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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전 시골집에 경사가 났습니다. 아버지 생신을 얼마 앞두고, 염소가 출산을 한것입니다. 그날 시골집에 전화를 해도 통 연락이 되질 안더니, 저녁 무렵이 되자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우리 염소가 새끼 낳았다! 암놈 하나, 숫놈 하나야. 전번에는 숫놈만 둘이였는데 이번에는 기특하게도 한 마리씩 낳았네."

마치 손주라도 보신 듯이 흥분된 목소리십니다. 아니 염소가 새끼 낳는데 왜 전화를 안 받으셨냐는 질문에,

"애미가 내가 곁에 없으면 더 힘이 드는지 '애앵~' 하고 자꾸 울어서 우리 옆에서 지켜봐주느라고 그랬지. 아이구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아기를 낳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고,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기특한 염소 얘기를 한참 듣다가 그 다음주 있을 아버지 생신겸 가족들 외식을 하면 어떨지 했는데, 당사자인 아버지는 절대 집을 떠날 수 없다 하신답니다. 이유인 즉, '염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집을 비우면 안 된다'는 것. 늘 그렇습니다. 이 염소녀석은 꼭 새끼를 무슨 때 전에 떡하니 낳습니다. 마치 나 새끼 낳았으니 알아서 하라는 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집에서 식구들이 모여 먹으려면 상차리고 치우는 어머니가 힘드니 나가서 먹자는 의견이 우세해 겨우 점심을 먹자는 의견에 찬성하신 아버지, 그날 밥만 얼른 드시고 나 내려간다 하시면서 서두르셨습니다. 서두르는 아버지를 잡지 말라 하시는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얘들아, 니네 아부지가 어떤지 아니? 글쎄 염소 새끼낳은 날부터 우리 안에 가서 지키고 앉았다. 누가 염소 할아버지 아니랄까봐. 잡지마라. 염소 걱정돼서 못 나와 있는다."

"네 아버지 잡지마라, 염소 걱정돼 못 나와 있는다"

염소와 아버지의 첫 만남은 이랬습니다. 염소는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손녀인 막내 손녀가 태어나 집으로 오는 날 아침 정말 거짓말같이 지발로 걸어 천천히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누가 잃어버렸나 찾아도 근처 염소 키우는 사람이 없어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후 풀 뜯어다 먹이고 쓰다듬어주며 염소를 길렀고 아버지와 염소는 그렇게 정이 들어갔습니다.

올해 손녀의 나이가 7살이니 벌써 그 인연도 7년입니다. 그 시간동안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매애~' 거리는 녀석들을 살피고 염소 꼴베러 가는 것을 일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챙기고 계셨으니 그런 염소가 새끼를 낳은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까지 들어가 계시는 건 조금 '거시기' 합니다.

"니 아부지가 왜 들어가 앉았냐면, 이놈의 애비염소가 새끼들 젖 먹는데 지도 가서 먹으려고 덤비는 거야. 그래서 그거 막느라구 중간에 의자 놓고 앉아 있는 거래. 애미 젖 모자라면 새끼들 배고프다구."

염소 우리에 들어간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는 어머니, 연신 웃으십니다. 그 모습 상상 한번 해봐라 얼마나 웃기냐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아빠염소 한쪽을 계속 바라봅니다.
▲ 아빠염소 한쪽을 계속 바라봅니다.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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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염소 두마리 아버지의 애지중지 아기염소들입니다.
▲ 새끼염소 두마리 아버지의 애지중지 아기염소들입니다.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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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려가신 아버지, 한곳을 멍하니 쳐다보는 숫염소의 모습과 엄마염소 곁에서 젖 먹고, 쉬는 염소새끼들의 모습을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이 두 컷의 사진 가운데쪽. 그러니까 염소 우리 중간에 의자를 놓고 숫놈을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됩니다. 아빠염소는 좀 섭섭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사랑을 새끼염소들은 알고 있겠죠? 새끼염소들아 엄마염소, 아빠염소, 그리고 염소 할아버지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쑥쑥 잘 자라라! 


#새끼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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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중한 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며 멋지게 늙어가기를 꿈꾸는 직장인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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