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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평등한 선거를 통해서 뽑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평등선거란 1인 1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인 1표는 형식적 평등입니다. 1인 1표 이외에 1표 1가치 원칙이 달성되어야 실질적 평등이 됩니다. 우리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평등선거의 원칙은 평등의 원칙이 선거제도에 적용된 것으로서 투표의 수적 평등, 즉 1인 1표의 원칙(one person, one vote)과 투표의 성과가치의 평등, 즉 1표의 투표 가치가 대표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정도에 있어서도 평등하여야 한다는 원칙(one vote, one value)을 그 내용으로 할 뿐만 아니라..."(2001. 10. 25. 2000헌마92 등)

여기서 성과가치란 "투표가치가 대표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정도"를 의미하는데 보통은 어떤 정당의 의석비율을 득표율로 나눈 값으로 측정합니다. 모든 정당의 지지자들에 대하여 이 값이 1에 가까우면 평등선거이고, 1에서 많이 벗어나면 불평등 선거입니다. 헌재는 성과가치 기준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습니다.

다음의 표는 우리나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성과가치입니다.

<표1>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성과가치.
 <표1>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성과가치.
ⓒ 혁신더하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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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의 성과가치는 1(기준)에서 15% 정도 벗어납니다.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 지지자들의 성과가치는 무려 50% 정도 벗어납니다. 매우 불평등한 선거입니다.

독일의 경우와 비교해 봅시다. 다음은 독일 2009년 선거의 성과가치입니다.

<표2> 독일 2009년 선거의 성과가치.
 <표2> 독일 2009년 선거의 성과가치.
ⓒ 혁신더하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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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거결과와 달리 1에 상당히 가깝습니다. 가장 많이 벗어나는 경우는 CDU 지지자들의 성과가치로서 기준에서 11.8% 벗어납니다. 그런데 이 정도 벗어나는 것을 가지고 독일 헌법재판소는 평등선거가 아니라고, 따라서 위헌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선거법을 고치게 된 것입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말도 안 되는 불평등 선거입니다.

선관위 제안의 핵심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아니다

지난 2월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개정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선관위의 제안은 불평등 선거를 평등 선거로 바꾸자는 혁신적인 제안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이 제안을 마련하느라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선관위의 제안을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보도하면서, 국민들에게 제안의 핵심을 잘 알리지 못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핵심이 아니라, 선관위가 '병용제'라고 표현한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병용제는 독일식 선거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 당선자 수에다 비례대표 의원 수를 더해서 정당의 총의석 수를 결정합니다. 독일에서는 다르게 합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총의석 수를 먼저 정하고, 총의석 수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빼서 비례대표 의석 수를 결정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례대표 의석 수만 정당득표율에 비례하는데, 독일에서는 총의석 수가 정당득표율에 비례합니다. 우리나라 선거는 부분비례제이고, 독일의 선거는 완전비례제입니다. 부분비례제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불평등한 선거제도입니다. 불평등한 부분비례제를 평등한 완전비례제로 바꾸자, 바로 이것이 선관위 제안의 핵심입니다.

선관위 제안에 따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뮬레이션 해 보면, 성과가치는 다음과 같이 변합니다. 모든 정당 지지자들의 성과가치가 1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10% 이내가 됩니다. 앞에서 보여드린 제19대 선거의 성과가치와 비교해 보면, 아주 평등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과의석은 새누리당이 부산에서 배정된 총의석 수보다 2석 더 많은 지역구 당선자를 가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선관위 제안은 초과의석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뜻이라고 해석됩니다. 초과의석 문제는 독일의 새 선거법처럼 처리해도 되고, 전혀 생기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표3> 선관위 제안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초과의석 인정).
 <표3> 선관위 제안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초과의석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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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수 500석-세비는 7800만 원으로 조정해야

선관위의 제안은 이렇게 혁신적인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만,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가 국회의원 수를 300명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선관위 제안에 따르면 현재 246석의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여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300석은 인구에 비례해서 너무 작습니다.

심상정 대표가 360석으로 늘리자고 하고, 문재인 대표가 400석으로 늘리자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상당수의 국민들이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축소하고 국회의원의 책무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현실에서, 용감한 문제 제기입니다. 눈앞의 여론몰이보다 크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라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60석, 400석도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1대1로 하기 위해서는 두 방안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줄여야 합니다. 선거를 1년 앞둔 시기에 지금 지역구의 대대적 축소에 동의할 국회의원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지역구를 160석, 200석으로 줄이는데 국회가 합의할 수만 있다면, 저 역시 큰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소수 지역이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문제가 생깁니다. 세종, 제주, 충북, 강원 등은 지역 국회의원 수가 크게 줄어듭니다. 군 지역에서는 5~6개의 군에서 의원을 1명밖에 뽑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500석으로 늘릴 것을 제안합니다. 현재 246석인 지역구를 250석으로 하고, 비례대표도 250석으로 하면 지역구을 줄이지 않고서도 독일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1대1이 되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이 있습니다. 특히 국회의원을 위한 예산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세비는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너무 많습니다. 국회의원의 연봉(세비, 차량운영비 등)을 현재의 1억4000만 원에서 가구 평균소득의 1.5배인 7800만 원 정도로 대폭 줄일 것을 제안합니다. 차량유지비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대표답게 품위를 유지하면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상부터 다시 중산층으로 살고, 느끼고, 숨쉬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서민과 중산층을 자연스럽게 대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유럽의 의원들처럼, 자전거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의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의원실 소속 보좌진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운전기사 몫의 보좌진 정원은 우선적입니다. 현재 의원을 보좌하는 국회공무원 7명 가운데 2명 정도는 상임위 소속으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미국처럼 상임위 소속 정당 지명 정책보좌진으로 일하면, 지금보다 정당의 정책 역량이 훨씬 좋아집니다. 의원의 재선 여부, 상임위 변경, 지역구 활동 편중에서 자유롭게, 정당의 정책에만 전념하는 인원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정치와 정치인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해결방법을 의원 수 축소라고 생각할수록 국민들에게 불리하고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합니다. 지난 정권 때 행정부에서 자원 개발로 수십조 원의 세금을 낭비하여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것도 그 원인의 하나입니다. 국회의원 수를 늘려서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환경부 일과 노동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정부에서 발의하는 법안이 너무 많습니다. 사회와 경제는 갈수록 복잡해져가고 있고, 국민들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를 구석구석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합니다.

분야별로 훌륭한 전문가들이 법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합니다. 여성 국회의원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젊고 패기 있는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합니다. 지역 유권자들과 악수하러 다니지 않고 자기 전문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법안 연구에 몰두하는 의원도 나와야 합니다.

비례대표 배정은 '전국 득표율'로... 진입장벽은 1%로 낮춰야

다음으로 비례대표를 배정할 때 권역별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할 것을 제안드립니다. 비례대표 명부는 권역별로 만드는 데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할 수 있을까요? 바로 독일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총의석을 정당별로 배정할 때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권역별 명부는 국회의원을 유권자에 더 밀착시키고, 지역감정을 완화하는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득표율과 의석비율 사이의 비례성이 약간 떨어집니다. 그래서 명부는 권역별로 만들고 정당별 의석 배정은 전국 득표율로 하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제안드립니다. 비례대표를 배정받을 수 있는 진입장벽을 3%가 아니라 1%로 낮추자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비례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진입장벽을 두는 이유는 너무 많은 정당이 난립해서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진입장벽을 1% 정도로 낮추어도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의 표는 완전비례제를 채택하고, 의석수를 500석으로 하고,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권역별 비례제를 채택하고, 진입장벽을 1%로 하는 경우의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표4> 완전비례제, 500석, 전국득표율, 진입장벽 1%일 때 시뮬레이션 결과.
 <표4> 완전비례제, 500석, 전국득표율, 진입장벽 1%일 때 시뮬레이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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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총선을 기준으로 할 때 모두 6개의 정당이 의석을 가지게 됩니다. 이 정도면 얼마든지 안정적인 집권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진입장벽을 3%로 하면 4개의 정당이 의석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정당 지지자들의 성과가치가 기준에서 어긋나는 정도가 5% 내외입니다. 거의 평등선거입니다. 초과의석은 생기지 않습니다.

집권을 위해서는 정당간의 연합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정당간의 연합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물론 2016년의 국민 선택은 2012년과 다를 것입니다. 정당별 득표율도 바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유권자 1표의 가치가 평등해진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정개특위 위원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선관위의 완전비례제 제안은 반드시 채택되어야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공평한 경기를 할 수 없습니다. 정치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불평등한 선거제도입니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를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되려면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를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사람들의 투표에 비례해서 그 사람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 수가 결정되는 것, 바로 이것이 평등선거입니다.

어떤 국민의 투표는 1.2배로 평가하고 다른 국민의 투표는 0.5배로 평가하는 것은 평등선거가 아닙니다. 불평등 선거를 가지고서는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들은 평등 선거를 원합니다.  자기 당에 얼마나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지면 안 됩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 국민을 위한 것이면 자기 당에 불리하더라도 해야 합니다. 불리하더라도 대승적 결단을 하는 정당에게 국민들은 진정한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1987년 이후 수십년 만에 선거법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마침 선관위가 완전비례제라는 좋은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릅니다. 나쁜 선거 제도를 가지고서는 좋은 정치를 하기 힘듭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앞날이 위원님들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불평등한 선거 제도를 평등한 선거 제도로 바꾸어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상곤 기자는 전 경기도교육감이자 혁신더하기연구소 이사장입니다.



태그:#김상곤,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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