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정하고 재미있게 쓴 에피소드 인도> 표지
<작정하고 재미있게 쓴 에피소드 인도> 표지 ⓒ 불광출판사
내게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그려진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 마하트마 간디가 자유를 외친 곳, 더운 나라, 카스트 제도, 하루 종일 빨래만 하는 사람이 있는 곳, 영적이고 정신적인 곳, 다소 비위생적일 것 같은 곳, 지금 이 세상에도 본질적인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있을만한 몇 군데 중 유력한 곳, 진지한 영화에서도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는 곳, 그리고 류시화.

책, 영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한 인도를 아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인도는 내게 여행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인도 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10킬로그램이나 빠져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니다(친구는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나와 인도는 너무나 다른 듯 했다. 두려울 만큼. 물론, 바로 이 '너무나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으러 그곳으로 향하는 것일 테다.

인도에 간 적은 없지만, 인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다. 그는 내가 경험한 유일한 인도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친구와 함께 유럽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그는 내 친구의 옆에 앉아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본인이 소속된 회사에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그는 회사 로고가 찍힌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인도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정도는 기억난다. 그간 본 인도 영화 제목을 줄줄이 읊으니 그는 매우 신기해하며 기분이 좋다고 말했었다. 이후 우리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되었고, 아주 가끔 안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근데 그 때 나는 정말 알고 싶었던 걸 묻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왜 인도 영화에는 뮤지컬 같은 장면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지. 뜬금없이 주인공들은 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건지.

인도 영화 주인공들은 왜 뜬금없이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까

자현 스님의 <작정하고 재미있게 쓴 에피소드 인도>를 읽다 보니 그때 채 묻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았다. 물론 책에는 왜 인도 영화에 춤과 노래가 들어가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실려 있지 않았다. 대신, 인도인에게 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스님은 말해주었다. 춤은 종교적인 행위였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이다. 인구 중 총 80퍼센트 정도가 힌두교를 믿는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다르게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때에 따라 힌두교의 최고 신은 바뀌어 왔다.

고대의 힌두교는 브라만교라 불렸다. 브라마 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브라만의 인기는 사그라들고 네 개의 팔을 가진 비쉬누 신에게 사람들의 마음이 옮겨가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대세는 시바 신이다. 6세기 무렵부터, 비쉬누 신은 본인의 인기를 세 개의 눈을 가진 시바 신에게 건네 줘야만 했다.

그런데 이 시바 신이 춤을 추는 것을 즐긴다. 아니,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춤 그 자체가 시바 신에겐 목적이나 다름없다.

춤추는 시바를 나타라쟈라고 한다. 해석하면 '춤의 왕'이라는 뜻이다. 시바의 춤은 춤을 넘어선 광기의 춤이다. 광기란 단순한 미침이 아니라, 존재와 하나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시바의 춤은 이 세상 자체가 된다. - <본문> 중에서

춤을 추는 시바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를 상징하기도 한다. 오른손에 들린 북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왼손의 불꽃으로 세계를 파괴한다. 세계의 시작과 끝이 동일선상에서 순환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 반대적인 것이라 여겨지던 것이 상호 보완적이 되는 것. 시바 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의 이치란 이런 것이다.

또한 춤을 추는 시바가 밟고 있는 대상은 무지와 악이 된다. 춤이라는 행위를 통해 세상의 모든 무지와 악을 발 아래에서 가차없이 날려버리고 있는 신.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바로 이런 시바 신을 믿는 인도인들은 그래서 춤을 추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영화 속 뮤지컬 같은 장면도 이러한 이유로 연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뜬금없다 여겨지는 인도 영화 속 현란한 뮤지컬은 인도 사람들에겐 한 순간도 신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춤만 출 수 없으니 노래도 함께 부르는 것일 테고.

홀딱 벗고 거리를 배회하는 승려들... '하늘을 입은 사람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작정하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예상한 책의 형식은 스님 개인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였다.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그런 류의 에세이.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책에는 스님 개인의 에피소드가 아닌, 인도 곳곳에 숨어 들어 있는 종교, 역사, 문화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페이지마다 흥겹게 흩어져 있었다. 마치 스님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아기자기한 그릇에 꾹꾹 눌러 담가 한 상 거하게 차려놓은 것을 순서대로 하나씩 맛을 보는 기분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지적 욕구가 바짝 충족되는 듯 했다. 책의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낄낄거리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새로운 앎에 이르는 것도 역시 재미는 재미이니 말이다.

이런 내용도 알게 되었다. 인도에는 유독 '빌어먹는' 승려가 많다. 다른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는 승려를 말한다.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점은 음식을 주는 사람이 받아 먹는 승려에게 더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단지, 종교적인 의미 때문일까.

기후 때문이라고 한다. 무더운 아열대기후인 인도에서는 2모작 3모작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음식이 풍족해 인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무더운 기후엔 문제가 따른다. 너무 더워 음식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당 끼니는 그때 모두 처리해야만 하는데,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할 경우 전염병이 돌기도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남은 음식을 가져가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종교적인 색채까지 덮여지니 '빌어먹는 승려'가 그저 고마울 수밖에.

더운 기후 때문에 벌어지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보기에) 낯뜨거운 장면도 있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인도 자이나교의 승려들 중 일부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홀딱 벗고 거리를 배회하곤 하기 때문이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살생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옷 대신 하늘을 입고 다녀 '하늘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더운 나라라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 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는 아무리 무소유를 실천하고 싶다고 해도 이들처럼 나체주의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워 죽는 일이 벌이질 테니까.

인도에 대해 '작정하고'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부처상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부처상을 보게 되면 우리는 부처님이 파마머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은 사실 삭발을 했었다. 그런데 왜 어쩌다 머리카락이 있는 부처상이 생겨난 것일까. 그것도 파마머리를 한 부처상이.

사람들은 열반에 든 부처님을 감히 형상화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출가하기 전 모습을 부처상으로 건립하기로 한다. 바로, 젊은 싯다르타의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당시 인도의 젊은이들은 주변 머리를 싹 밀어버리고 가운데 머리로만 상투를 트는 스타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위에서 보면 마치 '똥'같았다. 초창기의 부처상은 그래서 바로 이 거대한 똥머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겼다. 이런 스토리를 전혀 알지 못한 후대 사람들이 자꾸 헷갈려 한 것이다. 왜 부처님이 삭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왜 이런 머리 스타일을 하게 된 것인지. 머리 스타일 때문에 말이 많아지자 부처님의 머리는 또 한 번 변화를 맞게 된다. 하나의 거대한 똥머리를 없애고 똥머리 군집으로 부처님의 머리를 표현함으로써, 머리카락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지금의 파마머리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왜 인도 사람들이 갠지스 강에 목욕을 하게 된 것인지, 그들은 왜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는지, 힌두교는 왜 소를 숭배하게 된 것인지, 붓다의 신통력은 무엇이 있었는지 등,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인도에 대해 '작정하고'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작정하고 재미있게 쓴 에피소드 인도>(자연스님/불광출판사/2015년 03월 18일/1만7천원)



에피소드 인도 - 작정하고 재미있게 쓴

자현 스님 지음, 하지권 사진, 불광출판사(2015)


#인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