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방송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가 <선암여고 탐정단>(아래 선암여고, JTBC)에 대한 징계를 확정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징계로 JTBC는 방송사 재승인시 감점이 되는 '경고(벌점2점)'를 받게 됐다. 심의안건에 상정된 이후부터 거론된 제재수위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결정된 것이다.
방심위 산하 방송심의소위는 해당 장면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5조(윤리성), 제27조(품위유지), 제35조(성표현), 제43조(어린이 청소년 정서함양)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예고한 바 있다.
'경고' 받은 여고생 간 키스장면... 이성은 되고 동성은 안돼?
JTBC에서 방영된 14부작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은 5명으로 구성된 여고생 탐정단이 좌충우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이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며, '탐정'을 소재로 왕따 등의 청소년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었다.
방심위에서 심의한 부분은 지난 2월 25일 방영된 11회로, 여고생들의 키스 장면이었다. 극 중 수연이 동성 연인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후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이별 위기와 학교 내의 괴롭힘으로 힘겨운 와중에 이루어지는 슬픈 키스에 가까웠다. 해당 키스신이 맥락없이 선정성을 위해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불건전 동영상 '몸캠'을 찍었다는 벽보가 학교에 붙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아웃팅(의도와 다르게 성적 지향이 알려짐)을 우려해 주인공이 침묵하는 설정은 학교폭력과 청소년 성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방심위의 생각은 달랐다. "현 시대의 청소년들이 고민하고 있는 성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자 했던 기획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면서 여고생 간의 키스 장면을 장시간 클로즈업해 방송했다"고 지적했다.
방심위 회의에서는 당시 '의견제재' 행정처분을 받았던 M·net 드라마 <몬스타>의 한 부분도 비교 차원에서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한 부분은 남녀 청소년 간의 키스를 담은 장면이었다. 만약 동성 간의 애정표현이라는 차이점만으로 <선암여고 탐정단>에 더욱 무거운 징계가 내려진 것이라면 이는 상당히 의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함귀용 심의위원, 회의 중 '성소수자 혐오 발언'징계 수위는 경고의견 6인, 주의 2인, 권고 1인으로 다수의견에 따라 '경고'로 최종결정됐다. 현장에서 심의위원 중 한 명은 "굳이 키스가 아니더라도 다정하게 손을 잡는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여고생의 키스라서 문제인 걸까? 해당 장면이 심의안건으로 선정된 이유는 '동성 간의 신체접촉'이라는 점으로 집중된 듯하다.
징계가 확정되기 전에도, 회의에 참석한 함귀용 심의위원은 동성애를 두고 "정신적 장애"라고 말해 반인권적 발언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가 "다양성은 인정한다"면서도 "동성애는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미디어스>는 박효종 위원장이 드라마에서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고 서로 키스한 것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했다. 굳이 필요하다면 어깨동무나 손을 잡는 '우아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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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교묘하게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을 드러낸 것이다. 남녀 청소년 간의 키스 장면에 비해서 동성 간의 키스가 더 혐오스러운 요소가 있다는 발언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성적 지향 중 하나인 동성애가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며 장애라는 발언은 인권을 침해한 처사라는 비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런 발언은 동성애에 대한 차별금지를 규정한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위배되는 상황이다.
특정인의 정체성을 이유로 가치관의 옳고 그름을 진단하는 것도 모순이지만, 감정에 근거한 판단이 징계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거론된 것도 우려스럽다. 함 위원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언급했는데, 개인의 성적 지향을 타인의 찬반이 가능한 사안으로 인식한 것은 심의위원으로서 자격이 의문스러울 정도다. 반기문 UN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교황 등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말하는 시대에 '동성 간의 키스는 방영해선 안 된다'는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한국 방송심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드러냈기 때문이다.
잣대 불분명한 방심위 징계, 이대로 괜찮은가<선암여고 탐정단> 징계 결정은 한국 방송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특정 성향에 대한 편견이 권위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준 사례다. 방심위는 학교폭력에 노출된 두 학생이 서로를 향한 애정을 확인하는 장면을 '선정적 표현방식'이라 표현했다. 회의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을 언급하기까지 했는데, 드라마의 내용에서 맥락을 생략한 채로 특정장면만 두고 평가한 것은 오히려 더 자극만을 좇는 태도가 아닌지 묻고 싶다.
성소수자에 대한 호감이나 판단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불쾌하다는 이유로 이를 '올바르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거나 특정 영향력으로 제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의 헌법은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다. 방심위라고 해서 예외의 영역으로 분류해도 괜찮은 걸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잣대가 불분명한 방심위의 징계 기준에 있다. 키스 장면을 1분간 클로즈업한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애정을 나누는 장면에서 분량이 문제된다고 볼 뚜렷한 기준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신체접촉에서 남녀가 아닌 동성이라고 문제 삼기에도 선명한 규정이 없다. 심의위원들이 전체회의에서 근거로 삼은 것은 대부분 '혐오스럽다'는 감정적 표현이었고, 사회의 미풍양속이나 가치관에 관한 개인적 견해에 불과했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오히려 <선암여고 탐정단>의 동성 간 키스장면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제7조 3항인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조항 말이다. 학교폭력에 쉽게 굴하지 않는 학생의 모습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동등하게 다루려고 노력한 부분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줄거리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방송의 공익성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과연 '여고생 키스장면 징계'일까? 오히려 사회적 인권의식 부족과 방심위 의원들의 성찰이 더욱 절실한 시점으로 보인다. 명백한 기준이나 정당한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혐오스러운 감정이 판단의 기준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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