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조(학교운동부 운영 등) ① 학교의 장은 학생선수가 일정 수준의 학력기준(이하 "최저학력"이라 한다)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는 별도의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최저학력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필요할 경우 경기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다.③ 학교의 장은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및 신체적·정서적 발달을 위하여 학기 중의 상시 합숙훈련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학생의 체육활동을 강화하고 학교운동부 육성 및 학교체육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심신을 가질 수 있도록 기여하기 위해 2013년 3월 학교체육진흥법이 시행되었다. 조금 더 현실에 충실하여 말하자면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를 기점으로 학생선수들의 합숙 구조 및 합숙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법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논의를 확장시켜 엘리트 스포츠의 폐단을 극복하고 학교스포츠클럽을 확산하려는 의지도 법에 반영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전후를 중심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엘리트 스포츠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소수 독점 구조에서 도태된 학생들의 진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엘리트 스포츠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인지도를 드높이고 '세계 속의 한국'의 길을 터놓은 것은 사실이나 학생선수 중 극히 일부만 실전 무대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그중 일부만 금메달 병을 앓고 있는 국민적 정서에 박수로 기억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 자체가 불가피한 경쟁이 존재하기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결과라 하기에는 조연 역할을 한 운동선수들의 미래가 심각할 정도로 불투명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엘리트 스포츠 중심의 학교체육은 지도자도, 선수도, 학교도 가시적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성적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엘리트 스포츠의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상시 합숙을 통해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과신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학생들을 맹목적으로 경쟁에 노출시킨다. 열악한 시설과 안전하지 못한 시스템은 운동선수로서 으레 견뎌내야 할 소중한 자산 정도로 인식한다. 학생선수는 본인의 종목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실업팀(프로팀)에 들어가거나 대학에 특기자로 입학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수업을 통해 소양을 쌓는 일은 '미친 짓'이 되고 수업에 빠지고 운동량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 행위라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구조가 여러 세월에 걸쳐 반복되는 동안 운동부 합숙소에서의 화재 사고나 구타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되었고, 운동 기능은 출중한 데 비해 지적 영역이나 정의적 영역에서는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선수를 낳게 되었으며, '수업 결손'이라는 특단이 있었음에도 운동 기능이 출중하지 못하여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사회적 방랑자'로 각인되는 패턴을 생산했다.
엘리트 스포츠의 이러한 폐단을 최소화하고 생활체육을 강화하기 위해 앞서 말한 학교체육진흥법이 마련된 것이다. 학교의 장은 학교운동부를 운영함에 있어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신체적․정신적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상시합숙을 근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 명시한 덕분에 아직까지도 편법이 횡행하고 있으나 법의 본질과 취지에 공감하는 학교는 세련된 행보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또한 학교의 장은 학생선수가 일정 수준의 학력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는 별도의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최저학력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경기대회 출전을 제한 '할 수 있다.'라 스탠스를 유지한 덕분에 빠져 나갈 구멍이 있기는 하지만 운동선수들이 움직여야 할 방향에 대해서나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셈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음에도 반대 의견 또한 만만찮다. 초․중학교는 교육부장관이 정한 5개 과목에 대해, 고등학교는 3개 과목에 대해 초․중․고 각각 해당 학년 학생 전체의 교과별 평균 성적의 50%, 40%, 30%가 되어야 한다는 최저학력 조항을 두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주말리그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다. 엘리트 스포츠의 순기능을 강조하며 '1%의 운동기계를 겨냥한 학습권 보장, 최저학력제'보다 '99%의 공부기계를 위한 운동권 보장, 최저체력제'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입'이라는 쳇바퀴 속 반복되는 일상 속에 주체적 의식 없이 공부 기계로 전락한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제도와 인식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운동을 주로 하는 학생이든 공부를 주로 하는 학생이든 '주로 하는' 행위의 결과적 성공을 완벽하게 보장해 주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그 경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만으로 인간 성장에 있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할 요소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소신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같은 것이다. 케케묵은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지덕체의 끈을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학교스포츠클럽(생활체육)과 엘리트스포츠가 저마다의 순기능을 바탕으로 공존할 필요가 있다는 점, 엘리트스포츠가 지금껏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논의를 압축할 수 있을 텐데 유행가 가사처럼 '학교스포츠클럽인 듯 학교운동부인 듯' 갈피를 잡기 힘든 청구초등학교 야구부로 찾아가서 공부 기계만을 만들지 않는 사회, 운동 기계만을 만들지 않는 사회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 한다.
청구초등학교 야구부 손용근 감독은 1984년부터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는데 선수들에게 사인을 내지 않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학교 운동부는 진학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승리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승리를 위한 감독의 사인은 잦아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손 감독은 심판들의 내기 대상이 될 정도로 사인에 인색하다. 단순하게, 번트를 대거나 작전을 거는 야구가 좋지 않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로 하여금 눈치 보지 않는 야구를 하게 만들어서 야구 자체를 즐기게 하려는 목적의식이 강할 따름이다.
번트를 비롯한 각종 연습이나 훈련을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시합 중에는 학생선수들이 스스로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더욱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은 손 감독이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는 입장만을 견지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여러 훈육 방식 중 하나로 자신의 지도 방식을 봐달라고 겸양을 보인 점이다. 또한 손 감독은 30여 년 동안 변함없이 학생들에게 가족들과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야구 용어와 포지션을 영어로 표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뿐만 아니라 한자나 영어와 관련하여 숙제를 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결국 손 감독은, 야구는 '함께', '즐겨야' 하며 모든 사람이 추신수나 류현진이 될 수 없다는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면 자연스레 엘리트 스포츠에서의 폐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정 작용이 일어날 것이고 야구부원들 스스로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일어서려는 주체의식이 함양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공존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지도자들이 지덕체의 끈을 놓지 않는 가운데 학생선수들을 대하는 현명한 방법이 무엇일지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공존하는 방법, 굳이 사인을 내지 않더라도 최소한 진루타는 나오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