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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3개월 된 일소가 힘차게 쟁기를 끌고 있다.
 올해로 13개월 된 일소가 힘차게 쟁기를 끌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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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 저쪄쪄저~ 워어."

소몰이 소리가 한적한 시골마을의 나른한 한낮을 깨운다. 청명이 코앞이니 본격적인 농사철이다. 구불져 사래 긴 밭둑에 광대나물과 연초록 어린 쑥이 고개를 내미는데 우마차를 끌고 온 일소가 가쁜 숨을 토하며 멈춰선다.

충남 예산군 응봉면 주령리에 사는 올해 나이 80세의 임경길, 박정순(79) 부부. 집에서 밭까지 1㎞ 남짓되는 길을 할아버지는 고삐를 잡고 할머니는 마차 위에 앉아 꼬소름을 타고 왔다.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우마차에 쟁기와 농기구를 싣고 할머니를 태우고 밭으로 들어서고 있다.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우마차에 쟁기와 농기구를 싣고 할머니를 태우고 밭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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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자가용인 신식 우마차가 할머니를 태우고 고추밭 머리로 들어오고 있다.
 노부부의 자가용인 신식 우마차가 할머니를 태우고 고추밭 머리로 들어오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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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차는 옛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직접 손수레를 개조해 조그맣게 만든 신식이다. 함석으로 만든 깃발과 바람개비도 달린, 큰 길 좁은 길 못 가는 곳이 없는 노부부의 자가용이란다.

오늘은 고추밭을 갈러 나왔다. 큰 논 한쪽 구탱이에 있는 길다란 고추밭은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들어설 수 없다. 소가 아직 어려 일을 배운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할머니가 고삐를 잡아 줘야 한다.

"우리 밭이 죄다 뙈기밭이여. 소 없이는 일을 해먹을 수가 없어. 난 어려서부터 마차 끌고 소쟁기질을 해봐서 아직도 이게 최고여."

할아버지가 소에 쟁기를 걸기 위해 굴아를 매고 있다.
 할아버지가 소에 쟁기를 걸기 위해 굴아를 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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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멍에를 얹고 마차에서 쟁기를 내려 거는 동안 소는 제 할 일을 훤히 아는지 큰 눈망울을 껌벅이며 얌전히 서 있다.

"이랴 쪄쪄쪄저."

올해 처음 쟁기질을 하는지라 할머니가 고삐를 잡아 줘야 한다.
 올해 처음 쟁기질을 하는지라 할머니가 고삐를 잡아 줘야 한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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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쟁기를 비스듬이 땅에 박고 천천히 소를 몰자, 보습이 지나는 밭자리마다 메마른 겉흙이 솟구쳤다가 한쪽으로 엎어지며 촉촉한 속살이 드러난다. 뭉근하게 풍기는 흙내음이 참 좋다.

"이랴 쪄저쪄저~ 그려~ 어이 참 일 잘한다. 정말 잘하네."

소목에 달린 워낭소리가 딸랑딸랑 울리며 봄마중을 나간다. 할아버지는 소몰이 끝마디에 '잘한다'는 칭찬을 두세번씩 영락없이 챙긴다. 천방지축 목매기 송아지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놓은 비법이 아마도 저 칭찬이 아닐까 싶다.

세고랑을 간 뒤 할아버지가 숨이 가쁘다며 앉아서 쉬고 있다.
 세고랑을 간 뒤 할아버지가 숨이 가쁘다며 앉아서 쉬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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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타기 편하게 손수 만든 신식 우마차는 노부부의 자가용이다.
 할머니가 타기 편하게 손수 만든 신식 우마차는 노부부의 자가용이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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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 뱃속에서 떨어진 지 열세 달 밖에 지나지 않았어. 아직 언내여. 겨우내 마차 끄는 일 가르치느라 애먹었지. 소 부리는 게 결코 쉬운 일 아녀. 아무나 못허지."

오랫동안 부리던 큰 소가 새끼를 낳고 바로 병이나 보냈고, 지금 쟁기질을 배우는 녀석이 제 어미의 뒤를 이어 일소가 됐단다. 담배 한 대를 맛나게 피운 할아버지는 나머지 밭고랑에 다시 쟁기를 박는다.

"이려 쪄저쪄~ 인자 다했다. 한 번만 더 갔다오자. 그렇지, 그렇지. 참 잘한다~"

젊은 소는 힘이 솟아 지친 기색도 없는데, 쟁기를 잡은 농부의 숨이 가쁘다. "허허, 쟁기를 끄는 소도 있는데 사람이 어려우니 나도 인저 다 됐다"고 한탄을 하면서도 어린소가 힘들까봐 살피는 할아버지의 눈길이 봄볕만큼이나 따사롭다.

트랙터가 쟁기질을 하고 내빼는 닷말 가웃지기 옆집 논에 비하면 할아버지의 뙈기밭은 일소 덕분에 심심치 않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해서 그이의 힘찬 소몰이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소쟁기, #소몰이, #워낭소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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