자라면 이보다 35만 원 더 많은 245만 원(농어촌 특별세 1.4% 제외)을 받을 수 있다.
올해 말까지 가입 안 하면 '손해'... 박근혜 '금리 인하' 반사 이익다만 재형 저축도 올해 12월 말까지만 가입할 수 있는 한시상품이다. 내년부터는 신규 가입은 물론 한도 변경도 제한된다. 따라서 당장 저축할 여유가 없더라도 가입 자격만 된다면 재형저축 통장을 미리 만들어두는 게 좋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가입자 1명이 분기당 300만 원(연간 1200만 원)까지 금액 제한 없이 자유롭게 저금할 수 있고 계좌 수에도 제한이 없다.
재형저축 가입자들 사이에선 7년 유지 부담을 해소하려고 재형저축 통장을 여러 은행, 여러 계좌로 분산시키는 이른바 '통장 쪼개기'가 성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3년 뒤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과 7년간 고정금리가 유지되는 '고정형'을 같이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처음 3년은 금리가 1%포인트 정도 더 높은 혼합형 비중을 높였다가 3년 뒤 고정형보다 금리가 더 떨어지면 고정형 비중을 더 높이는 식으로 이자 액수를 더 높일 수 있다. 통장이 많을수록 관리가 불편하지만 돈이 급하게 필요해 일부 해지하더라도 나머지 통장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박준범 전국은행연합회 수신제도부 과장은 "재형저축 계좌수가 정체인 건 가입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초기에 대부분 가입했고 7년 동안 계속 유지해야 해 해지율이 높기 때문"이라면서 "서민형 재형저축 출시를 계기로 직장 초년생들의 관심이 커지면 가입자가 다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재형저축이 '최고 금리' 적금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건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의 기준금리 인하 덕이다. '저금리 시대'를 애초부터 염두에 뒀든 두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만든 재형저축을 스스로 되살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