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호 인터뷰 1편
에서 이어집니다.1997년 5월 12일이었다. 검찰청에서 "요즘 일간지에 만화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들을 조사하고 있으니 나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던 <째마리>를 복사해서 가져 오라는 말과 함께.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만화가들이 줄줄이 소환당했던 그때를 이두호 작가는 2006년 자서전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통해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검사가 '지적질'한 한 대목, 작가로서의 분노가 느껴진다.
"독대가 포졸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었다...(중략)...문제는 뒤로 자빠지는 독대를 포졸이 창으로 찌르려는 장면이었다. '이런 장면은 폭력적이지 않습니까?', '탈옥범을 잡으려는 장면인데 폭력적이라니요?', '그런데 왜 포졸이 하필이면 창을 가랑이 사이에 겨누었습니까?', 나는 한순간 멍해졌다. '세상에! 그게 가랑이 사이로 겨눈 것이었구나'."더 이상 만화를 그리기 싫었다고 했다. 검사는 "신문연재 만화를 청소년에 유해하지 않게 그리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이두호 작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린 만화를 다 부정하란 말인가? 못 쓰겠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하며 절필 선언을 한다.
- 그때 고초를 많이 겪으셨죠."이건 말도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무죄가 됐으니 다행이긴 한데, 하도 화가 나가지고... 그때 이현세씨도 6년 만에 무죄를 받았잖아요. 한 번은 아침 10시 좀 넘어 전화가 왔어요. '여보세요', 그랬더니 현세예요. '웬일이냐' 그러니까 '저, 지금 법원에 가고 있는데요', 마지막 선고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벌컥 화를 냈죠. '야, 인마, 그럼 진작 말해야지', 자기도 이제 연락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참 황당하대요. 당연히 가야 하는 현장인데, 가서 만세 삼창이라도 하려고 그랬는데."
왜 바지저고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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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호 작가가 절필 선언 후 마지막으로 그렸던 <째마리> 만화 |
ⓒ 이두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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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 작가는 당시 이현세 작가의 재판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현세씨가 작가로서 심적인 타격이 컸고 결과적으로 작품에 지장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천국의 신화>는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거듭 아쉬움을 풀어냈다. 아마 이두호 작가 역시 그때, 바지저고리들의 '오늘'을 뼈저리게 느꼈을지 모른다. 바지저고리 이야기로 화제를 바꿀 차례였다.
- 혹시 김주영 선생님과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시는지?"특별한 일 있을 때만 만나요. 무슨 회의할 때나 시상식 같은 거 할 때(웃음)."
- 김주영 선생님이 올해 초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소설을 쓰면서 일관되게 견지한 기조를 묻는 질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 역사의 행간에서 배제된 사람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선생님 작품 주인공들도 역시 그런데요."저도 물론 그 생각입니다. 흔히 민초라고 하잖아요. 맥락은 김주영 선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무슨 드라마가 나올 것 같으니까. 이런 생각도 있죠. 조금이라도 내 만화에 정의감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 이런 물음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제가 예전 살아온 삶도 그랬으니까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그래서 그렇게 된 거죠."
사실 이두호 작가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가난했다.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천막 파는 데서 천을 구하고, 제재소에서 나무를 사서 내 손으로 캔버스를 만들어 그려야 했을"정도였다.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만화가의 길, 바지저고리만 그려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2년의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한 10년쯤 만화 연재를 하니까, 누구도 나를 화가로 안 보고 만화가로만 알더군요. 그래서 정말 결단을 내려야 되겠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스스로 약속하고 2년 동안 유화를 그렸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2년이 다 돼가니까 그렇게 만화가 그리고 싶은 거예요. 나는 결국 만화가가 돼야 하는구나... 그럼, 어떤 만화가가 될 거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그래도 관심이 있는 것, 역사를 그리자. 범위가 너무 넓어도 머리 아프니까 가급적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자, 그렇게 된 거죠."<미생>을 보고... "야, 이 녀석 참 대단하다"
- 혹시 <미생>이란 드라마 보셨나요?"드라마는 못 봤어요. 책은, 그 친구 윤태호가 줘서 봤어요. 보면서 '야, 이 녀석 참 대단하다(웃음)', 진짜 대단해요. 우선 윤태호 그림을 제가 굉장히 신뢰하거든요. 그림이, 기본이 딱 잡혀 있는 친구예요. 그리고 스토리도 탄탄하잖아요. 굉장히 객관적인 스토리에 그림은 또 다른 만화가들과 완전히 판이하게 다르니. 나중에 교수 했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
- 말씀을 듣다 보니까 양복저고리란 말이 떠오르네요. 바지저고리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미생>에 나오는 양복이 <객주>에 나오는 바지저고리와 맥락이 같으면 참 좋죠. 또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내가 너무 까부는 것 같고(웃음). <미생>을 보면서 참 리얼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가급적이면 리얼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당시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그 정도였거든요? 물론 <미생>은 오늘날 우리 이야기니까, 더 접근하기는 쉬웠겠지만, 다른 만화와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르잖아요. 직장인들의 리얼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가슴 참 먹...먹하게 하잖아요. 제 만화도 좀 그랬으면 좋겠는데."
- 선생님 작품도 먹먹한 적 많았는데요?"어렸을 때니까 그렇지(웃음)."
이두호 작가에게도 물론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전근을 가자 그 학교로 무작정 달려가 나도 여기 다니겠다고 떼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길,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에 천착하는 역사 만화가의 길을 걸어온 그였기에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라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역사라는 것, 지하철 탈 때마다 생각한다
- 선생님, 역사란 무엇일까요?"제가 주례 설 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역사로 따지자면, 당신은 현재고, 부모님은 과거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미래다. 당신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잘 살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오늘의 나를 알 수 있으니까. 오늘의 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어제를 알고 오늘의 나를 잘 다스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게 자식이다. 제 역사관이 그거거든요. 우리 역사를 잘 살펴보자는 거죠. 그래야 아이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잖아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지하철을 자주 타는데... 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어느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내가 젊었을 때는 딱 정해져 있었거든요? 습관처럼 어르신이 오면 앉아 있다가 일어나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나이든 축에 들어가잖아요. 그래도 더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요래∼' 보고 있으면,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노인석으로도 못 가고, 또 젊은 친구들 있는 쪽으로 가면 꼭 비켜 달라는 것 같잖아요. 그러니까 어디로 가냐 하면, 출입구 쪽, 거기 서 있으면 간섭 안 받잖아요. 꼭 그렇게 다니거든요.
그러다 '요즘 젊은 것들', 이런 마음이 생기기 쉽죠. 하지만 '요즘 애들 못 쓰겠어', 이런 말은 우리 아버님이나 할아버님부터 대대로 내려온 말이란 거죠. 그러니까 이건 아주 자연적인 거구나, 아무도 원망할 필요 없구나, 그렇게 풀어 버리니까 마음이 매우 편해요. 환경이 변화한 걸로 이해를 해야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늘 돌아봐야 한다는 거죠. 우리 역사에는 항상 반성해야 할 지점이 남아 있어요. 반성을 왜 하느냐, 고치려고 반성하는 거잖아요."
- 정치적 견해는 그동안 인터뷰에서 잘 안 밝히셨던 것 같아요."글쎄, 어떤 A라는 문제가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건 말할 수 있겠죠. <머털도사> 그릴 때였나? 턱이 긴 여자를 그렸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잖아요. 그 때 그 게 눈에 안 띄어서 참 다행이지(웃음). 무심결에 그린 건데, 그걸 누가 보면서 그러더라고. '야, 네가 이래 놨냐?'(웃음)
정치적인 문제나 이런 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을 수는 없죠. 내 삶이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정치한다든지, 거기 뛰어든다거나, 그런 것보다 저는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요. 객관적으로 보고, 내 생각을 작품에 반영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다고 굳이 내 만화를 보고 뭔가 깨우치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보면서 공감해 줄 수 있으면 좋잖아요."
성완종 뉴스를 보다가... <덩더꿍>이 떠오른 이유
- 이번에 나오는 <객주>,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시대물 그리면서 항상 그런 느낌을 받아요. 옛날이야기지만 지금도 이런 이야기는 똑같다. <객주>에 보면 상도에 어긋나는 녀석들도 있고, 정말 지키는 친구들도 있고, 지금도 똑같잖아요. 조선시대 세조 때 홍윤성이란 인물이 있는데, 사람도 많이 죽이고 온갖 행패를 다 부립니다. 부정부패의 대표적인 원흉이거든요? 그런데 말년이,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요.
그게 화가 나서... 이거는 내가 만화 속에서라도 처단해야겠다, 그래서 <덩더꿍>을 만들었죠. 종의 손으로, 종의 아들 손으로 제거되는 것으로. 그렇게 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카타르시스가 됐는지(웃음). 지금 와서도 느끼는 거지만, 세조 때 있었던 비리가 현재는 없느냐. 형태만 다를 뿐이다. 요즘 성완종 전 회장 뉴스가 나오지만, 하...어떻게 그렇게, 똑같잖아요. 그럼 옛날도 저랬을 거 아니냐, 그런 부분에 공감할 수 있겠죠."
- 뉴스를 보시면서 떠오른 작품은 없었나요."대뜸 생각나는 이가 홍윤성이었어요. 만약 그 사람이 홍윤성 같은 권력까지 쥐었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이제 법정에서 밝혀져야 될 일이지만, 정말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철저하게 다스려야 해요. 예전에야 권력자가 사람 목숨 하나 탁 뺏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잖아요. 더 발전하려면,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재산을 가진 사람이, 더 겸손하게 베풀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자꾸 긁어모아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려고만 하니. 뉴스를 보다가 막 짜증이 나요.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 이것밖에 안 되나. 참...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제출물로 : 남의 시킴을 받지 아니하고 제 생각나는 대로끝으로 이두호 작가에게 앞으로 작품 계획을 물었다. 그는 "시대를 뛰어넘어 왔다갔다하면서 비유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로 마감에 쫓기고 그런 건 안 하고 싶다"며 웃었다. 다만 "체질적으로 뭘 그려도 그릴 것"이라면서 "밥 먹듯 버릇이 돼서 하루라도 붓을 안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구경한 그가 공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는 요즘 소나무를 즐겨 그린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소나무가 너무 좋아서 매일 그리고 있어요. 생긴 게 제멋대로잖아요. 아주 자유스럽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지를 뻗었다가, 돌아오고 싶으면 또 돌아오고."어찌 보면 바지저고리, 양복저고리들의 삶이 또한 그 모양새다. 또는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천상 그는 바지저고리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